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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는 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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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Jul 20. 2020

요가 지도자 과정에 도전해도 될까

나도 몰랐지, 내가 이렇게 요가에 푹 빠질 줄은. 

 


작년 3월 요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까지 요가에 푹 빠질 줄은 몰랐다. 학창 시절엔 체육을 가장 싫어하는 학생 중 한 명이었고, 서른 중반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운동이란 걸 해보지 못한 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요가를 시작하게 된 건 어쩌면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방송작가라는 생활을 10년 넘게 하면서 내 몸은 혹독한 방송 스케줄에 맞춰져 그야말로 방치되어왔다. 툭하면 밤을 새우는 일상이었고 잠도 끼니도 일하는 스케줄에 맞춰 때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요가를 시작하기 전 연말의 내 몸은 무려 이틀 연속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음악 시상식을 준비하면서 그야말로 엉망이 되었다. 수면은 반납해야 했고 식욕은 떨어졌고 밥 대신 잠들기 전 마시는 맥주 한 캔에 의지해 억지로 버티는 날들이었다. 그렇게 이틀 연속 생방을 마치고는 바로 다음 날, 기존에 하던 프로그램의 2019년 새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채 두어 시간을 못 잔 채 바로 또 출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버티는 게 이기는 거다”라며 어렸을 때부터 버티는 거엔 자신 있던 나였지만,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던 시간은 온전히 몸으로 찾아왔다. 내 딴엔 밀린 수면을 보충한다고 잠을 자고 일어나도 온몸이 쑤시고 찌뿌둥하고 피곤했고 그런 날들이 반복되자 혹시 내가 어디 아픈 게 아닐까 덜컥 두려워졌다. 그래서 작년 초 방송작가협회를 통해 건강검진을 받고 그 결과를 기다리기까지가 사실 너무 겁이 났다. “혹시 어딘가 심하게 탈이 난 거면 어떻게 하지”하고 말이다. 이러다 죽기 전에 운동을 시작하자는 작은 다짐을 하면서. 


다행히 건강검진 결과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그로 인해 받아들이게 된 또 다른 결과는 이미 내 마음이 그만큼 무너져있었단 사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하루가 고역일 만큼, 지친 나를 일으켜 세워줄 명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방송작가들이 많이 선택하는 필라테스와 어렸을 때부터 그냥 한 번쯤은 배워보고 싶었던 요가가 선택지에 올랐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필라테스와 요가원을 한 군데씩 방문해 상담을 받았는데 필라테스와 요가 중에 뭘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말에 양쪽에서는 전혀 다른 답이 돌아왔다. 필라테스 원에서는 “저도 요가를 해봤지만, 필라테스는 기구를 함께 쓰니까 자극이 더 정확해서 좋더라고요” 했고 요가원에서는 “필라테스와 요가를 한 번씩 해보시고 더 잘 맞는 곳에서 시작해보세요”라고 했다. 왠지 상술이 섞인 것처럼 느껴졌던 필라테스 원에서의 답보다 정직해 보이는 요가원의 답이 더 끌렸던 것 같다. 그리고 도구를 사용해서 교정하는 필라테스보다 오로지 내 몸뚱아리 하나면 되는 요가가 그때 당시에는 솔직히 더 있어 보였다. 


요가는 그저 스트레칭이 아닐까 하던 선입견과 SNS에서 보던 이효리의 화려한 고난도 요가 동영상 중 진짜 요가는 무엇일까 궁금해하며 첫 수업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요가 첫 경험은 의외의 깨달음을 알려주었다. 아, 내 몸도 쉴 수 있구나. 요가가 처음이라는 내 말 때문인지 선생님은 어려운 동작을 시키지 않고 마사지 테라피 위주의 수업을 해주셨는데 ‘이거 뭔데 이렇게 시원하지?’라며 속으로 수도 없이 되뇌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나의 첫 사바아사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요가 수업의 마지막은 양팔과 다리를 편하게 펼쳐둔 자세로 누워 온전히 쉬는 자세로 마무리된다. 일명 송장자세 ‘사바아사나’ 1시간 동안의 수업을 따라온 내 몸은 그렇게 누워있는 몇 분이란 짧은 찰나의 시간 동안 단잠이 들었고 달게 회복되고 있었다. 요가를 시작했던 초창기, 5분 안팎의 사바아사나를 할 때면 나는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잠든 몸을 깨우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민망해하며 일어날 수밖에 없었지만,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채 너무 가혹하게 달려오기만 했다는 자신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마 내가 요가에 빠지게 된 건 ‘사바아사나’라는 시간이 한몫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요가 수업 시간에 다른 누군가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오면 왠지 내 일처럼 뿌듯하다. 아 우리는 또 달게 쉬고 있구나 하면서 말이다. 사바아사나 자세에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든 게 요가에 빠진 첫 경험이라고 한다면, 요즘엔 사바아사나에 접어들면 나도 모르게 울컥이는 마음에 눈물이 흐르곤 한다. 뿌듯한 마음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겠다. 왜 눈물이 나는지는. 다만 온전히 나의 쉼에 집중하는 사바아사나 시간이 내겐 너무 감사하다. 


프리랜서 방송작가라는 불규칙한 생활과 수입 덕분에 내 인생은 늘 아슬아슬 줄타기와 같다는 생각을 하며 지내왔는데 요가 덕분에 쉬는 법을 조금씩 배우게 된 것 같다. 물론 요가를 시작했다고 해서 내 안의 불안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그런 매직이 벌어지는 건 아니다. 햇수로 3년, 달수로는 꼬박 2년을 채우며 함께 해왔던 프로그램이 지난달 말 갑작스럽게 폐지(?) 결정이 났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나는 또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 코로나 시대에 요즘 새 프로그램 론칭도 안 하는데 어쩌지. 그냥 이참에 몇 달 쉴까. 그럼 또 다달이 월세는 어쩌나. 아냐 지금 알바처럼 하고 있는 작은 프로그램도 하나 있잖아 좀 더 쉬어” 오만 잡생각이 지금도 나를 괴롭힌다. 


어느덧 방송작가 생활을 한 지도 14년. 이제 고인 물이 되어서 방송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다. 어렸을 때부터 키워온 영화와 드라마의 꿈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여전히 하면서도 (물론 이건 핑계겠지만) 내일에 대한 불안 때문에 좀처럼 한글창에 집중하기가 쉽지도 않다. 이런 불안들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또 요가원을 찾는다. 다음 생에나 가능할 것 같던 아사나들이 언젠가부터 조금씩 모양을 갖춰가고, 친구들과의 약속 시간도 요가원 수업을 시간을 피해서 잡게 되고, 쉬는 동안 여행이나 갈까 하는 고민에도 요가원 여름휴가 기간부터 확인하게 되는 요즈음. 요가를 좀 더 깊게, 진지하게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찾아온 또 하나의 고민, 요가 지도자 과정에 도전해 봐도 될까. 


물론 아직 부족한 아사나도 너무 많고 마음가짐 역시 마찬가지지만, 내 삶에 요가를 좀 더 깊이 들이고 싶어졌다. 요가 강사가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조금 더 제대로 배우고 싶어졌고, 조금 더 진지한 마음으로 수련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얄팍하게 알아본 지도자 과정은 시간도 돈도 생각보다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평일 수련은 기본에 주말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반납해야 하고 게다가 300만 원이 훌쩍 넘는 큰돈이 들 줄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온갖 고난도 동작을 하는 숙련자들만 지도자 과정을 듣는 건 아닐까 겁이 난다. 괜히 아사나 비교만 하고 자학하며 돌아오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고. 


하지만 요즘 잠들기 전 하루에도 몇 시간씩 요가 동영상을 찾아보고 있는 나를 보며, “아사나(동작)가 요가의 모든 것이 아니라고 선생님들이 그렇게 말해왔잖아 이럴 시간에 그냥 가서 배워”라는 무모한 마음이 솟아나기도 한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요가에 푹 빠지게 된 걸까. 요가 지도자 과정을 고민하며 갈팡질팡하는 마음에 버릇처럼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할 줄 아는 건 글 쓰는 일뿐이니까, 요가에 대한 내 마음을 앞으로 조금씩 글로 고백해보고자 한다. 요가 지도자 과정을 정말 시작하게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오늘은 오늘의 사바아사나를 꿈꾸며 나는 또 요가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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