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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May 23. 2022

이효리는 이효리, 나는 나

[쓰는 요가] 산토샤로 향하는 길

요가 수련을 한다고 하면 너도나도 약속한 듯이 물어오는 한 마디가 있다. “너도 막 이효리처럼 그렇게 해?” 그래도 또 그 질문이구나 싶어서 “아니 난 그렇게까지 못해” 대답하고 나면 “그럼 이효리가 진짜 잘하는 건가 봐?” 하는 질문이 뒤따라온다. 응 이효리는 블라블라 어느새 나는 설명충이 되어가고 있다. “그럼 너는 얼만큼 해?” 그래 올 것이 왔다. 나는 이효리와 비교할 레벨도 아니거니와 이효리는 하타를 나는 아쉬탕가를 주 수련으로 하고 있고 나 역시 하타수련도 하고 있긴 하지만 어쩌고저쩌고 또 말하려다 말고 그냥 “요가는 경쟁하는 게 아니야. 이효리는 이효리의 요가를 하고 나는 나의 요가를 한다. 나마스테” 하며 진짜 요가선생님인 양 장난스럽게 받아치면 다행히 거기서 일단락이 된다.


특히 요즘 <서울 체크인>에서 이효리의 요가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다 보니 주위에서도 툭하면 이효리 요가를 꺼낸다. 나 역시 이효리 팬이기 때문에 열심히 보고 있다. 그런데 그녀에게 한 가지 질투 나는 것이 있다. 아사나도 아니라, 바로 술이다! 이효리는 왜 전날에도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면서 그것도 독주를 마셨다면서 또 새벽같이 일어나서 아무렇지 않게 요가 수련을 하는 것인가! 나는 술만 마셨다 하면 다음 날 요가 수련은 똥망이 되는데!


게다가 요가 하는 사람이 무슨 술이냐 하면서 한 소리씩 할까봐 술 마신다는 얘기 꺼낼 때마다 괜히 혼자 주눅드는, 이효리는 당당하게 “술이 있어서 버텼다” 라는 말을 하면서 술은 술대로 마시고 요가는 요가대로 하는 게 정말 너어어어무 부러웠다. 이효리는 요가 할 때도 무슨 이효리냐! 사람 정말 부럽게. 게다가 요가화보 촬영할 땐 왜 그렇게 예쁜지! 어쩜 이효리는 늙지도 않아, 평소에 핸드크림만 얼굴에 대충 바른다는 사람이 그렇게 예뻐? 몸은 또 왜 그렇게 예뻐? 아사나는 왜 그렇게 잘해? 저러고 또 술을 마시네? 저러고 또 아침에 요가를 하네? 세상에...


사람이 부끄러워지는 건 참, 한순간이다. 내가 이효리를 이렇게 부러워한다 한들 이효리가 내가 이러고 사는 줄 알기나 하겠어? 내 존재도 모르는데 이런 나를 신경이나 쓰면서 살겠냔 말이다. 이효리는 이효리의 삶을 살아가느라 바쁘겠지. 스스로 반문하면서 쓸데없는 걸 부러워 말자 다짐했다. 그리곤 “나도 내 수련이나 하러 가자”며 하타 수련을 하러 갔다.


그래 이효리가 하는 그 수련이 하타이다. 하타 수련은 한 아사나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수련할 때마다 온갖 시끄러운 마음들과 마주하게 된다. ‘선생님 제발 언제 끝나요? 이제 그만 올라와 다른 자세! 다른 자세’ ‘하 이제 그만 올라올까? 아니야 다섯 호흡만 더 하자’ ‘지금 올라가면 나만 제일 먼저 포기한 걸까’ ‘포기하면 뭐 어때’ ‘아니야 그냥 숨만 더 쉬어’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런데 요가원에서 또 수많은 이효리들을 마주했다. 저렇게 하려면 몇 년이나 더 수련해야 할까 싶은 고수들 사이에서는 주눅이 들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수련을 시작했던 사람의 아사나가 일취월장한 걸 보면 나만 이렇게 못하는 건가 자꾸 부러워진다. 주눅 들었다가 부러웠다가 마음이 시소를 타는 동안 ‘할 수 있어! 너도 하는 데까지만 하면 돼’ 또 있는 힘껏 나를 응원해본다.


하지만 이어지는 고난도 아사나에 시도해볼까 말까 또 망설이고 있었다. 안 하면 나만 안 하는 건가, 했다가 나만 혼자 우당탕탕 하는 게 아닐까 결국에 내가 또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챘지만 마음과 달리 몸은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소극적인 도전을 이어가고 있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선생님이 결국 한마디를 했다.

 


아 정말 듣고 싶던 한 마디였다. 그래 내 수련을 하면 되는 거지. 사실 옆에서 우당탕탕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나는 내 매트 위의 세계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앞뒤좌우로 빼곡한 이효리들 사이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나. 내가 가장 응원하는 것도 나. 내가 가장 집중하는 것도 나다. 이효리들 때문에 주눅 들기도 부러워지기도 하지만, 집중의 순간엔 오직 나와 나의 대화일 뿐. 이효리가 끼어들 틈이 없다. 

 

요가에는 윤리적, 도덕적 지침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만족’을 뜻하는 ‘산토샤’이다.  “산토샷 아누따마 수카 라바하" 요가 수트라에서는 산토샤를 실천하면 더없는 행복이 찾아온다고 했다. 마음을 한 방향에 집중하고 늘 행복하며 어떤 이유로도 후회하지 않는 것을 산토샤, 만족이라 했다. 하지만 처음 그러한 것들을 배울 땐 만족? 뭐 그런 건 모르겠고 일단 아사나를 더 잘하고 싶다는 욕망만 강했다. 하지만 수련을 하다 보니 아사나가 어쩌면 가장 쉬운 수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련이 잘되든 안 되든 매트 위에서 보낸 시간에 후회 없이 만족하고, 그런 나에게 있는 그대로 만족하는 것이 또 하나의 수련이 되었다. 내 몸보다 조금 더 큰 매트 위라는 작은 세계도 만족으로 채우기 어려운데 매트 밖의 세계는 또 어떠하리. 게다가 매트 위에서 만난 이효리들보다 더 강력한 이효리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효리들이 부러워하는 내가 되는 것보다 내 마음에 드는 내가 되는 게 더 어려운 법. 설령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내가 되더라도 감사히 받아들이자고 다짐해본다. 지난 시간을 후회 없이,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 없이, 타인을 부러워하는 마음 없이 만족할 줄 안다는 건 참 어려운 수련이 되겠구나 싶지만 이런 마음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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