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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나 Jan 31. 2022

내 잘못은 아니지만 내가 잘못 생각한 건 맞아

우리 본부의 A대리님은 싹싹하고 일도 잘해 본부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미인이기까지 해서 여기저기에서 동료들이 대리님에게 좋은 남자분을 소개해 주려고 애를 썼다. 


대리님은 겉으로만 봤을 때는 다소 '차가운 도시 여자' 스타일이라, 처음에 난 그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만 바라봤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조금씩 친해져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평소와 같이 지내던 어느 날, 점심 식사를 하던 중 대리님이 힘들게 본인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가정적이기로 소문난 R 차장님이 언젠가부터 자꾸 업무를 알려주는 척, 책상 밑으로 대리님의 손을 계속 쓰다듬고 개인적으로 만나자고 청한다는 것이다. 거절을 하면 '남자친구도 없는데 뭐 어떻냐'라는 반응이고, 며칠 전에는 퇴근하는 하는 길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 껴안고는 '같이 술을 마시러 가기 전까진 놓아주지 않겠다'라고 억지를 부려 너무나 당혹스러웠다고 한다. 이런 상상도 못 할 이야기들을 털어놓으며 그녀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사회생활 초년의 무서울 것 없던 나는 '당장 사내 고충처리위원회나 외부 제보 채널에 신고하라', '그런 인간은 신고해서 어떻게든 회사에서 내쫓아야 한다, 창피한 줄을 알아야 한다'며 열을 올렸다. 


하지만 영악한 R 차장은 카톡이나 사내 메신저 등 기록이 남는 수단으로는 대리님께 접근하지 않았다. 남들이 같이 있는 사무실이나 회식 장소에서, 그래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때에, 추악한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더욱이 그는 평소 가정적인 사람으로 소문이 나있어, 대리님은 '누가 내 말을 믿어줄까'라며 혼자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대리님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다. 나는 어떻게든 대리님을 돕고 싶었고 그래서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상황을 알릴 수 있도록 그녀를 설득했다. 수개월이 지나 그녀는 사내 고충처리위원회에 모든 내용을 털어놓았다.


분명 '완벽 비밀 보장'을 장담하던 위원회였는데, 거짓말같이 단 몇 주만에 본부에 모든 소문이 퍼졌다.

그리고 R차장과 A대리가 같은 부서에서 일하지 않을 수 있도록, R차장의 부서 이동 명령이 떨어졌다. 이를 이유로 대리님을 흉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리님 '때문에' R차장이 팀을 떠나게 됐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수군대는 와중에도 대리님은 꿋꿋이 버텨냈다. 

그리고 다음 해 상반기, R차장은 보란 듯이 연중 승진을 했다. 지난해 '불미스러운' 부서 이동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었다. 


너무나 안타까웠다. 대리님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해야 할까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말을 하면 지금까지 내가 옳다고 믿어왔던 모든 것을 부정해야만 할 것 같았다. 더 이상 예전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리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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