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제작소, 소설 <오로라 이엘로>
그날은 오로라 제작소에 길이 남을 순간이 되었다. 초대 연구소장은 조카의 카드를 보는 순간, 실로 오랜만에 턱 끝까지 차오르는 뭉근하고 진한 감정을 느꼈고. 그 가슴 따뜻한 행복은 유리통에 담긴 원자들을 술렁이게 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부낭이 조카의 편지에 감동 받아 벅차오르던 순간부터 통 속의 산소와 수소 원자들은 빠르게 운동하기 시작했다. 원인은 SEND 파동이었다. 행복이나 기쁨, 감동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만 만들어지는 뇌파인 SEND 파동. 평소에는 잘 감지되지도 않는 미약한 생체 파동은 그날따라 이상하게 원자들을 움직이게 했다.
그날의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초대 연구소장은 강력한 감정 에너지를 생성하며 온몸으로 전율했고, 수소와 산소 원자가 담긴 통은 그의 숨결이 닿을 정도로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연구소장의 감정 에너지를 흡수한 원자들은 고장 난 녹음기처럼 SEND 파동을 복제하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규칙적으로 흔들리던 그들의 운동 에너지는 서서히 빛 에너지로 바뀌어 갔다. 은은하게 일렁이던 빛은 곧 새하얀 안개구름을 틔웠고, 그 사이에서 짙은 보라색의 오로라가 피어났다.
첫 인공 오로라, Ha 원소는 그렇게 우연한 계기로 만들어졌다. 과학자들은 처음에 부낭의 연구 발표를 믿지 않았다. 순수한 수소(H)와 산소(O) 원자가 SEND 파동에 노출되는 순간 전혀 다른 Ha 원소가 탄생하다니. 그리고 그걸 차갑게 얼리면 단단한 암석이 된다니. 그들이 알고 있던 모든 과학적 상식을 거스르는 연구 결과였다. 하지만 초대 오로라 연구소장은 그들의 눈앞에서 오로라 얼음 제작 과정을 시연해 보였고, 세상은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뇌파 수집기와 증폭기를 깊게 눌러 쓴 연구소장은 그들의 멍한 얼굴을 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동시에 그의 조카도 영상통화 화면 저편에서 함께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오로라 얼음이 실험실을 나와 공장으로 향하자, 곧 세계 곳곳에는 오로라 제작소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오로라 얼음은 더 이상 신비한 미지의 우주 물질이 아닌, 절차에 맞게 생산되는 규격화된 상품이었다. 오로라 얼음의 공급이 늘어나며 세상은 차차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오로라 얼음에 집착하던 집단 광기는 서서히 수그러들었고, 사람들은 새롭게 제정된 규정량에 따라 오로라 얼음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어디서든 구할 수 있고,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게 된 오로라 얼음은 그렇게 서서히 사람들의 생활 속에 녹아들었다. 오로라 얼음을 찾는 수요는 여전히 많았지만, 그에 파생되는 몇몇 문제들도 항상 있었지만. 모두 예전의 사고들에 비하면 별거 아닌 일들이었다.
세상의 소음이 점차 잦아들던 그때, 오로라 연구소는 전에 없던 거센 갈등으로 휘청이고 있었다. SEND 파동 수급 방안을 놓고 이사장과 부낭의 의견이 완전히 엇갈렸기 때문이었다.
당시 오로라 제작소는 수백 명의 사람을 고용해 오로라 얼음을 제작하고 있었다. SEND 파동은 감정에서 비롯된 생체 파동이었고, 지구의 생명체 중 가장 강력한 감정 파동을 지니고 있던 건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로라 제작소는 사람을 기용했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는 간단한 문제였다.
하지만 부낭은 사람을 고용하는 걸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사람 대신 SEND 파동 생산기를 설치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SEND 파동 생산기란 감정 파동을 균일하게 출력하는 기계로, 사람의 SEND 파동을 복제해 매번 똑같이 재생하는 장치였다.
“매일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감정은 강압적으로 요구한다고 억지로 짜낼 수 있는 노동력이 아닙니다. 결국에는 SEND 파동 생산기가 필요할 겁니다. SEND 파동 생산기는 인간의 완벽한 대체품이 될 수 있어요. 자동화 공정을 도입하면 오로라 얼음의 생산량도 곱절로 늘릴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속적인 부낭의 만류에도 이사장은 꿈쩍하지 않았다. SEND 파동 생산기 발명을 위해서는 십 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고, 그마저도 완벽하게 구현될지는 미지수였다. 반대로 사람은 지구 전역에 널려 있었으며, 이미 완벽한 SEND 파동의 원천이 되어 주고 있었다. 그래서 이사장은 SEND 파동 생산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사람을 앉혔다. 사람은 SEND 파동 생산기보다 효율적이진 않았지만 경제적이었다.
“지속적인 오로라 얼음의 대량 생산을 위해서는 SEND 파동 생산기를 개발해야 합니다. 사람의 감정에는 한계가 있어요.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제작자들이 전부 미쳐 버리고 말 겁니다. 지금이야 초창기니까 괜찮지만, 분명 문제가 발생할 거예요.”
“이미 잘 굴러가고 있는 제작소야. 더 욕심내지 마.”
“이사장님.”
“사람 하나가 미치면 다른 사람으로 바꾸면 되고, 그 사람이 미치면 또 다른 사람으로 바꾸면 돼. 세상에 사람은 많고,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어. 자네가 더 잘 알지 않나. 요새는 기계보다 못한 게 사람이야. 그런 사람을 덥석 써 준다고 하니 다들 얼마나 고맙겠어. 나도 나름 봉사 정신으로 이런 결정을 한 거니까 더는 말을 말게. 자네 말마따나 자동화 공정이 되면 훨씬 편한데, 일부러 손해를 보면서까지 사람을 쓰는 거 아닌가.”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부낭이 격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게 어떻게 사람을 위한 결정입니까! 처음부터 철저하게 경제적으로 접근했으면서. 그런 위선적인 소리는 그만둬요!”
“글쎄. 이걸 듣고도 자네가 위선적인 소리라고 할 수 있을까?”
이사장은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플라스틱 서류철에는 ‘상상학교’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 소설 <오로라 이엘로> 중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행복의 제물, 우리는 모두 행복의 제물이에요”
가까운 미래, 행복마저 상품이 되어 버린 시대. 행복과 특별함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가장 평범한 노동자 피페의 이야기.
꿈으로 행복을 만드는 오로라 제작소. 피페는 지난 10년간 그곳의 성실한 제작자였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교체되고, ‘그’마저 사라졌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녀를 지탱하는 힘은 하나였다. 특별하고도 평범한 성공의 꿈. 평생 그 꿈이 온당하다 믿었다. 어느 날, 삶에 한 질문이 날아들어 모든 걸 뒤흔들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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