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요가
문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마스크를 껴야 하는 하루, 언젠가부터 이런 일상이 트루먼 쇼처럼 느껴졌다. 실은 어느 먼 외계 생명체가 꾸민 몰래카메라 같은 게 아닐까. 몇 년쯤 지나면 코로나 종식 기념일이 생기고 더 먼 훗날 어느 즈음엔 “할머니 코로나가 터질 때도 정말 살아계셨어요?” 따위의 질문을 받게 되는 건 아닐지. 지금의 이런 시간을 누군가는 웃으며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 하루가 트루먼 쇼라는 생각이 드니,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태어날 때부터 원치 않게 자신의 인생을 공유하며 살아온 영화 속 트루먼 쇼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트루먼에게 자신의 인생이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고 있다는 걸 알아가는 하루하루는 비극이었지만, 멀리서 본다면 카메라 밖 자신의 세계를 찾아가는 트루먼의 여정은 지켜보는 나로 금 두 주먹 불끈 쥐고 응원하게 만드는 희극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오늘 나의 하루는 어땠을까. 비극이었을까, 희극이었을까. 먼저 가까이 들여다보자.
아침부터 스트레스로 잠이 깼다. 파산채권을 신청하라는 등기를 받고 나서부터 요 며칠 내내 끙끙 앓았기 때문이다. 제작사가 파산하면서 방송이 나가고도 여전히 받지 못한 돈이 쌓여 있다. 살면서 내 인생에 전혀 없을 줄 알았던 단어 “파산”과 “채권” 두 단어가 하나로 묶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이었는데, 법에 대해서는 1도 모르는 나는 몇 페이지의 상세한 설명과 함께 날아온 등기를 보고서도 도무지 어떻게 신청을 해야 하는 건지 어떤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건지 막막했다.
여차 저차하고 몇 번을 읽고 다시 읽으며 결국 준비한 서류들을 챙기고 법원을 가서 직접 신청할까 하다가 여기에 쓰는 내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분했다. 채권 신고를 한다고 해서 돈을 무조건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못 받은 사람 중에서도 우선순위를 따지고 나면 프리랜서인 내 페이를 받을 확률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이 돈인 프리랜서 작가인데! 돈도 못 받은 것도 억울한데! 이렇게 뛰어다녀도 운 좋아야 받을 수 있다는 건데! 내 시간을 또 할애해야 하네? 그래서 난 강남에 있는 법원까지 가는 대신 우체국 빠른 등기를 선택했다. 주민센터에 가서 등본도 떼고 대형 팬시점에 가서 서류도 복사하고 우체국까지 가는 길은 걸음걸음마다 짜증이 묻어났다. 그렇게 우체국 앞에 다다랐을 때, 머리 위로 비둘기 한 마리가 푸드덕 하로 날아갔다. 윽 뭐야 습관처럼 잔뜩 몸을 움츠렸는데 아끼는 맨투맨 팔 위로 비둘기 똥 찌꺼기인지, 진흙 무더기인지가 톡 떨어졌다. 손대지 않고 그걸 털어내겠다고 어찌나 몸을 흔들어 재꼈는지, 아마 지나가는 누군가가 봤다면, 자기 팔을 뜯어내려고 하는 미친 사람처럼 봤을 것이다.
그렇게 집에 오고 나니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밥도 먹기 싫고 청소도 하기 싫고 그냥 누워있고만 싶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그저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세상은 왜 내게 이런 분함을 안겨주는가. 이 분함과 이 비극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무엇보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후배 작가들에게 미안해해야 하는 현실이 화가 났다. 생각이 또 꼬리를 물려고 하자 그 꼬리부터 끊어낼 필요가 있었다. 왓챠, 넷플릭스를 뒤지다 뜬금없이 다크 나이트를 다시 보며 내 악함도 시험대에 오른 걸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대로 악해져서는 안 돼. 베인처럼 두 얼굴의 사나이가 되는 건 조커에게 지는 일이야 따위의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한껏 게을러진 몸을 다시 일으켰다.
마이솔 수련을 시작한 지 벌써 몇 주가 지났다. 아사나에 집착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만 욕심은 생기고, 여전히 몸은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제는 그냥 해왔던 빈야사도 걸림돌이 되었다. 점프 백 점프스루로 가기 위해선 내 손의 위치, 다리 쓰는 법 모든 것을 제로에서부터 다시 다듬어야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설명해주긴 했지만, 눈으로 보고 이해하는 것과 내 몸을 그대로 쓰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왜 나는 선생님처럼 가볍게 몸이 들리지 않는 거지? 팔 간격이 또 왜 이렇게 벌어졌지? 다리가 어떻게 그렇게 들리는 거지? 하이고 엉덩이는 또 무겁네.
아 열심히 빈야사를 하고 있었는데 새같이 보였군요. 정말이지 날개만 있었다면 그대로 집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푸드덕이란 말에 오늘 맞은 비둘기 똥이 또 생각났다. 이런 비둘기 똥 같은 하루. 아무래도 마이솔의 꽃말은 슬랩스틱인가보다. 마이솔 수련을 시작하고 나서 매트 위에서 혼자 코미디를 자주 찍는다. 뒷구르기와 같은 차크라사나가 여전히 안 돼서 뒤로 돌다 포기하고 앞으로 다시 굴러 올라오거나, 분명 뒤로 돌려고 했는데 옆으로 쓰러지면서 일어서거나 그렇게 다시 매트 위로 올라오면,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요가도 아닌데 누가 봤을까 괜히 겸연쩍다. 그런데 오늘 심지어 빈야사에서 푸드덕 소리를 듣고 나니, 어느샌가 귓가에선 싸이의 “나 완전히 새됐어”가 브금으로 흘러나오고 있었고, 눈앞에선 오늘 낮에 맞은 정체불명의 비둘기 똥이 그려져 또 화가 났다.
절정은 부자피다사나였다. 진도를 받은 지 아직 며칠 안 됐지만, 도무지 발이 어떻게 뜨며 엉덩이가 어떻게 주저앉지 않는지, 여기서 바카사나로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건지 호흡 하나하나가 내게는 고비인 자세. 요즘 내 마이솔 수련이 슬랩스틱 코미디 같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자꾸만 잡생각이 끼어들었다. 훅 치고 들어온 건 동생이 했던 한 마디. 추석 연휴 직전에 부자피다사나와 바카사나까지 진도를 받고 며칠 쉬는 동안 또 아사나가 퇴보(?... 퇴보할 것도 없지만)할까 봐 집에서 혼자 낑낑거리며 연습하고 있을 때였다. 안 되는 자세를 억지로 버티며 동생에게 “원래는 이런 자세가 아니라 다리가 뜨고 블라블라 이런 자세야”하고 열심히 설명했는데 마지못해 들어주던 동생이 한마디 했다.
하 내가 또 아등바등거리고 있었구나. 바카사나는.. 바퀴벌레가 아니고 까마귀 자세인데, 까마귀에 ‘까’자는 꺼내지도 못하고 마음에 바퀴벌레가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리고 오늘 수련 내내 아까 푸드덕거리던 내가 이번에는 또 바퀴벌레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더 정확히 하자면 그렇게까지 낑낑거리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요가를 업으로 삼으려고 배우는 것도 아니고, 이걸 실패한다고 해서 누구한테 욕먹고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이걸 성공한다고 부와 명예가 뒤따라오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자꾸 낑낑거리는 걸까.
매트 위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은 결국 다 내게서 시작되고 내게로 돌아오는 밀물과 썰물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너무 낑낑거리지 말자. 언젠가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행위의 결과에 기대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는데, 읽는 내내 반문을 했던 것 같다. 무언가를 행하는 것은 무언가를 기대하기 때문일 텐데 어떻게 행위의 결과에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내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내 이력과 돈에 대한 기대 때문이고, 요가 수련을 열심히 하는 것도 성장에 대한 기대 때문인데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 곱씹어 생각해보니 결국 마음이 지치는 건 어떤 기대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기대하는 만큼 성장하지 못했으니 지치고, 내가 기대했던 만큼 내게 좋은 이력으로 남지 못했으니 지친 게 아닐까.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말은 결국 결과에 대한 기대는 비극, 그걸 행해가는 과정은 희극이란 뜻인 걸까. 인생도 아사나도, 완성이 아닌 만들어가는 과정에 집중해보자.
그렇다고 해서 오늘 수련이 속상함만 있었던 건 아니다. 애증의 아사나가 되어가고 있는 마리차사나D. 어제 되면 오늘 안 되고, 오늘 안 되면 내일 갑자기 또 되는, 왔다 갔다 하는 아주 종잡을 수 없는 아사나. 그래서 점점 기대도 욕심도 버리게 되는 아사나인데, 오늘 처음으로 양쪽 방향 모두 손이 잡힌 것이다. 사실 수련할 때마다 ‘쌤이 손 좀 땅겨서 잡게 해 주지’ ‘어떻게 하는지 좀 더 자세히 알려주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던 손을 오늘 잡고 나니, 혼자 깨달아가는 과정 역시 수련이었구나 싶다. 마리차사나D를 하는 동안 오늘 쌤은 내 등 뒤에 있었다. 손을 당겨서 잡아주지도 쉬운 요령을 알려주지도 않았지만 “할 수 있어요. 스스로를 믿고 해 보세요.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해주었다.
마리차사나D에서 양쪽 손이 다 잡힌 게 뭐라고 집에 오는 내내 마스크 속 내 입은 피식거리고 있었다. 동생이 바퀴벌레 같다고 했던 부자피다사나지만, 아등바등할지언정 그래도 오늘은 다섯 호흡 하는 동안 발도 동동 떠 있었다. 매트 위에 순간들을 곱씹다 보니 오늘 내내 화가 났던 일들도, 속상했던 아사나들도 뒷전이 되었고, 무언가가 내 안에 꽉 꽉 꽉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리차사나 D에서 손이 잡혔을 뿐인데, 부자피다사나에서 발이 떴을 뿐인데, 자란 건 몸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할 수 있구나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집중하자.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말이 어쩌면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오늘 하루를 몇 가지 단어로 요약해보면 이렇다.
순간순간이 다 비극에 가까웠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돌이켜본 하루는 그렇게까지 비극적이지 않았다. 파산 채권을 신고하러 가는 길에 아침부터 비둘기 똥을 맞으며 시작된 속상한 하루였지만, 매트 위에서처럼 아등바등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나를 조금 더 안아주게 된 하루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