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우리는 서로의 모든 걸 보았다

디버깅 요원, 소설 <오로라 이엘로>


“이야, 로맨틱하다. 진짜 그게 전부야?”

“로맨틱하다니. 고작 그렇게밖에 표현이 안 돼? 사탕은 내 전부야. 내 인생이라고. 이 낭만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내 친절을 받을 자격이 있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턱 밑으로 길게 늘어진 하얀 수염도 함께 흔들렸다.


”그리고 보통 신입 제작자들은 내 겉모습만 보고 슬금슬금 피한단 말이야. 말을 걸어도 다들 도망가기 바쁘고. 하지만 넌 아니었지. 넌 내 부름에 걸음을 멈췄어. 사탕도 받아주었고. 난 그걸로 모든 걸 보았다고 생각해.”


그러고는 수줍게 덧붙였다. 그의 눈가에는 어느새 반달 모양의 무지개가 피어나 있었다. 피페는 잔뜩 어색해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픽 웃었다.


“그랬구나. 그 순간에 모든 걸 보았구나.”


피페의 장난스러운 말에 그가 새초롬한 눈으로 그녀를 흘겨보았다.


“넌 몰라. 신입을 만날 때 우리의 마음이 어떤지. 오로라의 환상에 젖어 좋은 것만 보려 하는 맹목적인 시선이 얼마나 아픈지. 신입 오로라 제작자들은 매번 똑같아. 다들 평생 늙지 않을 것처럼 굴지. 그래서 언제나 기이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봐. 마치 못 볼 꼴이라도 본 것처럼. 예의를 차린 말과 시선 속에서도 그런 마음이 뚝뚝 묻어 나와. 난 그런 시선들이 언제나 몸서리치게 괴로웠어. 널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피페는 그의 솔직한 고백에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어렴풋이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는 삼십 대 초반이었지만, 영락없는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신입 때 아무것도 몰랐던 그는 오로라 얼음을 닥치는 대로 사용했다고 했다. 과하게 오로라 얼음을 취하는 그를 보고, 선배들이 넌지시 위험성을 경고했음에도 업무 능률을 올려 주니 일단 먹고 보자는 심리였다고 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오로라 얼음을 복용하던 그는 최근에야 위험성을 직시하고 복용량을 줄여 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오로라 얼음을 끊는다고 해서 진행되고 있던 노화를 멈출 수는 없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드문드문 보이던 검은 머리칼은 이제 한 가닥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머리카락보다 수염의 가닥수가 더 많은 사람이었다. 가슴께까지 늘어진 허연 수염을 머리보다 더 정성스럽게 빗었으며, 눈이 좋지 않아 돋보기를 늘 필수적으로 지니고 다녔다, 눈가 주름은 손금보다 깊었으며, 이가 좋지 않아 점심 메뉴로 고기가 나오면 젓가락으로 잘 집히지도 않을 정도로 작게 잘라 먹어야 했다. 언뜻 봐도 노인이었고, 자세히 봐도 할아버지였지만, 그의 신체 중 유일하게 나이 들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그의 눈. 언제나 한결같이 반짝이는 옅은 갈색의 눈동자. 그래서 피페는 차마 그를 노인이라 부를 수 없었다. 이십 대 중반인 그녀가 삼십 대 초반인 그에게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실례였겠지만, 그의 눈을 보고 있으면 피페는 어느새 그가 노인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외모만 보고 함부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거지. 막말로 진짜 할아버지라고 쳐 봐. 노인은 사탕도 못 줘? 주고 싶으면 주는 거지.”

“요점은 알겠는데, 막말로라도 할아버지라고 치지는 말아 주라. 맘이 아프다.”

“예, 알겠습니다, 선배님.”

“오냐.”


그와 그녀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방안을 가득 채웠던 웃음이 잦아들자, 피페는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식용 염료들을 한쪽으로 치우며 책상에 걸터앉았다. 그녀는 작업실을 오가며 퇴근을 준비하던 그를 물끄러미 관찰하다 입을 열었다.


“근데 왜 오로라 제작자로 계속 일하는 거야? 오로라 제작소가 그렇게 싫으면 지금이라도 그만둬도 되지 않아?”

“그게 무슨 말이야?”

“좀처럼 오로라 제작소를 좋아하지 않잖아. 노인이 된 외모도 싫고, 오로라 제작소의 모든 것들을 혐오하는데, 왜 아직도 오로라 제작자로 있는 거야?”


순간적으로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감시 카메라를 한 번 흘긋 보고는 이내 씁쓸하게 웃었다.


“일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야. 더군다나 오로라 제작자는. 넌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책임져야 할 이들이 많아. 많은 오로라 제작자들이 그렇듯이. 왜 그런 말도 있잖아. ‘가족 중에 오로라 제작자가 있다면 온 가족이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참 멋진 말이야. 멋진 만큼 지랄맞기도 하고.”

“그냥 지랄맞지, 그게 뭐 멋져.”


피페는 사탕 포장지를 구기며 투덜댔다. 피페에게도 가족이 있었지만, 그는 유독 딸린 식솔들이 많았다. 부모와 세 명의 형제자매, 그들의 배우자 둘과 세 명의 조카까지. 그는 여태 혼자였지만, 그의 가족은 그걸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내 외모를 봐. 이런 쭈그렁탱이 할아범에게 누가 시집오고 싶겠어. 남은 인생은 그냥 가족을 위해 살 거야. 난 조카들만 봐도 좋아. 나랑 똑 닮았으니까.”


아련한 그의 말을 들을 때마다 피페는 복도 끝 작업실을 쓰는 작업자를 떠올렸다. 나이로 따지면 언니였겠지만, 그녀 또한 오로라 얼음 부작용으로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파가 되어 있었다. 언젠가 좋은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던 그녀. 피페는 그녀가 그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소개팅을 주선할 계획까지 전부 세워 두었지만, 결국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그 전에 일이 터져 버렸으니까. 그 일이 벌어진 후 피페의 삶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렸고, 피페는 자신이 누군가의 소개팅을 주선하려 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피페의 삶에는 오로라 얼음이 들어섰다. 피페는 끝까지 오로라 얼음이 필요하지 않다며 고집을 부렸지만, 부아는 완강했다. 피페의 상태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표면적인 명분이었고, 그녀의 오로라 얼음 품질이 눈에 띄게 형편없어졌다는 것이 본질적인 이유였다.


“좋게 생각해요. 그래도 많이 미룬 거예요. 4년 차에 오로라 얼음을 처방받는 제작자는 많지 않으니까. 피페가 그래도 실력이 있으니까 지금 처방하는 거지. 다른 제작자들 같았으면 벌써 처방받고도 남았어요.”


부아는 전자패드에 글씨들을 휘갈기며 그렇게 말했다. 피페는 그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오로라 제작자는 아무것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다.


오로라 얼음 처방 이후 피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오로라의 꿈은 그녀의 무의식을 파고들어 한 번도 알지 못했던 행복의 자극을 끄집어냈다. 오로라는 피페가 바라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그녀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오로라의 꿈에서 피페는 언제나 성공하고 승리하기를 반복했다. 그녀는 오로라 얼음을 통해 여태 알지 못했던 자신의 여러 욕망을 유영했다. 제작하는 오로라 얼음의 품질도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


피페는 결국 오로라 얼음의 덫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그녀는 천천히, 반병신이 되어 갔다. 그가 그토록 경계하던 오로라 제작자의 모습. 피페는 그런 모습으로 점차 변해 가고 있었다.




* 소설 <오로라 이엘로> 중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소설 < 오로라 이엘로 >


“행복의 제물, 우리는 모두 행복의 제물이에요”


가까운 미래, 행복마저 상품이 되어 버린 시대. 행복과 특별함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가장 평범한 노동자 피페의 이야기.


꿈으로 행복을 만드는 오로라 제작소. 피페는 지난 10년간 그곳의 성실한 제작자였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교체되고, ‘그’마저 사라졌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녀를 지탱하는 힘은 하나였다. 특별하고도 평범한 성공의 꿈. 평생 그 꿈이 온당하다 믿었다. 어느 날, 삶에 한 질문이 날아들어 모든 걸 뒤흔들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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