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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Aug 29. 2020

[쓰는 요가] 매트 위의 동화

별거 아니지만 기분 좋은 잔상들

이러다가 또 요가원 문 닫는 거 아니겠지? 그렇지 않아도 불안하던 차에 결국 어제부터 다시 요가원이 휴원에 들어갔다. 일주일 동안 또 수련을 못 하는 건가 아쉬운 마음과 함께 어느새 함께 수업을 들으며 가까워진 사람들이 생각났다.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볼 수 있겠네. 



워낙 낯가리고 살갑지 못한 성격이라 친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한 편인데, 요가원에서 만난 이들과는 차근차근 친분이 쌓였다. 작년 겨울에는 수업이 끝나고 나면 함께 머리 서기 연습을 하며 친해진 언니들이 있다. 함께 우당탕 넘어지면서, ‘다리를 조금만 더 올리세요’ ‘허리를 펴세요’ 하면서 몸이 일자가 되도록 서로 코멘트해주고 땅에 떨어지기 직전 찰나의 순간에 일자로 선 뿌듯한 사진도 찍어주면서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까지 우리는 매일 머리 서기 연습을 함께 했다. 그리고 나선 종종 함께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때 그 언니들을 보면서 세상에 참 따뜻한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었다. 


늦잠을 자서 아침 수련을 가지 못했던 어느 토요일 아침, 수업이 끝날 시간 즈음 한 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잠깐 집 앞에 나올 수 있어요?” “잠깐만요” 잠결에 대충 옷을 갈아입고 내려갔을 땐, 언니가 직접 만든 짜이 음료를 빈 병에 담아서 가져다주었다. “오늘 먹어야 맛있을 것 같아서”라며. 얼마나 정성이 많이 필요한지 아는 짜이를 받으며, 언니의 그 따뜻한 마음에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를 것이다. 


또 다른 언니는 결혼을 해서 그런지 건강에 대한 정보도 많이 알려주었다. 그래서 매일 수련 후 선생님과 차를 마실 때면 “오늘도 요가원 생생정보통이 열렸나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내가 한의원에 갔는데 소금물을 마시면 좋대” 하며 무슨 소금을 써야 하는지, 소금물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고... 혼자 살아서 그런지 도통 라면을 못 끊겠다는 내 말에는 “라면이 땡기는 건 영양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라면 먹고 싶을 때, 고기를 사서 먹어봐. 목살. 그거 사서 먹으면 라면이 안 땡긴다고” 정말 생각지도 못한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잠잠해지면 다시 오겠다던 언니들이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언니들은 어떻게 사나, 자려고 누우면 그 얼굴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함께 머리 서기를 연습하며 우당탕하던 날들, 다정한 미소. 그러다 그중에 한 언니를 정말 오랜만에 요가원에서 다시 만났다. 임산부 요가를 하러 온 것이다. 그 사이 임신 5개월이라는 소식과 함께...! 반가운 얼굴, 반가운 소식이 함께 찾아왔다. 


생각해보면 참 부러운 커플이었다. 매일 토요일이면 출근을 안 하는 남편과 함께 요가를 하러 왔다. 그렇게 나란히 매트를 펼쳐놓고 요가를 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절로 흐뭇해지곤 했다. 나도 결혼하면 남편이랑 같이 요가하러 다니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 만큼.


또 요즘엔 또 새로운 요가원 생생정보통 멤버들도 생겼다. 어디서 사야 더 할인되는지, 계란은 어디가 더 싼지, 저녁 몇 시에 가면 할인된 가격에 반찬을 살 수 있는지, 그야말로 동네 정보를 훤히 꿰뚫고 있는 이들이 있어서 덕분에 나도 꽤나 도움을 받고 있다. 

지금은 토요일 오전 수련이 끝나고 나면, 종종 함께 밥을 먹는 사이가 되었다. 사실 요가를 잘하고 못 하고 기준은 없겠지만, 선생님들이 선보이는 어려운 아사나를 그녀가 척척 해내길래 수업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배우면 저만큼 할까 궁금해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렇게 오가다 인사를 하다, 말을 트고, 서로의 집이 1분 거리라는 알게 되었고, 함께 수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면 집 앞에 서서 오늘 수련 이야기, 요가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헤어지곤 한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요가 얘기만 하는 친구가 생기다니. 심지어 술도 없이 요가 얘기만 해도 재미가 있다니! 요가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며, 별 거 아닌지만 기분 좋은 일들이 자꾸만 쌓인다. 



요가원에 몇몇 남자 수련생이 있다. 그 중에 한 분인데 아마 50대쯤 되지 않을까 짐작한다. 이름은 잘 몰라도 얼굴은 자주 마주쳐 인사를 나누는 사이. 그분은 올 때마다 만두며 찐빵이며 간식을 사 오는 거로 유명하다. 수련 끝나고 다들 함께 먹으라고 하면서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수련이 끝나면 쌩하고 가버릴 때도 많다. “요가원 등록비보다 간식 사는데 돈을 더 많이 쓰는 것 같은데”라며, 요가원 스텝들이 아무리 사 오지 말라고 해도 늘 양손에 검은 봉다리를 한 두 개씩 챙겨오는 정이 많은 그런 분이다. 


그분에게 자꾸 관심이 가게 된 건, 간식 때문만은 아니다. 딸과 함께 수련하러 오기 때문이다. 종종 시간이 될 때면 고3인 딸과 또 딸의 친구와 함께 오기도 했다. 또 다른 날엔 고3인 딸, 재수생인 아들과 함께 올 때도 있었는데, 내겐 그게 너무 생경한 풍경이었다. 책상에만 앉아 있는 아들 딸이 걱정돼 함께 요가를 하러 오다니. 딸의 친구와도 함께 어울리며 요가를 하는 아빠라니. 아주 착한 주말 연속극에나 나올 법한 캐릭터이지 않은가. 수련을 끝내고 가실 때에도 이제 어디 가냐고 물으면 “딸이 먹고 싶은 데로 가야죠”하며 일어서는 그런 분이다. 


며칠 전 수련에서 내 앞자리에 그 부녀가 있었다. 수업하는 내내 딸과 함께 요가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아주 판타지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이었다. 한참 어린 딸도 다리를 덜덜 떨며 겨우겨우 하는 자세를 그분이 어렵지 않게 해낼 때면 내가 다 뿌듯해지기도 했다. 이상하게 그 부녀가 함께 요가를 하던 뒷모습이 왜 자꾸 생각날까.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자꾸 웃고 있을까. 


사는 게 힘들고 사람들에게 지치면서 언젠가부터 예쁘고 착한 마음들만 가득한 동화 같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 세상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런데 요즘은 착한 동화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은 것 같다. 따뜻한 사람을 만날 때면 따뜻한 내가 되고 싶어졌다. 



이 동화는 먼 곳에 있지 않다. 바로, 여기, 지금. 별거 아니지만 기분 좋은 잔상들로 채워진 동화 속. 이 동화 속 사람들은 매트 위에 함께 서서 더 행복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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