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행복 제작소, 소설 <오로라 이엘로>


그래도 부낭은 연구소로 출근했다. 남은 출근 일수가 보름도 채 남지 않았음에도 매일같이 자리를 지켰다. 텅 비어 버린 건물을 마지막까지 지킬 수 있던 이유는 단 하나. Ha 원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믿음마저 져버릴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부낭은 소독을 마친 가운을 걸치고서 수소와 산소가 원자가 든 통 앞에 앉았다. 창밖으로는 이미 검붉은 노을이 차오르고 있었다. 오늘까지 하면 이미 여든아홉 번째 실패였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굳은 믿음으로 이어가고 있는 실험이었지만, 심란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원칙적으로는 실험실 구역에서 휴대폰을 사용하면 안 되었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그런 규칙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카메라에 찍혀도 그만이었다. 사무실 한쪽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도 더 이상 위협이 되지는 못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번호를 확인하고는 활짝 미소 지었다. 화면에 뜬 건 누나의 휴대폰 번호였지만, 부낭은 전화를 건 이가 누나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전화는 곧 영상통화로 전환되었다. 영상통화가 시작되자마자 차가 지나가는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아스팔트 바닥을 경쾌하게 내리밟는 발소리가 들렸다. 화면은 뜀박질 소리와 함께 어지럽게 뒤집혔다. 한참 동안 뛰어다니던 상대방은 드디어 전화가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전화기를 얼굴 앞으로 들어 올렸다.


화면에 비친 부낭을 보자마자 상대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작은 화면을 가득 채운 얼굴은 순식간에 그의 세상을 환하게 밝혔다. 부낭은 잠시 눈을 감고서 그 웃음소리에 잠겨 들었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상쫀!”


부낭은 눈을 떴다. 말랑한 볼이 화면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피식 웃으며 원자가 담긴 유리통 당겨 휴대폰을 받쳐 놓았다.


“어, 그래. 집에 가는 길이야?”


부낭이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화면 너머의 아이가 힘차게 끄덕였다. 화면도 그에 맞춰 위아래로 움직였다. 아이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또 한 번 웃음을 터트렸고, 부낭은 그와 함께 웃었다. 조카에게서 걸려 온 영상통화는 요즘 그의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낙이었다.


“삼촌 보여줘야지. 그거 어디다 뒀어? 어? 뭐라고? 낭아, 잠깐만.”


아이의 뒤에서 누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는 조카의 가방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가방 안을 돌아다니던 그는 종이와 함께 겨우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고!”


조카는 종이 하나를 높게 든 채 외쳤다. 귀를 찌를 듯이 날카로운 고음. 한껏 눌리고 뭉그러진 발음. 그가 하나도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잊어버렸다. 이제 막 어깨선에 다다른 배냇머리를 찰랑이는 아이. 그 앞에 설 때면 그는 매번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상쫀, 이고! 이고!”


작은 아이가 다시금 외쳤다. 얼굴보다 두 배는 큰 종이를 자그마한 손으로 꼭 쥐고서 카메라에 내보였다.

“이게 뭐야?”

“까두!”


아이는 접혀 있던 종이를 양옆으로 활짝 열었다. 그 안에 숨겨져 있던 그림과 글이 한꺼번에 펼쳐졌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한 문장으로 인식하기도 어려운 글자들. 아지랑이 같은 선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생 일 추 카 해 상 쫀’


종이의 한쪽 귀퉁이에는 허리가 이상하리만치 긴, 뼈대만 남은 사람도 하나 서 있었다. 머리가 산발로 흩어져 있는 그림 속 사람은 아침마다 마주하는 거울 속 자신과 똑같았다.


“가족한테 줄 카드를 만드는 수업이었대. 근데 이걸 만들어 온 거 있지? 참 나. 생에 처음으로 만든 카드인데 그걸 외삼촌한테 썼단다.”


누나는 기가 찬다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니 부모 둘 다 멀쩡히 살아있는데 왜 외삼촌 걸 만들어왔는지 모르겠어. 누가 보면 외삼촌이랑 같이 사는 줄 알겠네, 정말. 서운하다 진짜.”


평소 같으면 부낭은 누나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따라 부낭은 웃을 수 없었다. 심장 깊은 곳에서 시작된 옅은 떨림은 삽시간에 강한 진동으로 퍼져나갔다. 그는 간신히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더 했다가는 분명 못 볼 꼴을 보여줄 것만 같아서였다.

몇십 년 만에 받아 본 손 편지. 그 카드가 전한 건 단순한 생일 축하가 아니었다. 잔뜩 흩어진 글자 속에서 그는 잊고 있던 사실을 보았다.


텅 빈 건물에서 조금씩 마모되고 있던 그였다. 침묵 속에 전해지던 상부의 비웃음에 자신마저도 조금씩 동조해 가던 중이었다. 어쩌면 자신은 처음부터 연구소장을 하기에는 자격 미달인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다른 사람이 맡았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은연중에 자신을 놓아 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뭉그러진 발음과 흩어진 글자들은 그를 붙들었다. 조카의 편지는 희미해져만 가던 그의 가치에 짙은 윤곽선을 그려 주었다. 그는 자격 미달인 소장일지언정, 자격 미달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함께 살지도 않는 조카에게 첫 카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는 아니었지만,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존재였다.


그는 분명 가치 있는 사람이었다.




* 소설 <오로라 이엘로> 중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소설 < 오로라 이엘로 >


“행복의 제물, 우리는 모두 행복의 제물이에요”


가까운 미래, 행복마저 상품이 되어 버린 시대. 행복과 특별함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가장 평범한 노동자 피페의 이야기.


꿈으로 행복을 만드는 오로라 제작소. 피페는 지난 10년간 그곳의 성실한 제작자였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교체되고, ‘그’마저 사라졌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녀를 지탱하는 힘은 하나였다. 특별하고도 평범한 성공의 꿈. 평생 그 꿈이 온당하다 믿었다. 어느 날, 삶에 한 질문이 날아들어 모든 걸 뒤흔들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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