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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Sep 21. 2020

마음을 위해서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사실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와서 마지막으로 올린 글이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간다는 사실에 꽤 놀랐다. 꾸준히 요가를 하며 매트 위에서의 깨달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쓰는 요가를 시작했는데, 벌써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이다. 


그동안 괴로운 일들이 꽤 많았다. 함께 일해온 제작사가 망하면서 이미 방송이 나간 프로그램 회차에 대한 페이를 받을 수 없게 되었고, 메인 작가로서 나만 믿고 와준 후배들 페이라도 어떻게든 받아내려고 나름대로는 애를 썼지만, 결과적으로는 방법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노동청에 신고를 하고, 변호사와 상담도 해봤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자, 작가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고, 후배 작가들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감과 죄책감 때문에 괴로웠으며, 믿었던 누군가에게는 실망하기도 했다. 게다가 9월엔 거리 두기 2.5단계 조치로 다니던 요가원들도 2주 동안 문을 닫았고 그 동안 나는 차곡차곡 무너져내렸다.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행히도 거리 두기가 2단계로 완화되면서 요가원이 다시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요가 수련에만 집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요가를 하고, 자기 전에 또 요가를 하고, 어느 날은 하루에 세 시간이 넘도록 매트 위에 서 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매트 위에 설 때면, 괴로운 상황과 마음에서 벗어나 순간의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아마 수련을 다시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상황을 버티지 못했을 것 같다. 요가가 뭐라고 그 시끄러웠던 마음을 잠재우는 걸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어제 수련에서 그 답을 조금 얻은 것 같다. 선생님은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우리가 몸을 위해서는 맛있는 음식도 먹이고, 옷도 사입히고 하면서 마음을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보이는 곳에 신경 쓰고 투자하는 만큼 마음에도 신경을 쓰고 있나요?” 요지는 요가를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자는 이야기였는데, “요가와 마음” 생각해보니 그 안에 이미 해답이 다 있었다. 


아사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선생님들은 늘 몸을 어떻게 쓰라는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숨을 깊게 마시고 뱉으며 숨을 따라 몸이 길어집니다” “서두르지 말고 호흡을 먼저 들여다보세요” “욕심내지 말고 시선을 먼 곳에 둡니다” “매트 위에 자신과 싸우지 말고 분리 주시하세요” “아사나에 집착하지 마세요”와 같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의 소리”라는 키워드를 적으려고 메모장을 연 순간, 또 한 번 머리를 띵하고 맞은 듯한 했다. 이미 요즘의 내가 들여다봐야 할 마음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수련을 하고 적은 메모. “마리차사나 D. 짜증 내지 말기, 포기하지 않기”

마리차사나D / 출처 : ashtangayoga.info

요즘 집착 아닌 집착을 하고 있는 아사나가 바로 마리차사나D이다. 쉽게 말하면 몸을 종이접기 하듯 접어서 비트는 자세인데, (과정 그대로 설명하면 왼다리로 반가부좌를 만들고 오른무릎을 세워서 접고. 오른쪽으로 몸을 틀어서 왼팔로 오른 무릎 바깥을 감싼다음 등 뒤에서 양손을 잡는 동작이다. 이어서 반대편 다리도.) 정말 약 오르게 자세가 될 것 같다가 어느 날은 자세가 전혀 안 될 것 같고 그러다가 선생님이 핸즈온을 해주면 또 되는, 그렇게 나와 요즘 밀당하고 있는 자세이다. 그런데 며칠 전 수련을 하며 그동안 자력으로는 전혀 맞닿을 것 같지 않던 양 손가락이 등 뒤에서 가볍게 스친 것이다. ‘아 손가락 끝인지 손톱 끝인지 무언가가 스쳤어! 닿았어!  조금만 더 ..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아 되나? 아 안 된다. 그래 안 되겠지’하는 의식의 흐름으로 자세를 풀려던 순간, 선생님이 아쉬운 목소리로 다가왔다. 



아니 선생님. 어깨를 더 열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등을 더 펴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포기하지 마세요. 한 번 더 하세요”가 정말 제가 마리치사나D를 성공할 수 있는 팁인 걸까요. 어떻게 하는지를 좀 더 알려주면 좋겠는데 솔직히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렇게 또 마리차사나 D를 시도했는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짝이라도 스쳤던 손끝이 이번엔 아주 멀게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숨을 깊게 들이 마셔보고 숨 따라 몸을 더 비틀어보고 그 짧은 시간 안에 내 딴에는 여러 번의 시도를 이어갔지만, 도통 자세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 정말 너무 잡고 싶은데 손가락 끝이라도!! 이번엔 왜 또 안 되는 거야 언제 되는 거야 아까는 왜 또 될 것 같았던 거야’ 생각하고 있던 찰나, 선생님이 멀리서 지켜보다 또 한 마디를 보탰다. “짜증 내지 말기--” 그제야 한껏 찌푸려진 내 미간이 느껴졌다. 그런데 신기한 건 ‘포기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땐 오히려 더 짜증이 났는데, ‘짜증 내지 말기’라는 한 마디엔 되려 짜증이 멈춘 것이다. 집착하고 있는 마리차사나D에 대한 퍼즐이 거짓말처럼 맞춰진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오며 그 깨달음은 또 매트 밖의 삶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수련하는 동안은 잊었다. 최근에 사건을 겪으며 다 포기하고 싶고 짜증이 났던 현실. 이번 일은 마리차사나 D와 닮아 있었다. 아마도 내 마음이 작가인 나에게 포기하지 말고 짜증 내지 말라는 이야기를 매트 위에서 전한 게 아니었을까 그런 우스운 생각도 든다. 

 

적어도 매트 위에 설 때는 이런저런 생각들에서 멀어져 지금의 순간을 바라보게 된다. 이 순간,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일. 몸을 쓰는 순간들이 마음을 수련하는 순간들로 번지고 있다. 그래서 매트 위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내게 점점 더 소중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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