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바로 그 질문

갈라진 얼음, 소설 <오로라 이엘로>


“1분이요!”


누군가 그렇게 외치자 피페는 긴장한 표정으로 심호흡했다. 아무 말이나 하면 돼. 아무 말이나 하면 돼.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피페입니다!”


드디어 시작된 피페의 무대. 진행자의 음성과 함께 경쾌한 음악이 들려왔다. 피페를 가로막고 있던 장막이 서서히 걷히며 화려한 조명이 그녀를 비추었다. 진행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벌려 피페를 환영했다. 천장에 달린 작은 카메라들과 무대 아래에 줄지어 서 있는 커다란 렌즈들이 일제히 그녀를 향했다.


피페는 환하게 웃었다. 은퇴한 그녀의 육신은 한없이 작아지고, 쪼그라들어 있었다. 치아의 대부분은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었고, 목소리도 작아 자주 기계 성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요한 건 피페였다. 한평생 행복의 물질을 만들었던 사람이 행복에 대해 논한다는 사실. 그 유명한 오로라 제작자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경험. 관객에게는 그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피페입니다, 여러분!”


진행자는 다시 한번 피페를 호명했다. 피페의 느린 걸음 때문에 만들어진 소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무대 한가운데의 소파를 향해 걷고 있었다. 결국 두 대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그녀에게로 다가와 양쪽에 섰다. 양팔 아래로 팔짱을 끼고서 그녀를 번쩍 들어 소파 앞에 내려놓았다. 마침내 피페가 무대 중앙에 서자, 진행자는 그녀를 세게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들렸다. 피페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방향을 보았다. 폭포수 같은 사람들의 무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삼 층 높이의 관객석. 사람들은 그 드넓은 공간을 빈틈없이 꽉꽉 채우고 있었다. 오로지 피페를 보기 위해, 그녀의 음성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피페는 잠시 멈추어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사람의 물결을 마주할 때면 그녀는 언제나 한없이 벅차올랐다. 피페가 수줍게 미소 짓자 사람들은 그녀를 따라 웃었다. 환한 조명에 가려 그들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피페는 그들이 웃고 있다는 걸 알았다.


토크쇼는 매번 똑같은 모습으로 진행되었다. 진행자는 질문을 했고, 피페는 그때그때 생각나는 아무 말들을 피상적이고 추상적으로 대충 얽어서 늘어놓았다.


“행복은 삶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에요. 행복한 사람만이 진정한 삶의 가치를 알고 있을 테니까요.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을 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죠. 작은 것에 행복할 줄 알아야 큰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떠한 말을 하든 사람들은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였고, 깊이 고개를 끄덕였고, 가끔 감탄사를 내뱉었다. 피페는 정말 아무 말이나 하고 있었지만, 그걸 눈치챈 관객은 하나도 없었다. 은퇴한 오로라 제작자 피페. 그녀는 이미 그 독보적인 특별함으로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고 있었고, 그 빛은 다른 모든 그림자를 손쉽게 가려 주었다.


“값진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로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저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고요.”


진행자의 말을 끝으로 두 시간 남짓한 대담이 끝났다. 피페와 진행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악수를 주고받았다.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피페는 눈 부신 빛 속에서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강렬한 빛에 눈이 아려 올수록 자신의 가치를 증명받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카메라 세례를 받던 중, 관중석에서 누군가 손을 들었다. 피페는 사람들 사이로 떠오르는 그의 손을 무시한 채 고개를 돌렸다.


“잠깐만요! 질문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할 줄을 몰랐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탁자를 정리하던 진행자가 고개를 들었다.


“질문이 있습니다. 피페! 질문이 있습니다!”


남자는 피페가 자신을 봐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기세로 그녀를 불렀다. 진행자는 피페와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자신이 나서야 할지 그러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 중인 얼굴이었다. 다른 스텝들도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피페!”


그가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조금 전과는 다른 신경질적인 톤이었다. 진행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에 손짓했다. 곁에 있던 로봇들이 여차하면 달려 나갈 것처럼 자세를 바꾸었다.


그 모습을 본 피페가 손을 들어 주변을 안정시켰다.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무대 가운데에 놓인 스탠드 마이크를 향해 걸었다. 공기 중에는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과 로봇들의 시선이 피페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녀는 최대한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무슨 일이죠?”


피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가 소리쳤다.


“질문이 있습니다!”

“어떤 질문인가요?”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음 말을 내뱉었다.


“고작 그것뿐입니까?”


잠깐의 정적.

피페는 침착하게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그건 질문의 전부였다.


“고작 그것뿐이냐니 무슨 말씀이시죠?”

“질문 그대로입니다. 고작 그것뿐인가요?”

“고작 그것뿐이라니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오늘을 이루었던 모든 것들이요. 모든 일과 모든 시간과 모든 사건들이요.”


남자는 강한 어조로 덧붙였다.


“고작 그것뿐입니까, 피페? 당신은 정말 그것뿐입니까?”


‘고작’, 그 간결한 단어는 섬뜩한 칼날이 되어 그녀를 세로로 베었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순식간에 발가벗겨진 기분. 수치스러울 정도로 낱낱이 해부되어 관중들 앞에 펼쳐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같은 질문이 반복되자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곱씹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피페를 향해 찬사를 보내던 그들은 이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수군대고 있었다. 삽시간에 번지는 그들의 의구심을, 피페는 차마 감당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스탠드 마이크에 몸을 의지하려 했지만, 단단했던 철제 기둥은 어느새 가루가 되어 손가락 사이로 바스러져 버렸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휘청였다. 온 세상이 휘어지며, 그녀를 향해 무너져 내렸다. 눈앞에 관중들이 보였다. 그들은 일제히 그녀를 향해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아악! 피페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다시금 남자의 음성이 메아리쳤다. 고작 그것뿐입니까? 고작 그것뿐이에요? 매서운 목소리가 귀를 후벼팠다. 피페는 두 귀를 감싸 쥐었다. 무릎을 가슴팍에 가져다 댄 채 몸을 웅크렸다. 몸이 중심을 잃고 고꾸라졌다. 단단한 무대 바닥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충격은 거칠게 피페를 뒤흔들었다. 그녀의 주변에서 거대한 회오리가 시작되었다. 거센 바람이 일자 천장에 매달린 조명들이 위태롭게 나부꼈다. 삐거덕거리던 핀 조명 하나가 큰 소리를 내며 피페를 향해 곤두박질쳤다. 허공을 가로지르던 고철 덩어리는 곧 그녀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눈앞이 일순간에 컴컴해지며, 피페는 정신을 잃었다.




* 소설 <오로라 이엘로> 중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소설 < 오로라 이엘로 >


“행복의 제물, 우리는 모두 행복의 제물이에요”


가까운 미래, 행복마저 상품이 되어 버린 시대. 행복과 특별함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가장 평범한 노동자 피페의 이야기.


꿈으로 행복을 만드는 오로라 제작소. 피페는 지난 10년간 그곳의 성실한 제작자였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교체되고, ‘그’마저 사라졌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녀를 지탱하는 힘은 하나였다. 특별하고도 평범한 성공의 꿈. 평생 그 꿈이 온당하다 믿었다. 어느 날, 삶에 한 질문이 날아들어 모든 걸 뒤흔들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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