파리에서 흉기난동 사고가 일어났다.

by 쓰는 사람

시차 때문에 여느 연인처럼 수시 때때로 연락을 주고받지 못하는 우리는 대부분 저녁 시간에 통화를 하곤 한다. 가끔 일 때문에 바쁠 때면 이틀에 한 번꼴로 통화를 하게 되는데, 며칠 전이 그랬다. 종일 밀린 일을 마치고 자리에 누운 나는 메인에 떠 있는 인터넷 뉴스들을 보다가 파리에서 흉기 난동 사고가 일었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파리 중심가 흉기 난동. 4명 사망. 범인 역시 현장에서 총격으로 사망”


그 충격적인 뉴스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그 사람이었다. 어제 연락도 못했는데 아무 일 없겠지? 괜찮겠지? 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불안해졌다. 파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난 영어 기사를 다시 검색해 그에게 보내 확인을 하곤 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기사 링크와 함께 괜찮냐는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답장이 도착했다. 살벌한 뉴스와 달리 노트르담 주위를 거닐고 있는 사진이었다. 뭐야! 분명 뉴스에서는 파리 시테 섬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했는데.. 완전 같은 장소잖아!


그 순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신도 그곳에 있다고 말이다. 처음에는 경찰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고. 적어도 사건이 벌어지는 그 순간 그가 그곳에 없었다는 게 다행이었지만, 그런 일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현실이 싫었다.


KakaoTalk_20191006_234925330.jpg "Ça va?"는 괜찮냐고 묻는 말이다.


한 번은 파리에서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그가 알려준 카페가 있었다. 그는 “여기가 카페 테러가 났던 곳이야. 가끔 가던 곳이었는데...”라며 2015년 카페 테러를 떠올리는 이야기들을 전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니스에 갔을 때도 여전히 꽃다발이 수북이 쌓여 있던 테러 현장을 함께 지나갔었다. 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인데, 세상은 왜 이렇게 무섭게만 흘러갈까.


한창 유럽 테러로 불안감이 치솟았을 때, 내가 테러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는 “테러를 어떻게 조심 해? 어디서 언제 일어날 줄 알고” 걱정하지 말라며 웃곤 했다. 그 말이 반박할 수 없는 농이라서 너무나 속상했다. 이번에도 역시 그는 곧바로 전화를 해 날 안심시켰지만, 걱정되는 마음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그가 뉴스 속 비극의 인물이면 어떡하지? 너 없이 못 사는데” 아주 짧은 시간에 상상은 무섭게 퍼져나갔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하루빨리 그와 함께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비단 사건 사고 때문이 아니라, 그가 밥은 잘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그런 사소한 걱정들 대신 곁에서 그저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래서 요즘의 우린 자연스럽게 함께 사는 삶에 대해 조금씩 이야기하고 있다. “보고 싶어”라는 말 대신 “우린 같이 살아야 해. 너랑 함께 있을 때 내 삶이 더 행복해”라는 말을 듣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 우리가 같이 살기 위해서는 파리와 서울, 누군가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쉽지 않다는 것을. 물론 언제까지고 이렇게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연애를 할 수는 없다는 것도 안다. 이런 고민에 빠질 때면 뒤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우린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을까


언어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오직 한 사람만 보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워지는 만큼 멀어지게 될 가족들,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라든가, 알바 시급으로 이어가게 될 생활비라든가, 각자 좋아하는 모국의 음식들까지... 사소한 영역부터 무거운 선택지까지 ‘포기해야 할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우린 충분한 시간을 갖고 서로에게 최선의 길들을 찾아볼 것이다. 다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곁에 있는 것처럼 사랑하는 일. 멀리 있어도 서로를 걱정시키지 않는 일. 얼마 전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오늘도 내 생각했어?"라고. 장난기 많은 그의 리듬을 받아주느라 여느 때처럼 "아니 아주 조금"이라고 했는데, 연이은 그의 대답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매일매일 생각해야 해. 네가 내 생각을 하지 않으면 나는 점점 작아져서 사라질 거야. 나는 너를 매일매일 생각해. 그래서 넌 점점 더 커지고 있어. 나한테는 네가 너무너무 커. 하지만 내가 자꾸 커져서 나만 보이면 안 돼. 네 생활의 균형도 중요하니까. 그 사이를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해 알았지?” 그날 밤, 나야말로 너무 큰- 사랑을 만난 게 아닐까. 심장을 부여잡고 잠이 들었다. 영영 사라지지 않을 당신이 자꾸만 커지네.


아마 보름달을 삼키면 이런 기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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