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된 꿈, 갈라진 얼음, 마지막 기억

갈라진 얼음, 소설 <오로라 이엘로>


심상치 않긴 했다. 상상 큐브 안에 들어가는 피페의 표정은 처음부터 경직되어 있었다. 디버깅 요원은 잠시 그녀를 말려야 하나 망설였지만, 굳이 그러진 않았다. 그건 피페에게도, 자신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그는 피페가 원 없이 자신의 변론을 펼치도록 내버려 두었다. 어차피 오늘 면담의 결과는 정해져 있었지만, 그는 피페가 적어도 후회 없이 그 결과를 받아들이길 바랐다.


피페가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면, 디버깅 요원은 오로라 제작자를 평가하는 사람이 아닌, 편지 배달부라는 사실이었다. 오늘 아침 그는 관리자 부아에게 파일을 하나 전송받았다. 보고서에는 피페가 정신적으로 대단히 심각한 상태라고 적혀 있었고, 그는 면담의 끝에서 그 말을 피페에게 그대로 읊어 줄 예정이었다. 어쩌면 ‘비고’란에 적힌 대로 이대로 계속 고집을 부리다가는 정말 큰일이 날 거라며 마음에도 없는 화를 낼 수도 있었다. 그건 그가 하루에도 몇 번씩 겪는 일상적인 면담이었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을 의미 없는 대화로 채우고, 정신을 감정하는 척하다가 정해진 결과를 읊어 주는 것. 그건 어떠한 오로라 제작자도 알지 못하는 디버깅 요원의 진짜 모습이었다.


그렇게 피페의 작업실에 도착한 그가 또 한 번 마음에도 없는 연기를 행하던 찰나, 피페는 갑자기 솔깃한 제안을 해 왔다. 면담을 하는 대신 오로라 얼음을 만들어 보이겠다는 제안. 그는 잠시 망설였지만, 금세 제안을 수락했다. 마치 기다려왔다는 듯이.


피페가 상상큐브에 들어가자 디버깅 요원은 스캐너의 위치를 피페에게 맞추어 조정했다. 휴대용 카메라처럼 생긴 그것은 최근 디버깅 요원들에게 배급된 정신 감정 스캐너였다. 오로라 제작자의 표정과 행동, 뇌파와 신경의 움직임을 감지하여 그들의 정신 상태를 분석하도록 만들어진 기기. 그건 관리자의 보고서를 교차 검증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얼마 전 오로라 제작소는 악의적인 마음을 가진 몇몇 관리자들이 아직 일할 수 있는 오로라 제작자들을 멋대로 퇴출시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아직 오로라 얼음을 만들 수 있는 제작자는 오로라 제작소의 귀중한 자산이었고, 그들은 가치가 남아있는 자산을 멋대로 내버린 관리자들에게 분노했다. 그 일이 있고난 후, 오로라 제작소는 비밀리에 스캐너를 디버깅 요원들에게 전달했다. 관리자가 아직 가치 있는 제작소의 자산을 함부로 버리려고 한 건 아닌지를 검토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피페를 담당한 디버깅 요원은 얼마 전 한 면담 자리에서 스캐너에 숨겨진 기능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날의 면담자는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한 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면담하는 내내 말이 안 되는 독백을 늘어놓으며 꿈을 거닐었다. 그렇게 얼마를 떠들었을까. 그는 문득 꿈에서 깨어나 자신이 현실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고,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오로라 제작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꿈이 아닌 곳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디버깅 요원은 곧장 중앙관리실에 긴급 연락을 취했고, 비상사태를 처리할 보조원들이 오는 동안 짐을 정리하기 위해 스캐너와 전자패드를 집어 들었다.


스캐너가 기록하는 꿈을 보게 된 건 바로 그때였다. 스캐너 프로그램을 막 종료하려 할 때, 그는 여전히 전자패드에 무언가가 적히고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론상으로 스캐너는 꿈을 읽을 수 없었다. 근육과 신경의 움직임, 뇌파 상태를 바탕으로 감정을 파악하는 기기가 미동도 없이 꿈에 빠져든 이들의 생각까지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그가 보았던 스캐너는 단순한 감정 이상의 것들을 읽어냈다. 스캐너는 꿈에 잠긴 오로라 제작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들을 그대로 받아적었다. 오로라 제작기 안에서 펼쳐지고 있는 오로라의 꿈. 제트기 파일럿의 하루. 누군가의 꿈을 그토록 세세한 언어로 읽어 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디버깅 요원은 그날부터 면담 중에 오로라 제작자가 제작기로 들어가길 은근히 바라 왔다. 누군가의 꿈을 읽을 수 있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그날 보았던 기나긴 글이 진정 누군가의 꿈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스캐너가 정말 꿈을 읽을 수 있다면, 어쩌면 오로라가 만들어내는 꿈의 패턴을 분석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오로라의 꿈이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밝혀내, 그게 얼마나 인간에게 해로운지를 마침내 명백하게 증명해 보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스캐너가 오로라의 꿈을 정확히 읽을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그러려면 오로라 얼음 제작기 안에서 꿈을 꾸는 중인 오로라 제작자가 필요했고, 디버깅 요원의 신분으로 그런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아무 작업실 문이나 벌컥 열고 들어가서 스캐너를 들이밀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는 면담 중에 꿈을 꾸길 원하는 오로라 제작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피페가 나타난 것이었다. 디버깅 요원은 피페의 제안을 듣자마자 바로 수락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신분을 고려해 잠시 고민하는 척을 했다. 잠시 뜸을 들이며 피페가 충분히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본 후에야 그렇게 하자고 답했다. 하지만 그의 심장은 말과 달리 빠르게 뛰고 있었다. 또 한 번 누군가의 꿈을 볼 수 있는 기회. 정말 오래도록 기다려 온 순간이었다.


디버깅 요원은 스캐너의 위치를 조정하고서 의자에 앉아 꿈을 유영하는 피페를 지켜보았다. 유리 구체 안에서는 이미 Ha 원자들의 합성이 시작되고 있었다. 피페의 꿈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지만, 그녀의 SEND 파동은 여태 보았던 어떠한 제작자들보다 강력했다. 그녀의 오로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십 년 동안 오로라 제작자를 했다더니, 괜한 말이 아니군. 이토록 선명한 오로라를 보는 건 처음이야. 디버깅 요원은 그렇게 중얼대며 유리 구체에서 피어나는 Ha 원자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Ha 원자들은 곳곳에서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작은 보라색 점들은 곧 피페의 SEND 파동 속도에 맞추어 박동하며 몸집을 불려 나갔다. 붉은색과 노란색, 녹색의 빛을 번갈아 내보이던 그들은 점차 오색찬란한 빛을 틔우며 중앙으로 몰려들었다. 유리 구체를 가득 채운 화려한 성운. Ha 원자의 군집. 오로라의 구름. 디버깅 요원은 입을 벌린 채로, 거대한 빛의 구름이 자줏빛에서 보라색으로 물들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곧이어 새하얀 빛을 띤 얇은 막이 구름을 감쌌다. 냉각기에서 분사된 냉매의 영향으로 오로라 얼음의 틀을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희미하게 탁한 얼음의 표면은 오로라에 신비함을 더했다.


확실히 환상적으로 아름답긴 하네.


디버깅 요원은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했다. 생에 처음 마주한 날것의 오로라. 그 빛을 보며 그는 왜 온 세상이 저 거대한 무생물 덩어리를 손에 넣기 위해 눈이 뒤집히는지를 알 것만 같았다. 오로라 얼음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굳게 믿는 그조차도 오로라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이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오로라의 빛에는 확실히 사람을 현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눈이 부시도록 강렬한 오로라에 스캐너를 확인하는 일은 어느새 뒷전이 되어 있었다. 그는 전자패드에 무언가가 적히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한 후, 곧장 화면을 꺼 버렸다. 전자패드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빛이 오로라를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클라우드에 업데이트되고 있을 테니 나중에 읽지 뭐.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오로라 구름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얼마쯤 오로라에 취해 있었을까, 유리 구체안의 오로라가 갑자기 미친 듯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보라색의 빛 구름 사이에서 작은 불씨들이 피어올랐다. 산발적으로 빛을 틔우던 불씨 중 하나가 작게 펑 하는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작은 불씨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며 보라색 안개구름을 은빛으로 물들였다. 곧 화려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삽시간에 번지는 불꽃을 보며 디버깅 요원은 문득 정신이 들었다.


좋지 않은 징조야. 정말 좋지 않은 징조야.


오로라 제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조차도 눈치챌 수 있었다. 이건 분명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방으로 흩어져 나가던 불똥들은 이제 유리 구체의 표면으로 달려들었다. 거대한 유리 구체는 가장자리부터 금기 가기 시작했다. 천장에 매달린 철제 고깔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리 구체와 고깔과 접합된 부분의 나사가 뒤틀리며 내는 소리였다.


디버깅 요원은 다급하게 상상 큐브를 확인했다. 상상 큐브 안의 피페는 심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두 귀를 감싸 쥐고 몸을 한껏 웅크린 채 괴로운 듯 몸을 비틀었다. 휘청이던 고개가 갑자기 뒤로 젖혀졌다. 그녀는 곧 힘없이 쿠션에서 굴러떨어졌다.


“피페! 피페, 괜찮아요?”


문을 향해 달렸다. 유리문을 미친 듯이 강타하며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피페는 이마를 바닥에 댄 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애초에 상상 큐브로 밀어 넣어선 안 되는 거였어. 바보같이.


피페 머리 위에 얹어진 SEND 파동 수집기에서 붉은빛이 번쩍였다. 그때마다 피페의 몸이 전기충격을 받은 것처럼 미약하게 펄떡였다. 파동 수집기가 피페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그녀의 몸에 가벼운 전류를 흘려보낸 것이었다.


디버깅 요원은 마스터키를 꺼내 들고서 잠금장치를 연타했다. 상상 큐브의 문이 열리며 동시에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삐삐삐삐삐삐. 신경을 긁어대는 소리. 엎어져 있던 피페의 몸을 뒤집었다. 그녀는 아무런 저항 없이 바닥 위를 굴렀다. 그녀의 머리에 있는 SEND 파동 수집기를 잡아당겼다. 머리에 꽉 맞게 끼워진 수집기는 좀처럼 벗겨지질 않았다. 좀 빠져라. 제발. 중얼대며 더 세게 잡아당겼다. 방해되는 두꺼운 장갑을 벗어 던졌다. 디버깅 요원 업무 수행 중에 수트를 벗는 건 규정 위반이지만, 지금은 그런 걸 걱정할 틈이 없었다. 온 힘을 다해 수집기를 강제로 분리했다. 부서진 수집기의 파편 중 일부가 피페의 머리칼 사이사이로 흘러 들어갔다.


“피페. 피페. 정신 좀 차려 봐요. 내 말 들려요, 피페? 피페!”


뺨을 때리고 어깨를 흔들었다. 피페는 미약하게 숨을 쉬고 있는 듯했지만, 그마저도 확실치 않았다. 중앙관리실에 비상 알림을 보낸 후, 응급 처치를 위해 그녀를 눕히고 흉부를 강하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두 번 정도 그녀의 가슴 한복판을 내리눌렀을 때, 머리 위에서 오로라 제작기가 거칠게 들썩이기 시작했다.


금속 나팔관이 당장이라도 고꾸라질 것처럼 이편을 향해 기울어지고 있었다. 상상 큐브의 사방에서 새빨간 빛이 흘러나왔다. 휘청이던 나팔관은 결국 거대한 굉음을 내며 상상큐브와 충돌했고, 유리로 만들어진 상자는 모서리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촘촘하게 펼쳐지는 거미줄 같은 실금들이 투명한 유리벽을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안 돼. 안 돼. 안 돼.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비상 버튼을 다급하게 연타하며 피페의 몸을 들쳐 멨다. 연단에서 내려와 상상큐브의 입구를 지나칠 때쯤, 유리 구체 안에 있던 오로라 구름이 검붉은 화염에 휩싸였다. 솟구치는 뜨거운 기운을 견디다 못한 오로라 제작기가 몸을 부르르 떨며 포효했다. 작업실이 네 벽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세차게 흔들렸다.


작업실의 문을 향해 내달렸다. 머릿속에는 온통 이곳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살아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목을 조여 오던 피페의 두 팔, 팔뚝을 타고 흐르던 진득한 액체. 힘없이 질질 끌리던 그녀의 두 다리, 등 뒤에서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씩씩대던 오로라 제작기. 그건 피페의 작업실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었다.



* 소설 <오로라 이엘로> 중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소설 < 오로라 이엘로 >


“행복의 제물, 우리는 모두 행복의 제물이에요”


가까운 미래, 행복마저 상품이 되어 버린 시대. 행복과 특별함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가장 평범한 노동자 피페의 이야기.


꿈으로 행복을 만드는 오로라 제작소. 피페는 지난 10년간 그곳의 성실한 제작자였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교체되고, ‘그’마저 사라졌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녀를 지탱하는 힘은 하나였다. 특별하고도 평범한 성공의 꿈. 평생 그 꿈이 온당하다 믿었다. 어느 날, 삶에 한 질문이 날아들어 모든 걸 뒤흔들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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