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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Aug 23. 2020

[쓰는 요가] 당신의 발을 응원한 적 있나요?

운동 좋아하는 연예인들이 인터뷰할 때 보면 꼭 뒤따라 붙는 말들이 있다. “운동은 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잖아요. 배신하지 않잖아요” 요가를 시작하기 전에는 전혀 공감 못 했던 그 말에 이제는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프리랜서라는 불안정한 직업적인 특성 탓도 있겠지만, 워낙에 걱정이 많은 성격인 나는 늘 불안을 버릇처럼 달고 살아왔다. 잠들기 전이면 오늘이 후회되고 내일이 걱정되는 삶의 반복. 하지만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는 상대적으로 예전만큼의 불안이 사라졌다. 아마도 매트 위에서 깨달은 것들이 내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게 아닐까. 

어제는 저녁 수업을 들으러 요가원에 들어서자마자, 선생님이 반갑다는 듯 이야기를 했다. “오늘 수업 멤버가 너무 좋네요. 수련을 꽤 하신 분들이 오셨으니까 새로운 시퀀스를 꺼내 볼까요?” 가뜩이나 빡센 수업으로 입소문이 난 분인데 오늘은 얼마나 달리시려나 겉으로는 엄살 부리는 척을 했지만, 속으로는 사실 선생님한테 그런 말을 듣다니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이 보시기에 요가를 좋아하는 수련생 중 하나로 내가 들어가 있는 걸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말이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매트를 깔고 자리를 잡았지만, 역시나 어제의 빈야사 수업은 굉장히 빡셌다. 1시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 만큼, 틈틈이 수건으로 땀을 몇 번 닦아내고 나니 한 시간이 끝나있었다. 아마 내가 취약한 동작들이 많아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수업을 들을 때 나를 화나게 만드는 동작들이 있다. 바로 균형을 잡는 자세. 한 발로 서서 만들어가는 자세들이 내게는 너무 어렵다. 그래서 ‘와 한 발로 서는 동작들이 생각보다 어렵네’ 하는 첫 경험에서 시작해 ‘언젠가는 되겠지’ 포기하는 시기를 지나 ‘도대체 언제 되는 거야’ 자주 화가 나는 지점에 이르게 되었다. 


특히 한 발로 서서 몸을 숙이는 자세를 할 때면, 넘어지지 않으려고 매트 위에서 움찔움찔 애쓰고 있는 내 발가락, 발목 근육들을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움찔움찔하고 있는 내 발을 볼 때면, 마치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다 깐 채로 적나라한 거울 앞에 앉아 있는 듯한 굴욕감이 밀려왔다. 이렇게 못 난 게 나구나, 왜 이거밖에 안 되지? 언제되지? 답답하고 재촉하는 마음이 곧 내 얼굴이었다. 그래서 균형 잡는 자세를 할 때면, 내가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을 비춰주는 거울 앞에 앉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어제도 역시 한 발로 서서 만들어가는 동작을 하며 넘어지지 않으려고 몇 번이나 손이 바닥에 닿았지만, 이제는 전만큼의 조바심이나 화가 줄어든 것이다. 전만큼 휘청이는 횟수가 줄어든 것도 있겠지만, 그만큼 나에 대한 믿음이 자란 탓이다. 한 발로는 1초도 제대로 못 서 있던 사람이었는데 선생님의 리드를 따라 또 무언가를 시도하고 있구나. 나도 새로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이렇게 하다 보면 또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이 되겠구나. 그런 믿음이 생기자 자세에 대한 집착이 줄어들었고, 굴욕감을 안겨주던 내 발을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다. 


어제도 균형 잡는 자세를 하며 그렇게 미워했던 발이 시선에 들어왔다. 그런데 앞으로 고꾸라지지 않으려고 옆으로 쓰러지지 않으려고 움찔움찔 애쓰고 있는 내 발가락, 발바닥, 발목의 근육들을 보니, 새삼 ‘아이들아 너희가 열심히 하고 있었구나’ 우습게도 대견하게 느껴졌다. 


살면서 자신의 발을 응원하게 되는 순간이 몇 번이나 있을까. 분명 나인데, 내가 아닌 내 몸의 일부분을 응원하게 되는 순간들. 그런 순간들을 경험하게 된 건 온전히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부터이다. 발아 조금만 더! 날개뼈 조금만 더 끌어내리자 내려갈 수 있어! 어깨 쓰러지지 마! 생각해보니 매트 위에 설 때만큼 나를 응원하는 순간이 있나 싶다. 



여전히 자세를 안정적으로 취하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느끼며 내일의 나를 조금 더 믿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엔 안되는 아사나를 할 때면 ‘언젠가는 되겠지’ 포기하는 시절을 지나 ‘도대체 언제 되는 거야’ 화나는 시절도 지나 ‘언젠가는 되겠지’ 다시 수긍하는 마음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건 전과 같은 포기의 마음이 아니다. 믿음이다. 이 마음의 변화가 거짓말처럼 요즘의 내 불안을 얼마나 잠재우는지 누가 알까. 



하지만 각자에게 필요한 시간은 모두 다를지라도 꾸준하게 수련하면 언젠가는 매트 위에 안정적으로 설 수 있음을 이제는 안다. 덕분에 삶을 대하는 마음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잘해야 한다’ ‘빨리해야 한다’ ‘남들만큼 해야 한다’ 그런 재촉 대신 그저 ‘꾸준하자’라는 응원을 하게 된다. 


어제의 후회와 내일의 불안과 오늘의 욕심 사이 균형을 잃고 휘청이지 않기 위해서는 꾸준함이 답이겠지.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대신 그저 꾸준하자. 할 수 있는 만큼만 욕심내지 않고 꾸준히 해낸다는 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이 될까. 이 꾸준함이 주는 기쁨을 어느 날 달게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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