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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나 Feb 01. 2022

때로는 칼이 되어 꽂히는 말이 있다

회사에서 팀장님에 대한 평가는 많이 갈렸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과거 그는 소위 전사에서 '날렸던' 사람이라고 했다. 그만큼 똑똑하고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하는 의견도, 팀장과 일을 하며 부서 이동을 요청한 직원이 한둘이 아닌 만큼 리더를 할 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


양쪽으로 갈리는 평가만큼이나 직원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도 달랐다. 나는 팀장의 리더십에 대해 의문을 갖고 그와 적당히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그렇게 했던 가장 큰 이유는, 팀원들이 업무보다도 그의 눈치를 살피는 데에 더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기분이 좋을 때에는 '큰일 났다' 싶은 사건도 쿨하게 넘어가는 반면, 조금 예민할 때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는 팀장의 기분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서 팀워크가 형성되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그런 모습조차도 옹호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하려고 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어쨌든 본인이 계속 모셔야 하는 사람이고, 팀장님도 한 팀의 리더인 만큼 스트레스도 많을 것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누군가는 팀장이 예민하고 감정 기복이 심한 건, 회사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상처받는 등의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음속으로는 항상 이런 질문이 들었다. 아니, 그 사람에게만 유독 그런 일이 많았대요?)




"야, 너는 진짜 살 좀 빼라. 못 봐주겠다."

"아휴... 못생긴 게... 못생겨가지고..."

"너는 조금 닥쳐, 닥치라고. 안 닥쳐?"

"이 새끼야. 웃어? 뭘 웃고 지랄이야."


팀장이 B과장에게 하는 말들을 듣고 있자면, 가만히 있는 내가 다 화가 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과장님은 팀장을 옹호하는 직원 중 하나였다.


"과장님, 괜찮아요?"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유, 모나야 괜찮아. 걱정하지 마. 팀장님은 내가 편해서 그러는 거야. 오늘 좀 기분 안 좋은 일이 있나 보지 뭐."

아무리 수더분하고 성격 좋은 B과장이라지만, 도저히 상처가 안 될 수 없는 말들인데. 한 편으로는 팀장을 향한 신뢰와 존경이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언젠가부터 B과장의 표정이 유독 밝아졌다. 야근을 밥 먹듯 하던 사람이 퇴근 시간을 칼같이 맞추는 일이 잦아졌다. 어쩐지 평소보다 화장과 옷차림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오후, 과장님이 오랜 솔로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체 상대가 누구냐는 동료들의 추궁에 못 이겨 과장님이 남자친구의 사진을 살짝 보여주었는데, 핸드폰 화면 속에는 정말로 훤칠한 청년이 서있는 게 아닌가! 동료들이 신이 나서 질문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회의실에는 타인의 연애사를 듣는 즐거움과 설렘이 가득했다.


갑자기 벌컥, 문이 열리고 팀장님이 들어왔다. 나는 습관처럼 그의 표정을 살폈다. '또 과장님 웃는 거 꼴 보기 싫다고 한 소리 하시겠구나.' 그렇게 생각한 게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갑자기 싸해진 분위기에 팀장님이 물었다. "왜 갑자기 나 오니까 조용해져. 나도 그 사진 좀 보여줘 봐." 


과장님이 곧바로 핸드폰의 화면을 꺼버렸다.

"뭐야, 이거 반응이 왜 이래? 남자친구 사진이라도 돼?" (언제나 눈치 하나는 끝내줬다.)


여전히 모두가 팀장님 입에서 어떤 막말이 튀어나올까 걱정하고 있었고, 그의 발언은 너무나 쉽게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야, 네가 남자친구가 생겨? 솔직히 말해봐, 어디 호빠 다니는 거 아니야?"


회의실에 깊은 정적이 흘렀다.


'호빠에 다니는 것 아니냐'니 그게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가? 그것도 다른 팀원들 앞에서 구성원 한 명에게 이렇게 모욕적인 발언을 한다고?


그가 정말 큰 실수를 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 자리에 있는 동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어쩌면 나와 같이 '이건 정말 잘못됐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 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시선을 떨구고 있을 뿐이었다. 팀장이 제 분에 못 이겨 욕설을 읊조리며 사무실로 돌아갔고, 이내 과장님도 붉어진 얼굴로 회의실을 떠났다. 설렘이 가득하던 공간이 서먹하고 민망해졌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에 확인해야 할 질문이 남았고, 그 질문에 대답해줄 사람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윽고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방금 굉장히 폭력적인 발언 아닌가요? 저런 것도 컴플라이언스 위반에 해당되지 않나요?"


누군가 대답했다. "좀 심하긴 했죠? 오늘 기분 별론가봐요." 그리고는 덧붙였다. "아, 팀장님께 보고드릴 거 있었는데... 오늘은 안 되겠네요."


과장님은 자리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을 하기 시작했다. 반면에 나는 남은 업무시간 내내 그 자리에 있던 동료들에게 화가 잔뜩 나있었다.

평소에는 과장님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던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서는 왜 과장님을 위해 단 한 마디도 못했던 걸까. 팀원들이 함께 '방금 그 발언은 분명히 잘못되었다'라고 입을 모았다면, 팀장 또한 권력을 이용해 감정을 배설해왔던 자신의 미성숙한 태도를 한 번쯤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야 타인에게만 향했던 질문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나는 그렇게 화가 났으면서도 왜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답이 떠올랐다. '그 자리에서 무슨 말이라도 먼저 꺼냈다가는 내일부터 팀장님 얼굴을 어떻게 봐...'


회의실에서 분노에  동료들에게 질문을 던졌을 , 나를 바라보던 그들의 얼굴이 생각났다.  얼굴들이 혼자 유난 떨지 말라고, 너도 똑같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제야 남들과는 다른 척, 깨끗한 척, 똑똑한 척하고 있던 내 모습이 똑바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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