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에는 7시간이 있다.

사랑의 시차

by 쓰는 사람
“두 개의 시간이 공존하는 연애”

나는 서울에 그는 파리에, 우리 사이에는 7시간의 시차가 있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사는 탓에 평범한 연인들처럼 모닝콜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상은 우리에게는 없다. 오히려 잠에서 깬 아침이면 ‘지금쯤 그는 자고 있겠구나. 예민해서 자주 깨는 사람인데 오늘은 잘 자면 좋겠다’ 그런 바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퇴근해 저녁을 먹을 즈음에야 그에게서 연락이 온다. 나의 하루 일과가 끝나가는 무렵이, 그에게는 하루를 시작하는 무렵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의 연애는 전혀 다른 두 개의 시간이 공존한다. 어제만 해도 난 태풍 때문에 집에만 있다가 밤을 맞았는데, 혼자 여행을 떠난 그는 햇살이 너무 좋다며 바에서 혼자 낮맥을 하는 사진을 보내왔다. 내가 좋아하는 파울라너 맥주였다. 사진을 보자마자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가 좋아하는 맥주를 마시니까, 네가 보고 싶어 졌어”하고 말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멀리 있을까”

보고 싶을 때 달려갈 수 없는 거리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것이 우리 연애의 슬픈 전제조건이다. 그리고 벌써 그를 보지 못한 지 한 달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벌써 한 달이라니. 우리는 또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서로 다른 나라에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많은 시간을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프리랜서라서 한 번씩 시간이 길게 날 때면 프랑스에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이다. 올봄엔 그가 한국에 왔고, 올여름엔 내가 프랑스에 갔다. 그렇게 핑퐁처럼 오고 가며 우리는 7시간의 시차를 지우는 연애를 한다.


인생은 예측불가의 영역이라지만, 세상엔 내가 이렇게 멀디 먼 롱디를 하게 될 줄이야. 덕분에 서로의 언어도 하나씩 배우게 됐다. 그는 이제 한국말로 “보고 싶다”는 말을 또박또박할 수 있게 되었고, 나 역시 가장 빨리 배운 불어가 ‘보고 싶다 tu me manques’였다.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보고 싶다는 표현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네가 좋아하는 화이트 맥주를 사서 냉장고에 가득 채워놨어. 빨리 파리에 오지 않으면 내가 다 마셔버릴 거야” 같은 귀여운 협박이 있는가 하면, “어젯밤에는 네가 좋아하는 쓰시송(프랑스식 소세지)이랑 화이트 맥주를 혼자 마셨어. 네가 좋아하는 걸 먹고 있으니까 너랑 같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 하며 쓸쓸한 고백을 할 때도 있다.


그리고 어제는 이런 일도 있었다. 다음 주, 파리로 여행을 가는 한국 친구에게 그가 자기 집을 빌려주기로 했는데 그 친구가 고마운 마음에 한국에서 뭐 필요한 거 없냐고 가져가겠다며 물어본 것이다. 그는 “그럼 캐리어에 (아무르) 좀 넣어서 올래?”라고 했단다. 내게 그 일화를 전하며 “캐리어에 들어가려면 무게 제한이 있으니 살을 좀 빼야겠다”며 농까지 했다. 그러다 “아니야 난 네가 23kg까지 마르는 건 싫어. 오면 안 되겠다”라고 했다. 그런 그의 이야기들을 듣고 있을 때면, 보고 싶다는 말이 목 끝까지 또 차오른다. 세상이 빨리 진화해서 비행기를 타고 12시간을 날아가지 않아도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런 연애를 이어가는 우리를 주위 사람들은 신기해하곤 한다. 물론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정작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우리가 헤어질 거라고 예상하는 주위의 시선이었다. 그가 한국에 올 때마다 친구들을 만나면 늘 같은 질문이 쏟아져 나온다. “둘이 얼마 만에 보는 거야?” “언제까지 한국에 있어?” “넌 언제 프랑스 갈 거야?” “프랑스 가면 또 언제 와?” “그렇게 못 보는데도 좋아?” “결혼은 안 해?” 반복되는 질문들에 스트레스가 쌓여가던 어느 날, 누군가 말했다.


“그게 무슨 연애예요?”

1년에 반을 못 보는데 그게 무슨 연애야. 악의 없이 농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잔잔했던 마음에 기어코 파동을 일으켰다. 이건 그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 날 그 말을 듣자마자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하고서는 조용히 울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화장실에 혼자 앉아 온갖 생각을 다 했다. 그래 보고 싶을 때 보지도 못하는 게 무슨 연애야. 언제까지 한국에서 프랑스를 오가면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더 만나다 보면 끝엔 뭐가 있을까.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는 이제부터 친구들을 만날 때 혼자 가라는 짜증 섞인 선전 포고를 했다. 사람들의 질문에 속이 상했다는 내 말에 그의 표정도 바뀌었다. “신경 쓰지 마. 앞으로 그런 질문을 받으면 그건 네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라고 해” 그의 그 단호한 대답이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안정시켰다.


사랑의 시차는 얼마인가요?

사랑에도 시차가 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누군가의 마음은 멈추고 누군가의 마음은 계속 흐르면서 함께였던 시간은 둘로 쪼개진다. 물론 우리에게도 사랑이 식는 날이 올 수 있겠지. 하지만 적어도 멀리 있다는 이유 때문에 헤어지게 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곁에 있어도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멀리 있어도 모든 걸 내다보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아마 전자가 나의 지난 연애들이었다면, 지금의 연애는 후자가 아닐까. 7시간이라는 시차가 있지만, 서로의 낮과 밤을 상상하며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배려하는 방법을 배웠고, 서로 다른 시간의 풍경을 선물하기도 한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간밤에 그가 보낸 사진이 도착해있고, 해지는 저녁이 되면 늦은 잠에서 깨어났을 그에게 노을을 선물할 수도 있다. 물리적인 시차보다 중요한 건, 사랑의 시차이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이 아는 7시간의 행복이 있다. 오늘 저녁에 받은 그의 아침을 보는 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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