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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나 Feb 12. 2022

어떤 경험은 '경험'이 아니었음을

이쯤에서 다시 한번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내가 몇 편의 글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 회사에 이렇게나 이상한 사람들이 많았다니까요'나 '그때 이 사람들 때문에 너무 힘들어 견딜 수가 없었어요'가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고 불편한 이야기들을 꺼내야만 했던 건, 당시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을 최소한으로라도 언급하지 않고서는 그때 내가 느꼈던 무기력과 퇴사를 결심한 이유를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글로 의도한 바는 충분히 전달되었다고 생각되어, 이제부터는 '퇴사 과정에서 내가 후회했던 것

들'을 꺼내어보고자 한다. 누군가에게는 나의 솔직하고 조금은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조용한 위로와 응원으로 가닿기를 바라며.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무엇이든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오해하는 사람이 없도록, 조건을 하나 달아 주변에 다시 전하고 싶다.


'경험해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너의 시도 자체는 절대 경험이 될 수 없다.
그것이 경험, 더 나아가 배움으로 이어지려면
치열한 고민을 바탕으로 가설 수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말처럼 인생은 어떻게든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의 마음가짐으로는 시도해보는 것은
결코 '경험'이라는 탄탄한 기반이 될 수 없다.


내가 3년간 회사에서 한 경험은, 왜 경험으로 보기에 부족한가?

바꾸어 말하면, 당신의 경험은 어떻게 비로소 경험이 될 수 있을까?



1.

나는 스스로에 대해 너무나도 몰랐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조차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직장에서 어떤 경험을 해보고 싶은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가 너무 어렵고 막막하다면, 먼저 찬찬히 자신의 삶을 정리해보는 것부터 시작해볼 것을 추천한다.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은 글쓰기이다.


나의 경우에는 퇴사 결심이 똑바로 서고 나서야, 앞으로의 행방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어디에서 뭘 해서 먹고살 수 있을까?'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지만, 여전히 답은 알 수 없었다. 다만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해왔던 선택에서 실마리라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란 작은 희망을 가져봤다.


생각만으로는 될 게 아니었다. 오히려 머릿속에서만 실마리를 찾으려고 하면 그것들이 얽히고설켰다. 그래서 퇴근 후에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장래희망'을 갖던 순간, 무언가를 정말 열심히 했던 때, 몰입할 수 있었던 것들, 어떤 갈림길에서 무언가를 선택한 이유, 그 결과에 대한 생각 등 지나온 모든 삶이 글감이 되었다. 처음엔 정말 '실마리'를 발견하기 위한 노력으로 시작한 것이었는데, 내가 찍어왔던 수많은 점들이 점점 하나의 선명한 선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어릴 때 나는 가난하고 아픈 사람을 위해 일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대학에 다니면서는 매주 장애아동 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방학이나 크리스마스에도 꽃동네나 보육원을 돌아다니며 일손을 보탰다.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에는 한국국제협력단 해외사무소 인턴과 대기업 사회공헌 부서 위주로 지원서를 제출했었다. 무언가 보람찬 일에 대한 갈증이 항상 있었던 것이다. 그 '보람찬 일'이란 국가/장애/질병 등을 이유로 공정하지 못한 상황에 처한 이들을 돕는 일이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을 모를 수가 있냐며, 누군가는 우습게 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매일밤 토해내듯 글을 쓰고 나서야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2.

직장을 선택함에 있어 나만의 근거는 부족했고, 세상의 기준과 평가에만 집중했다.


이 시리즈의 가장 첫 글에서 밝혔던 것처럼 나는 본래 취직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다.(라고 쓰지만 사실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인문대생이었지만 '열심히 주어진 공부 하다 보면, 대한민국에 어디 나 데려가 줄 회사 하나 없겠나'싶어 비빌 언덕도 없는 주제에 대학생활 참 속 편하게 했더랬다. 그렇게 고민 없이 이 동아리 저 동아리에서 감투 쓰고, 사람들하고 매일 같이 밥 먹고 술 먹고, 교환학생까지 다녀오니 이제 정말 현실적인 고민을 미룰 수가 없는 시기가 되었다.


급하게 취업을 준비하던 내가 지원서를 쓰는 회사의 기준은 아래 세 가지였다.

- 지금 보니 얼마나 외부적 요인으로만 점철된 기준인지...

1)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아는 회사일 것
2) 회사의 이미지가 나쁘지 않을 것
3) 회사에 여성이 충분히 많을 것


주변에서 취뽀 소식이 슬슬 들려오고 마음에 조급함이 크게 자리잡기 시작할 때쯤, 무심코 지나던 교내 게시판에서  회사의 인턴 모집 포스터를 발견했다.   번도 생각해본  없는 업계였는데 따져보니 나의 기준에는 모두 들어맞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그곳은 나의  직장이 되었다. 정작 중요한 문제(회사에서 하고 싶은 , 얻고 싶은 , 기여할  있는  ) 궁금해하지도 않은 , '남들 하는 대로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아는 이미지 좋은 회사'만을 기준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던 것이다.




카드사의 수많은 금융 상품과 수익구조를 조금 더 자세히 알아봤다면  회사에 들어갔을까?

내가 무슨 일을   즐거운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면 3년이  때까지 버티고 있었을까?

답은 너무나 명백하게도 '아니오'였다.


바로  대목이 모든 고통의 시작이 되었다는 , 나는 나중에서야 뼈가 저리도록 느꼈다.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도 '경험'으로 쳐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점이 가장 애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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