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꿈으로 형상화하는 아주 세세한 과정

갈라진 얼음, 소설 <오로라 이엘로>


오로라 얼음 제작기에 순차적으로 불이 켜졌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거대한 기계는 몸을 부르르 떨며 은은하게 진동했다.


오로라 얼음 제작기는 분출기, 출력기, 냉각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분출기는 허리 높이까지 오는 콘솔로, 수소와 산소 원자를 이온화하여 내보냈다. 출력기는 오로라 제작자의 SEND 파동을 증폭하여 출력하는 기기로, 수소와 산소 원자들에 파동을 입혀 Ha 원소로 합성시켰다. 냉각기는 합성을 거친 Ha 원소가 완벽한 ‘오로라’로 변할 때쯤 작동되어, 극저온의 냉각 질소로 오로라를 오로라 얼음으로 만들어냈다.


피페는 계기판의 버튼을 누르고 레버를 당겨 놓고서, 냉동고 문을 열었다. 냉동고 안에는 산소와 수소가 들어있는 붉은색과 흰색의 합금 캡슐이 열을 맞춰 서 있었다. 피페는 두툼한 장갑을 낀 손으로 손바닥 만 한 캡슐을 하나씩 집어 들고서 냉동고의 문을 닫았다. 계기판의 녹색 버튼을 눌러 분출기의 개폐장치를 연 후, 두 개의 캡슐을 알맞게 끼워 넣었다. 분출기는 곧 거센 굉음을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싯싯 소리와 함께 투명 관을 타고 수소와 산소가 흘러나왔다. 공기가 빠져나오는 소리가 끝나가자 피페는 덮개를 내려 유리관을 가렸다. 덮개를 씌우자마자 유리관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회전력을 이기지 못해 관이 덜컹거릴 때면, 눈이 부실 정도로 번쩍거리는 빛이 덮개 사이로 새어 나왔다. 투명 유리관 아래쪽에 설치된 플라즈마 버너에서 새어 나오는 빛. 그건 제작자들이 흔히 ‘플라즈마 아궁이’라고 부르는 장치였다. 플라즈마 아궁이를 거치며 산소와 수소는 완벽하게 이온화되었고, 오로라가 될 준비를 마친 모습으로 출력기에 흘러 들어갔다.


출력기는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유리 구체와 그에 연결된 몇 가지 금속 장치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열기구 풍선같이 거대한 구체의 상단에는 철제 고깔이 달려 있었고, 하단에는 축음기의 나팔관 같이 생긴 금속 조형물이 구체를 감싸고 있었으며, 금속 나팔관은 다시 아래에 설치된 정육면체 모양의 투명 큐브와 연결되어 있었다. 투명 큐브는 제작자들이 꿈을 꾸는 ‘상상 큐브’로, SEND 파동이 만들어지는 곳이었다.


피페가 상상 큐브 앞에 서자, 정육면체를 이루는 모든 선에 하얀빛이 들어왔다. 그녀는 큐브의 잠금장치에 팔에 차고 있던 팔찌와 홍채를 번갈아서 인식시켰다. 곧 큐브를 이루고 있던 네 면의 벽이 열렸다. 상상 큐브는 일주일 전과 같은 모습으로 그녀를 반겼다. 정육면체 공간의 한가운데에는 유리로 만든 동그란 연단이 있었고, 연단 위에는 하얀색 소파와 은색 탁자가 놓여 있었으며, 탁자의 한가운데에는 오로라 얼음이 가득 채워진 철제 쟁반과 집게가 놓여 있었다.


피페가 큐브 안으로 발을 내딛자 사면의 벽이 서서히 내려와 닫혔다. 유리 너머로 디버깅 요원의 모습을 보였다. 어둑한 콘크리트 작업실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검은 형체. 그는 피페의 모든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피페는 그의 시선을 애써 떨쳐내며 연단 위로 올랐다. 동그란 소파에 몸을 누이자 상상큐브 정가운데에 매달려 있던 행복 파장 수집기가 천천히 내려왔다. 둥근 고리 모양의 하얀 머리띠에는 여덟 가닥의 전선이 달려 있었는데, 이들은 큐브의 위편에 달린 금속 나팔관에 연결된 선으로, 피페의 SEND 파동을 증폭시켜 이온화된 수소와 산소 원자들에게로 전달해 주었다.


그렇게 Ha 원소 합성이 완료된 후에는, 출력기의 구체 위에 설치된 철제 고깔, 냉각기가 가동되었다. 냉각기에서는 뿜어져 나오는 영하 300도 남짓의 액체 질소는 Ha 원자를 일순간에 암석처럼 단단하게 얼려 오로라 얼음을 완성했다. 완성된 오로라 얼음은 벽에 설치된 관을 통해 중앙 창고로 이송되었는데, 그곳에서 간단한 선별과 재단 작업을 마친 후 필요한 곳으로 배달되었다.


피페는 SEND 파동 수집기를 머리에 쓰고서 오로라 얼음이 놓인 쟁반을 흘긋 바라보았다. 최근 들어 꿈을 시작하기 전, 오로라 얼음을 먹는 걸 최대한 피해 왔던 그녀였다. 오로라 얼음은 여전히 선명한 상상을 가능하게 해 주었지만, 또렷하게 펼쳐지는 이미지들은 피페에게 오히려 독이 되었다. 꿈이 현실과 가까울수록 그의 모습도 진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오로라 얼음을 앞에 두고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밖에 서 있는 디버깅 요원은 그런 그녀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차피 일주일밖에 안 지났잖아. 피페는 다시금 주문을 외었다. 오늘 꿈 몸살이 터질 일은 없을 거야. 피페는 단호한 손길로 철제 집게를 들어 작고 하얀 얼음 하나를 입 안으로 던져 넣었다.

혓바닥 위로 동그랗고 차가운 덩어리가 굴러 들어왔다. 동그란 얼음이 입 안 점막에 닿자마자 입술 사이로 하얀색의 연기가 폴폴 새어 나왔다. 입이 급속도로 건조해지는 걸 느끼며 피페는 눈을 감았다. 깊게 심호흡하며 집중했다. 뇌 안의 근육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피페는 몽실몽실한 구름이 손끝에서 맴도는 것을 상상했다. 보드라운 솜털이 손가락을 간질이는 걸 느꼈다. 낮게 떠다니는 구름을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아래로 펼쳐진 넓은 구름의 초원. 끝 모르게 펼쳐지는 구름의 계곡. 피페는 팔을 양옆으로 넓게 펼치고서 한없이 늘어선 구름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녀는 직선을 그리며 활강했다. 사방에서 포근한 감각이 몸을 감쌌다. 또 한 번의 시작이었다.




* 소설 <오로라 이엘로> 중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소설 < 오로라 이엘로 >


“행복의 제물, 우리는 모두 행복의 제물이에요”


가까운 미래, 행복마저 상품이 되어 버린 시대. 행복과 특별함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가장 평범한 노동자 피페의 이야기.


꿈으로 행복을 만드는 오로라 제작소. 피페는 지난 10년간 그곳의 성실한 제작자였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교체되고, ‘그’마저 사라졌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녀를 지탱하는 힘은 하나였다. 특별하고도 평범한 성공의 꿈. 평생 그 꿈이 온당하다 믿었다. 어느 날, 삶에 한 질문이 날아들어 모든 걸 뒤흔들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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