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부품이 꿀 수 있는 가장 특별한 꿈

갈라진 얼음, 소설 <오로라 이엘로>


박수 소리에 눈을 떴다. 피페는 어느덧 무대 뒤편에 서 있었다. 분주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손에 들고 있는 작은 기기를 통해 서로에게 끝없이 메시지를 전송했다. 가끔은 다급한 손짓으로 서로에게 수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주변의 소음을 뒤로한 채 무대 저편을 내다 보았다. 커튼 틈으로 넓은 무대가 보였다. 무대 한가운데에는 등받이가 높은 두 개의 노란색 고급 소파가 서로를 마주 보며 비스듬히 서 있었고, 그 사이로는 검은색 다이아몬드 탁자가 놓여 있었다. 탁자 한가운데에는 붉은색 꽃 한 송이가 꽂힌 짙은 남색 꽃병이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큐 카드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탁자 위로 큐 카드가 하나 툭 떨어졌다. 왼편의 소파에 앉아 있던 사람이 던진 것이었다. 그는 팔꿈치를 의자에 올려놓은 채 손을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며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곧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피페는 고개를 들어 무대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검은 어둠 사이로 보이는 객석. 환한 조명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피페는 그곳에 수많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피페의 어깨를 건드렸다.


3분 후에 나가셔야 해요. 준비하세요.


전해지는 수신호. 피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커튼 사이로 무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손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관객에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떠들어 대는 진행자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익숙한 삼 층 높이의 극장. 그곳은 십 년 전 어느 날, 부낭의 강연을 들었던 무대와 완벽하게 같은 모습이었다.


어렵게 구한 표였다. 몇십 년 만에 열린 부낭의 공개 강연은 시작과 동시에 매진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였다. 그런 부낭이 몇십 년 만에 강연을 재개했으니,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건 당연한 일이었다.


피페는 순식간에 날아가는 자리 중 가까스로 한 좌석을 손에 넣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표를 손에 얻은 그녀는 쾌재를 불렀다. 당시 입사한 지 열흘밖에 되지 않았던 그녀는 오로라 제작소가 무조건 옳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부낭 박사의 강연이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오로라 제작소를 처음 건립한 사람의 실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삼 층의 맨 끝 자리였지만, 다행히 커다란 화면과 성능 좋은 스피커가 있어 피페는 무대를 직관하듯 볼 수 있었다. 강연이 시작되자 진행자는 통상적인 말들을 늘어놓은 후, 부낭 박사를 관객에게 소개했다.


“부낭입니다, 여러분!”


진행자가 크게 소리치자,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나 박수치며 환호했다. 그들 안에는 피페도 있었다. 그녀는 두 손을 부서지라 맞부딪치며, 기쁜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드디어 화면에 잡힌 그의 얼굴. 피페는 처음으로 마주한 그의 실물에 까무러치게 놀랐다. 자신이 알던 부낭 박사의 모습과 그의 실제 모습이 완벽하게 달라서였다. 피페는 그때까지만 해도 작업실 복도에 걸려 있는 그의 사진이 진짜라고 믿었다. 과거 방송에서 보았던 중년의 그가 시간이 흘러 노인이 되면 분명 이런 모습이겠거니 생각했었다.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이지적인 눈빛으로 부드럽게 늙어가는, 그런 멋있고 지혜로운 노인이 되었을 거라 상상했었다. 하지만 무대에 등장한 그의 모습은 피페의 예상을 완벽하게 빗나갔다. 머리는 몇 가닥 남지 않은 채 전부 벗겨져 버렸고, 피부는 심술 맞게 주름져 있었으며, 곳곳에는 쥐젖과 검버섯이 피어올라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예민하고 불안하며 위태로운 눈빛만이 가득했다.


왜 낯선데 익숙하지.


어딘가에서 본 것만 같은 얼굴. 한 번 만난 사람을 쉽게 잊지 않는 피페는, 기억을 더듬어 그를 어디에서 만났는지를 생각해냈다.


“아!”


입술 사이로 짧은 단말마가 새어 나왔다. 오로라 제작소 입사 첫날 마주했던, 백발이 성성한 노인. 부낭은 그와 꼭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피페는 머리를 세게 쳤다. 왜 좀 더 빨리 그를 알아보지 못 했느냐고 스스로를 탓했다. 같이 사진이라도 찍거나 서명이라도 받아놓을 걸 그랬다며 후회했다.


하지만 강연을 들으며 그녀는 오히려 그러지 않았음에 안도했다. 그날의 강연은 실망의 연속이었다. 시작은 부낭의 발음이었다. 피페는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부낭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뭉그러진 발음으로 더듬더듬 이어 나가는 그의 말은 웅얼거리는 메아리가 되어 관객석 사이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피페는 그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고된 삶의 끝에서 가까스로 말하려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감동적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마음은 확성기 로봇이 들어서며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부낭의 애처로운 발음을 보다 못한 진행자는 결국 그에게 마이크를 대신할 음성교정 확성기를 건네주었다. 음성교정 확성기는 마이크처럼 생긴 로봇으로, 부낭처럼 발음이 온전치 못하거나 목소리를 잘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고안된 기기였다. 일반적으로 소통에 큰 도움을 주는 로봇이었지만, 그날 부낭이 쥐고 있던 로봇은 자꾸만 오류를 일으켰다. 기기는 부낭의 말을 매번 엉망으로 전달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인강이 졸리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철학적인 과제’가 ‘철분 많은 가재’로 변하기도 했다. 말이 거의 다 엉터리였던지라 소리를 듣지 않은 채 화면에 띄워진 자료를 읽는 편이 나았다.


그렇다고 자료가 유익한 것도 아니었다. 한 시간 남짓한 강연 중 새로운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뉴스나 방송에서 되풀이되는 가벼운 이슈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마저도 이슈를 그저 단순히 언급하고 넘어가는 식이었다. 명망 있는 박사의 깊이 있는 성찰이나 날카로운 분석은 단 한 줄도 없었다. 유명 석학의 혜안을 기대하고 왔던 피페는 적잖이 실망했다. 자료가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괜히 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용만 계속될 줄 알았더라면, 그녀는 절대 그 먼 거리를 힘들여 달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삼 층의 객석을 메운 수많은 사람 중, 피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 누구도 피페처럼 눈을 굴리지 않았으며, 시계를 보거나 하품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발음교정 로봇이 전달을 잘못해도, 자료가 얄팍해도, 심지어 부낭 박사가 진행자의 질문을 무시한 채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가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그에게 집중했다. 부낭의 말을 전부 머리에 새길 것처럼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가끔씩 고개를 끄덕였고, 감탄사를 내뱉기도 했다.


“중요한 건 파멸이 아닌 공생입니다. 인간은 비인간과 함께할 수 있어요. 모두는 각자의 가치로 연대해야 합니다.”


그의 강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부낭과 진행자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관객들도 하나둘씩 그들과 함께했다. 삼 층 높이의 강연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기립 박수로 부낭을 배웅했다. 사람과 로봇의 부축을 동시에 받으며 쓰러질 듯 발을 내딛는 노인.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자리에 앉는 사람은 없었다.


피페는 그날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는 관중이 의외로 시야가 좁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녀가 관중을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객석의 사람들은 부낭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가 발음을 잘하든 못하든, 지겨우리만치 단순한 내용을 계속 늘어놓든 상관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말이 아닌 사람이었다. 부낭의 말은 부낭이 한 말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서 어떻게든 의미를 찾았고, 그렇기에 그의 말이 실제로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부낭이었고, 그건 다른 모든 걸 덮어버렸다. 무엇이 아니라, 누가 중요하다는 사실. 그날 처음 알게 된 세상의 규칙은 묘하고도 낯설었다. 하지만 동시에 매력적이기도 했다. 가지고 싶을 만큼.


환호하는 객석의 사람들을 보며, 부낭의 관중을 자신의 관중으로 만들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증명되는 사람. 피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녀는 부낭과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싶었다. 삼 층을 꽉 채운 관객들을 마주하고, 아무 말을 해도 환호를 받으며, 무대에서 사라지는 순간까지 박수를 받고 싶었다. 그녀는 무대 위 부낭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은 오늘의 꿈을 만들었다. 피페 앞에 펼쳐진 삼 층 높이의 극장은 그날 부낭이 섰던 장소와 완벽하게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무대는 강연이 아닌 토크쇼였다. 은퇴한 오로라 제작자들을 번갈아 초대해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논하는 방송. 지루한 주제를 유쾌하게 진행해 유명세를 얻은 프로그램이었다.


정년을 꽉 채운 오로라 제작자. 마의 5년을 몇 번이나 넘기며 정년의 나이에 은퇴하는 오로라 제작자는 매우 희소했다. 그래서인지 오로라 제작소는 여러 토크쇼와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들의 삶을 적극적으로 세상에 공개했다. 오로라 제작소는 그들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얼굴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을 최대한 윤택하고 평화롭게 포장했고, 그렇게 방송을 탄 이들은 금세 유명인이 되었다. 은퇴한 오로라 제작자의 명성이 쌓여 갈수록 오로라 제작소의 이미지 또한 좋아졌다. 사람들은 점점 더 오로라 제작소를 인간 노동의 가치를 중요시하며, 한 번 고용한 이들을 끝까지 책임지는, 믿음직한 회사라고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오로라 제작소는 자신을 도운 이들에게 반드시 섭섭지 않게 보답했다. 방송에 한 번 나갈 때마다 은퇴자는 오로라 제작자 시절에 받았던 월급과 같은 액수의 돈을 받았다. 방송에 더 많이 나가면 나갈수록, 그들의 통장 잔고는 두둑해졌다. 명예와 존경심, 부러움의 시선들은 거액의 돈과 함께 딸려 오는 보너스였다. 그래서 은퇴자들은 방송이 오로라 제작소의 농간임을 알면서도 침묵했다. 그들은 마침내 다가온 승리의 순간을 차마 거부할 수 없었다. 만들어진 꿈속에서의 성공이 아닌, 진짜 현실에서 맛보는 성공. 그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짜릿함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더 오로라 제작소의 현실을 함구했다. 5년을 채우지 못하고 떨려난 오로라 제작자들이 대부분이었음에도, 그들 중 절반 이상이 미친 채로 병동에 갇혀 짧은 생을 마감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대중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아무도 그들에 대한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한 오로라 제작자. 성공한 소수. 대중이 보고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그러한 것들뿐이었고, 그러한 이야기들이 반복되며 오로라 제작소는 더욱 위대해졌다.


피페는 오래전부터 그 위대함의 일부가 되고 싶었지만, 선뜻 자신의 꿈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녀의 꿈에는 분명 어두운 면이 있었고, 피페는 양심을 팔아가면서까지 자신의 꿈을 밀어붙일 수 없었다. 하지만 오로라의 꿈은 피페 안에 있던 그러한 욕망을 정확히 간파했고, 한 토크쇼를 그녀의 눈앞에 보여주었다. 피페는 그 꿈을 보는 순간 다른 모든 것들을 잊어버렸다. 막연하게 그렸던 위대함의 빛은 다른 모든 걸 가려 버릴 정도로 찬란했다. 바래 왔던 모습을 눈앞에서 정면으로 맞닥뜨린 순간, 그녀는 자신의 성공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 소설 <오로라 이엘로> 중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소설 < 오로라 이엘로 >


“행복의 제물, 우리는 모두 행복의 제물이에요”


가까운 미래, 행복마저 상품이 되어 버린 시대. 행복과 특별함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가장 평범한 노동자 피페의 이야기.


꿈으로 행복을 만드는 오로라 제작소. 피페는 지난 10년간 그곳의 성실한 제작자였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교체되고, ‘그’마저 사라졌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녀를 지탱하는 힘은 하나였다. 특별하고도 평범한 성공의 꿈. 평생 그 꿈이 온당하다 믿었다. 어느 날, 삶에 한 질문이 날아들어 모든 걸 뒤흔들기 전까지.


※ 소설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아래 페이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그달 모나 Monah thedal


링크트리 : https://linktr.ee/monah_thedal

모나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monah_thedal

모나 인스타 : https://www.instagram.com/monah_thedal/

모나 브런치 : https://brunch.co.kr/@monah-thedal#works

모나 블로그 : https://blog.naver.com/monah_thedal

이전 12화행복을 꿈으로 형상화하는 아주 세세한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