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요가] 스승의 날이니까
이틀 전은 스승의 날이었다. 요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모든 생활이 이렇게 요가를 중심으로 흘러가게 될 줄 몰랐지만, 요가 때문에 스승의 날도 챙기게 될 줄도 몰랐다. 부끄럽지만 정작 학창 시절 때도 마음에 담은 선생님 한 분 없는 내가 며칠 전 무슨 선물을 드리면 좋을까, 편지를 너무 길게 쓰는 건 오바인가 쑥스러운 고민을 하며 스승의 날을 기다렸다.
예전에 선생님 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한 적 있다. 수련을 하다 보면 선생님과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고. 그렇다. 일주일에 6일, 하루에 꼬박 1시간 반씩을 매일 마주하는 사이가 되었다. 엄마도 일년에 몇 번 못 보는데.. 사랑하는 남자친구도 그렇게 매일 마주하지 못하는데..
아쉬탕가 마이솔 수련은 구령 없이 각자 진도만큼 수련을 이어가기 때문에 선생님과 말을 나눌 기회는 사실 없다. 혼자 낑낑거리고 있을 때면 ‘잠깐만 기다려’ 숨을 안 쉬고 있을 때면 ‘숨부터 채우고’ 대충 타협하고 넘어갔다 싶으면 ‘다시 한번 해봐’ 겨우 그 정도.
비록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힘든 아사나를 겨우 마쳤을 때면 ‘수고했다’ 하시는 그 눈빛, 못하겠다고 뒷걸음질 치고 있으면 ‘한 번 더 해봐 괜찮아’ 믿어주시는 그 눈빛, 때로는 그런 눈빛들이 그 어떤 말보다 의지가 되곤 한다. 수련을 하다보면 찾아오는 통증에, 도저히 못 할 것 같은 고난도 아사나에, 쉽게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생각해보면 순간순간 멈출 수도 있었던 마이솔 수련을 계속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온전히 선생님 덕분이다.
특히나 올해 요가 수업을 시작해보고야 알았다. 몸을 이렇게 저렇게 써보세요, 마음을 이렇게 저렇게 가다듬어보세요, 회원님들께 다가가는 마음과 건네는 핸즈온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소요된다는 것을. 그러니 선생님은 얼마나 힘들까. 매일 우리의 새벽 수련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부터 미리 나와 자신들의 수련을 마치고, 그 피곤한 몸으로 자신들의 에너지를 기꺼이 수많은 학생에게 또 전해준다는 건 감히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희생이며 대단한 약속이다.
한 번쯤은 선생님들도 늦잠을 자고 싶으실 텐데, 그냥 수업 한번 안 나가고 싶은 날도 있으실 텐데... 내가 늦잠을 잔 날에도, 힘들어 수련을 미룬 날에도, 선생님의 하루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늘 그 자리에 계신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새벽 수련을 시작하게 된 내 변화의 시작에는 그렇게 몸소 성실함을 보여주신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인 것 같다.
난 유난히 겁이 많은 아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는 자주 망설이고 주저한다. 될 가능성보다는 안 될 가능성에 멈칫하고, 부정적인 시나리오의 경우의 수를 세워 미리 계산해보다 지치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니 여전히 그렇다. 그래서 매트 위에 설 때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이 새 진도를 주실 때면 ‘와 이걸 지금 내가 어떻게 하지?’ ‘내가 앞에 한 거 제대로 보신 건 맞을까 이건 못할 것 같은데’ 걱정되는 마음에 먼저 뒷걸음질을 친다.
평생을 수련해도 프라이머리 시리즈까지는 진도를 나갈 수 있을까 의심했던 내가 여자저차 믿을 수 없게도 세컨 시리즈의 카포타사나까지 와 있다. 그건 나를 포기하지 않은 선생님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선생님들마다 스타일이 조금씩 다르지만, 프라이머리를 함께 했던 선생님은 정말 짤이 없었다. 그래서 더 잊을 수가 없지.
‘선생님 못하겠어요’ 백기를 들 때마다 ‘그럼 세 번 더 하고 마무리’란 말이 돌아왔다. 다리를 목뒤에 거는 숩타쿠르마사나를 연습하며 ‘선생님 목이 부러질 것 같아요’ 석고대죄 하듯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포기의 신호를 보냈을 때도 ‘맞아요 목이 부러질 것 같죠. 그럼 한 번만 더 하세요’ 덤덤히 받아친 한 마디는 내 예상에 없던 것이었다. 목이 부러질 것 같다는데 한 번 더...?
도대체 언제 보고 있던 건지 대충 하고 넘어가려 하면 ‘다시 하세요’ ‘혼자 할 수 있어요’ ‘한번 더 해보세요’ 엄청난 조련술로 나를 휘감았다. 속으로는 ‘이 선생님은 뭐가 이렇게 독한가, 나 진짜 못한다니까요!’ 했지만 덕분에 마이솔 수련을 시작한 지 몇 개월 만에 세투반다사나까지 프라이머리 진도를 다 받을 수 있었다.
그 후 새벽 수련으로 옮기고 또 한 번 고비가 찾아왔는데 선 자세에서 상체를 뒤로 말아 손을 바닥에 짚을 때까지 내려가는 드롭백을 처음 연습할 때 나의 두려움은 극에 달했다. 그대로 뒤로 넘어져 우탕탕 난리가 날 것만 같은 걱정에 차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 무서워서 못 하겠어요’ 면전에서 찌질한 고백을 그리도 많이 했었지. 그때도 선생님은 그저 웃으며 ‘그래 무섭지?’하고 한 템포 기다려주긴 했지만 ‘그럼 오늘은 하지 말자’ 하신 적은 없었다. (오해 금지. 물론 부상과 통증이 있을 땐 쉬라고 하셨다)
매번 진도를 받을 때마다 ‘아 나의 마이솔 수련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이건 내가 도저히 못 넘을 아사나구나. 그래 여기는 못 넘겠구나’ 하면서 여자저차 믿을 수 없게도 세컨 시리즈의 카포타사나까지 와 있다. 카포타사나는 정말 이번 생에 불가능할 것 같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무섭고, 실패할까 두렵고, 자꾸만 작아지는 마음에도 선생님에 의지해서 매일 도전하고 있다.
와 내가 정말 엄청난 선생님들과 함께 한 거구나. 진작에 포기하고 멈춰있던 구간에서 나를 포기하지 않고 끌어준 건 선생님의 몫이었다. 선생님들 덕분에 ‘그래 뭐든 하면 되는구나. 안되는 건 없는 거구나’ 감사한 깨달음이 생겼고, 또 하나 얻은 건 ‘자신감’이다. 인간이 이걸 어떻게 하니? 하던 것드링 하나둘 되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못 할 게 뭐가 있나 싶은 자신감이 생겼다. 요가가 준 또 하나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