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언급한 내용들이 퇴사를 고민하며 얻은 깨달음에 대한 것이었다면, 아래의 글을 통해서는 회사를 나오는 과정에서 미처 고려하지도 실천하지도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고 싶다.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하고 있는 분은 조금 더 찬찬히 이 글을 읽어주시길 바란다. 나의 후회를 거울 삼아 당신의 퇴사를 더 이롭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1.
당신으로 하여금 퇴사까지 결심하게 만든, 일터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지 떠올려보라. 그것은 얼마나 본질적인 문제인가?
우리는 종종 덜 중요한 것들에 한눈이 팔려 진정 중요한 것들은 놓쳐버리고 만다. 보통 부차적이고 가변적인 것들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고, 본질적인 것들은 그 껍데기를 겹겹이 들추어 보아야만 비로소 어슴푸레 형체가 잡히기 때문이다.
앞서 취업을 준비할 때, 회사의 외부적인 요인만을 고려하여 지원서를 써냈다고 밝힌 적이 있다. 퇴사를 결심할 때에는 보다 본질적인 것들에 집중하고자 노력했고 그렇게 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것 같다. '리더십이 결여된 팀장과 함께 일하기가 싫다'든가, '팀워크와 소속감 따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카드 업계는 이제 사양산업으로 더 이상의 성장이 어렵다'와 같은 사실들이 나의 결정에 필요 이상으로 개입했다는 걸 이제는 인정한다.
그래서 이런 단점을 모두 보완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게 됐다고 치자. 그 이후에 새로운 직장의 상황이 앞으로 절대 바뀌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고, 그럴 때마다 회사를 떠날 수도 없다. 그래서 당신이 깊이 고민할만한 가치가 있는 건 오히려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이 업계에서 나는 '이것만큼은' 반드시 배워 알아야만 한다.
- 이 직무를 '어느 정도로' 익히면 나의 경력에 '이만큼의' 도움이 될 수 있다.
- 이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최소한 '이런 것들을' 확인해보고 싶다.
2.
만약 당신의 문제가 외부적 요인으로 발생한 것이라면, 당신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실질적인 노력을 했는가? 특히 동료들에게 충분히 도움을 요청했는가?
나는 일이 많이 힘들었던 때나 팀장의 폭언을 견뎌야 했던 시기에는, 동료들에게 힘들다며 많이 징징대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퇴사에 대한 결심이 서고 나서는 혼자 글을 써가며 정리했을 뿐, 주변에 거의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의 퇴사 소식에 동료들이 굉장히 놀라워했다. 진짜로 회사를 나갈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며... 친하게 지냈던 어떤 이들은 나의 결정에 섭섭해하며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었는데, 그들이 진짜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었음을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다. 그때는 타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던 터라, 누군가 나를 도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분명한 의지라고 볼 수도 있다.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이제는 중견기업급으로 성장한 모 회사의 대표님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해올 때, 대표님께서는 주로 어떤 기준으로 면접자를 평가하시나요?” '조직문화 적합성’이나 '회사와의 핏' 같은 말을 기대했는데, 그의 답변은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저는 다른 것보다도 그 사람이 왜 이전 직장에서 나왔는지, 혹은 나오려고 하는지에 대해 아주 집요하게 확인합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하며 마치 부품처럼 느껴져 이직을 결심했다'라고 대답한다면, 언제부터 그런 고민을 갖고 있었으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얼 했는지 물어보죠. 이어서 본인이 느끼고 있던 문제점을 동료와 상사에게 어떤 방식으로 공유했는지, 그 결과 어떤 과정으로 퇴사를 결심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도 질문합니다.
만약 누구에게도 그 과정을 나누지 않고 이직이나 퇴사를 결정하게 된 거라면, 우리 회사와도 똑같은 방식으로 끝날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거든요."
따라서 당신의 문제 상황이 외부적/가변적 요인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해결방안을 모색함과 동시에 적절한 방법으로 주변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라.
어쩌면 당신은 이미 너무나 지쳐서, 마음 뒤편에 삭힌 분노를 잔뜩 쌓아놓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지점에서 한 발짝 떨어져, 다른 이들과 함께, 객관적인 시선으로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3.
부서이동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예상하는 것보다 많다.
퇴사를 고민하는 시점에서 부서이동의 기회가 온다면 우선은 잡아본다고 해도 손해 볼 건 없다.
회사에 이미 정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에선 소속팀만 변경되는 게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할 거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서 이동은 최소한의 것만을 잃으면서도 큰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만약 기존 직무에 대한 불만이 많은 상황인데 현재 재직하는 곳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이라면, 새 부서에서 만족스러운 경험을 할 가능성이 꽤 커진다. 큰 기업에는 규모만큼이나 다양한 일을 하는 부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직무는 바꾸되 회사에서의 경력은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으니, 경제적인 측면이나 인맥 관리 측면에서도 더 좋은 기반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 여러 부서에서 일하며 업계에 대해 더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만약 그 업계가 너무 싫어 떠나고 싶은 상황이라면, 경영지원팀이나 홍보팀 등 제너럴한 직무로의 이동 기회를 노려보는 것도 추천한다. 해당 직군은 업계와 상관없이 모든 기업에서 필요로 하기 때문에, 관련 경험을 쌓아두면 원하는 업계로의 이직이 쉬워질 수 있다. 따라서 부서를 옮기고, 타 업계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공통된 업무지식을 빠르게 얻어가는 걸 목표로 하는 것도 좋겠다.
아직 기회가 오지 않았다고 실망하긴 이르다. 당신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았다면, 퇴사 소식이 전사에 공유되고 난 후에야 오퍼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인사 ERP를 통해 퇴직 신청을 하고 나서도 2개 팀으로부터 부서이동 제안을 받았다. 하나는 인턴으로 잠시 근무했던 B팀의 팀장님으로부터, 또 하나는 내가 국문과 출신임을 알고 있는 홍보팀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죄송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후라고 답변드리니, 공식적인 퇴직 신청 전에는 부서 간 이해관계로 인해 먼저 연락을 취하기가 어려웠다며 아쉬워하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진작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면, 적당한 시점에 제안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당장에 회사를 박차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당신을 붙잡는 상황에서 한 번쯤 못 이기는 척 져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물론 그 이후, 경험과 배움을 꾸준히 쌓아가는 것이 온전한 당신의 몫임에는 변함 없을 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