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디버깅 요원, 소설 <오로라 이엘로>


“피페. 무슨 생각합니까?”


디버깅 요원은 벌써 세 번째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녀의 답을 기다리던 디버깅 요원은 결국 발끝으로 피페의 정강이를 툭 쳤다. 그녀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 디버깅 요원을 돌아보았다.


“죄송해요. 방금 질문이 뭐였죠?”


디버깅 요원이 한숨을 쉬며 신경질적으로 전자패드를 무릎에 내려놓았다.


“피페, 이러면 최종 심사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요.”


그는 헬멧의 하단부를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대화를 하는 중에 자꾸만 다른 생각을 하는 건 꿈 몸살의 결정적인 증상입니다. 하지만 피페는 미친 게 아니라면서요. 그럼 미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보이세요. 내 얼굴 또 보고 싶어요?”


피페는 흠칫 놀라 그를 보았다. 그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묘하게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앳되고도 여린 목소리. 남자보다는 여자에 가까운 음성이었다. 인공지능 오류인가?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피페!”


피페가 대답 대신 디버깅 요원의 헬멧만 빤히 쳐다보고 있자, 그가 답답하다는 듯이 또 한 번 그녀를 불렀다.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뭔가를 잘못 들은 것 같아서요.”


피페는 아차 싶었다. 무언가를 잘못 들은 것 같다는 말. 그건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환청은 오로라 제작자가 흔히 보이는 정신 이상의 초기 증세였다. 할 수 있다면 입을 한 대 세게 치고 싶었다. 그녀는 오늘 너무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분위기 반전이 필요했다. 그는 이미 한참 전부터 피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디버깅 요원의 의심을 없애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했다.


“그러지 말고 이러는 건 어때요?”


피페는 애써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직접 보여줄게요. 오로라 얼음 제작 과정을 시연해 보일 테니, 직접 보고 판단하세요. 요원님께서 납득할 만한 얼음을 만들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어쨌든 가장 중요한 건 얼음의 품질이잖아요.”


피페는 디버깅 요원의 무릎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를 안심시키기 위한 무언의 신호였지만, 그는 그녀의 손길이 불쾌하다는 듯 다리를 뒤로 뺐다.


“지금 오로라 얼음을 제작하겠다고요? 피페, 오늘 저는 꿈이 아닌 현실에서의 피페 정신 상태를 확인하러 온 겁니다.”

“그러니까요. 현실의 제가 오로라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걸 확인하러 온 거잖아요.”

“그 반대죠. 오로라의 꿈이 피페의 현실에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확인하러 온 겁니다.”

“정말 그런가요?”


피페의 질문에 디버깅 요원은 잠시 멈칫했다.


“정말 그렇냐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 솔직해지죠. 이건 상담이 아닌 검증이잖아요. 저 작은 감시 기계도, 지금 우리의 이 형편없는 상담도. 전부 제가 오로라 제작자로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것뿐이잖아요. 그러니 빙빙 돌리는 말로 가능하기보다는 짧고 확실한 방법으로 보여주겠다는 거예요. 요원님이 말한 것처럼, 상담이 길어지면 어차피 서로 힘만 들 테니까요.”


디버깅 요원은 말없이 피페를 노려보았다. 두꺼운 헬멧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피페는 그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디버깅 요원은 모든 감사원이 그러한 것처럼 주도권을 빼앗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왜인지 피페의 말에 딱히 반박하지도 않았다. 그저 생각이 많아진 손짓으로 헬멧의 하단부를 톡톡 두드릴 뿐이었다. 피페는 그런 그를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영겁 같은 몇 초가 흐른 뒤,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게 피페의 결정이라면 그렇게 하죠.”


그는 짧게 답했다.


“오로라 얼음을 잘 만들 수 있다는 게 확인되면, 더 볼 것도 없죠. 보통은 이런 제안, 잘 수락하지 않습니다만. 지금 피페가 중증 꿈 몸살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고, 오늘은 단지 상태를 확인하러 온 것뿐이니까요. 일단은 믿어 보겠습니다.”


디버깅 요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터 주었다. 피페는 성큼성큼 오로라 제작기를 향해 걸었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오로라 기계는 한층 더 웅장하고 위협적이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늘 해 왔던 일이잖아. 할 수 있어.


피페는 암시하듯 되뇌며 심호흡했다. 지난 십 년 동안 매일같이 해 온 일이었다. 집중하기만 한다면 별 탈 없이 끝날 것이었다. 어차피 몇 주나 몇 달 주기로 한 번씩 찾아오는 꿈 몸살이었다. 일주일 전에 한 번 겪었으니 오늘은 분명 꿈 몸살에 시달리지 않을 터였다. 피페는 그저 집중하기만 하면 되었다. 늘 하던 대로 하기만 하면 되었다.


제발 만나지 않길.


오로라 제작기 앞에 서며, 작게 주문을 외었다. 오직 그녀만이 들을 수 있는 나지막한 속삭임이었다.




* 소설 <오로라 이엘로> 중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소설 < 오로라 이엘로 >


“행복의 제물, 우리는 모두 행복의 제물이에요”


가까운 미래, 행복마저 상품이 되어 버린 시대. 행복과 특별함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가장 평범한 노동자 피페의 이야기.


꿈으로 행복을 만드는 오로라 제작소. 피페는 지난 10년간 그곳의 성실한 제작자였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교체되고, ‘그’마저 사라졌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녀를 지탱하는 힘은 하나였다. 특별하고도 평범한 성공의 꿈. 평생 그 꿈이 온당하다 믿었다. 어느 날, 삶에 한 질문이 날아들어 모든 걸 뒤흔들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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