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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나 Feb 05. 2022

단숨에 결심한 퇴사

입사 직후에는 주어진 일을 이해하고 주변의 눈치를 보기 바빴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나면 일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일에서 어떤 기쁨이나 보람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사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고 '직접 프로젝트를 실행해보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다' 대답을 들었다.


이후 2년 차 하반기에 처음으로 프로젝트를 매니징할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더 괴로웠다. 보고하는 과정에서 팀장님, 실장님, 본부장님의 의견이 하나씩 더해지면서 점점 기획 의도와는 상관없는 이상한 모양새가 되어갔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마주한 일련의 사건을 통해 무기력을 학습한 내가,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힘을 많이 잃었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 중 하나였다.

‘이건 정말 아닌데' 싶어 팀장님 책상 앞으로 어렵게 다가갔다가도, 부정적인 코멘트가 몇 번 들어오면 '네네, 알겠습니다'만 반복하며 소득 없이 자리로 돌아왔다. 머릿속에는 여전히 질문이 가득했지만, 감히 상사의 의견에 반박하거나 의견을 피력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때의 내가 회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센스'였다. 팀장의  마디를 통해 숨은 의도를 캐치하고 그의 생각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를 설득할  있는 직원이 되면, 그제야 '' 자체를 우선순위로 가져올  있을  같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갑갑하고 불행해졌다. 그건 센스가 아니라, 애초에 가질 수 없는 초능력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매일 지하철을 타고 8시 30분까지 출근했다.


사람들은 9호선을 두고 ‘지옥철’이라고 했다.

이미 몸을 옴짝달싹 할 수도 없을 만큼 직장인들로 꽉꽉 들어찬 작은 칸 하나에, 매 역마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왔다. 더 이상은 단 한 명도 들어올 수 없을 것 같은 공간인데, 여덟 명의 사람들이 열차를 타보겠다고 힘으로 눌러대면 ‘어어-!’ 숨을 참으며 모두가 안으로 밀려났다. 누군가 나를 쳐도, 밟아도, 만져도 가만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 이래서 지옥이라고 하는구나.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든 그 공간에서는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사건사고가 났다.

누군가는 언성을 높이며 싸웠고, 누군가는 호흡 곤란으로 쓰러졌다. 어느 날에는 (아마 9호선의 실상을 잘 모르고 탑승했을) 임산부 한 분이 복통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돕지 못했다. 8시 30분까지는 사무실에 앉아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출근 시간대 그 열차 안에 탄 사람들은 ‘존엄한 인간’이기를 잠시 내려둔 듯 보였고, 나 또한 그랬다.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쓰고 서있는 채로 눈을 감았다. 그날은 열차 안이 작은 회사 같다고 생각했다.


회사생활에 대한 회의가 내 삶 전체에 대한 후회와 자기혐오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삶의 오점을 찾아내기에 바빴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인 선택을 한 건 전부 나였고, 그래서 내가 제일 역겨웠다. 쌩쌩 달리는 차를 보며 ‘무단횡단을 하다가 차에 치이면 죽지 않을 정도로 다칠 수 있지 않을까?’, ‘버스를 타고 출근하면 사고 날 확률이 더 높아질까?’ 궁금해했다. 뜬금없는 순간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주변 사람들을 당황케 만드는 일이 잦아졌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아 처음으로 수면제를 구매해봤다.


그러던 중 동기의 권유로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고, 그제야 내가 우울증을 겪고 있음을 알았다.

이후 반년 가까이를 끝도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느라 발버둥 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참 지독한 게,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니 회사에 다닌 지 3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쯤 되니 의외로 많은 게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주어지는 일조차도 내가 예상 가능한 범주로 들어오기 시작하니 프로젝트 기간만 아니면 눈치 안 보고 칼퇴가 가능했다.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게 해 준 좋은 사람들과 삼겹살에 시원한 소맥 한잔 하는 게 행복했다.


상사가 아무리 지랄을 해도 월급, 성과급, 명절 상여금은 따박따박 들어왔다.

그 돈으로 부모님 유럽 여행 보내드리고, 할머니 댁 가전 해드리고, 동생 용돈도 통 크게 쥐어줬다. 다들 이래서 직장 죽어라 욕하면서도 어떻게든 붙어있나 보다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실장님으로부터 내가 특진 대상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서는 계속 회사에서 입지를 다져나가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이대로라면 적당히 평범하고 나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회사에 정착하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정작 내 머리는 그것을 ‘위험상황’이라고 판단했나 보다. 편하고 고민 없는 날을 이어가던 중에 이상한 위기감이 들기 시작했다.

승진을 대가로 회사가 내게 무엇을 요구할지, 그들 뜻대로 안 되면 날 얼마나 몰염치한 인간 취급할지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무엇보다 이렇게 한번 자리를 잡고 눌러앉으면, 이제 절대로 퇴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앞으로는 그저 회사에 오래오래 붙어있는 게 내 목표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휘청거리며 고민하기를 오래였는데.

회사에서 걸어 나갈 결심이 선 것은, 단단한 바닥에 두 발로 중심을 잡기 시작한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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