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알게 된 현실, 그리고 옆 방 제작자

디버깅 요원, 소설 <오로라 이엘로>


“피페, 정신 차려!”


피페는 그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거친 진동음이 작업실 전체를 울렸다. 그의 사탕 기계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는 기계의 스위치를 몇 번 더 건드린 후에야 피페에게 작은 스티커를 내밀었다. 귀밑에 붙이는 초소형 무전기. 반경 1미터 이내에서만 소통할 수 있다는 작은 무전기는 오로라 제작소의 레이더망에 감지되지 않는 유일한 통신 장치였다. 그는 그 작은 무전기가 전파 신호를 교란해 작업실 감시 카메라의 녹화와 녹취까지 막아 준다고 했지만, 피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무전기가 켜진 상태에서도 작업실 내 감시 카메라는 한결같이 깜박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페는 그의 허풍을 굳이 짚어내진 않았다. 피페는 점심시간마다 옆 방 작업실로 놀러 가 그와 무전기로 대화를 나누는 걸 좋아했고, 굳이 정확한 사실들로 그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방금 뭐라고 했어?”


피페는 눈을 꿈뻑이며 그를 쳐다보았다.


“또, 또. 잘 들어, 오로라 제작자들 사이에는 유명한 말이 하나 있어.”

“아, 나 그 말 뭔지 알 거 같아.”

“뭔데, 얘기해 봐.”


그가 하얗게 센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멀쩡한 오로라 제작자는 들어온 지 일 년이 안 된 오로라 제작자뿐이다.”


피페는 짐짓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문장을 읊었다.


“그래. 근데 왜 그 말이 유명한 줄 알아?”

“왜겠어. 당연한 거 아니야? 신입 시절 지나면 다들 흐리멍텅하게 변하잖아. 조금만 지나면 다들 늙거나 병들기 시작하고.”

“그래, 근데 왜 그렇게 늙고 병들기 시작하냐고.”

“그야..”


피페는 말문이 막힌 채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주머니에서 동그란 알갱이를 꺼내 들었다. 하얀색의 얇은 막 안에서 일렁이는 보라색과 청록색의 빛. 그건 사탕 크기로 작게 만든 오로라 얼음이었다.


“오로라 얼음?”


피페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던 이야기였다.


“그래, 오로라 얼음 때문이야.”

“에이, 말도 안 돼. 그럼 세상 사람들이 다 오로라 얼음 부작용에 시달려야지. 오로라 얼음에 중독성과 부작용이 없다는 건 이미 오래전에 입증된 이야기잖아.”

“오로라 얼음 부작용은 소화기나 혈관을 통해 다량을 흡수했을 때만 나타나. 밖에서는 보통 호흡기 점막으로 아주 조금씩만 들이마시잖아.”

“그래도.. 그렇게 위험하면 상상학교를 다닐 때 이미 알려주지 않을까?”

“야, 이 답답아.”


그는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쾅쾅 쳤다.


“상상학교에서 이런 얘길 왜 해 줘. 오로라 제작소 문 닫게 할 일 있어? 부모들한테 단체로 소송당할 일 있어? 이건 일하면서 알아가는 거야. 다들 암암리에 알고 있는 걸 넌 이제야 알게 된 거고. 그래도 늦은 건 아니야. 넌 아직 제작소에 입사한 지 세 달도 안 되었으니까. 보통 일한 지 일 년이 넘어간 후에야 알게 되거든.”


오로라 얼음을 든 그의 손이 피페 가까이로 다가왔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의 손 위에 놓인 오로라 얼음을 집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때 그가 그녀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아야. 피페가 소리쳤다.


“왜 때려!”

“오로라 얼음 위험하다고 방금 말했다, 방금. 그런데도 그런 짓을 하고 싶냐?”

“우리 오로라 얼음하고 매일 같이 산다. 매일 같이 살아. 나 방금도 하나 만들고 왔다. 좀 만지면 안 되냐?”

“안 된다.”

“하이고.”


피페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앙 다물었다. 한없이 둥글둥글한 그였지만, 오로라 얼음 앞에서만큼은 늘 날카롭게 변했다.


“자기도 오로라 제작자면서.”


피페는 입을 삐죽대다 바구니에 담긴 사탕을 하나 꺼내서 입에 던져 넣었다.


“맛있어?”

“어.”

“그래, 그럼 먹으면서 들어.”


사탕을 오물거리는 피페를 보며 그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오로라 제작자는 일 년이 지나자마자 반병신이 돼. 노화도 그때쯤 시작하지. 보통 마의 3년, 마의 5년이라고 하거든? 3년 차에 오로라 얼음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5년 차에 일을 그만둔다는 뜻이야.”

“부작용이 나타나고도 2년을 더 일할 수 있다니. 좋은 직업이네.”


피페의 말에 그는 그녀를 쏘아보았다.


“2년을 더 일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거지. 마지막 1년은 거의 다들 제정신이 아니니까. 오로라 얼음 부작용 때문에.”


그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오로라 얼음을 먹을 거면 알사탕을 먹어. 저런 쓰레기는 쳐다도 보지 말고, 만지지도 마.”


그는 손 위에 올려 두었던 오로라 얼음을 짓이겨 가루로 만들었다. 쓰레기통에 가루들을 탈탈 털어 넣고서는 단호하게 뚜껑을 닫아버렸다.


“또 그 소리.”


피페는 투덜거리며 사탕을 하나 더 집어 들었다.


오로라 얼음을 먹을 거면 알사탕을 먹어. 그건 그가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 그의 작업실을 찾을 때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이기도 했다. 그가 단순히 잔소리만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매일같이 사탕을 만들어 피페에게 나누어 주었다. 오로라 얼음이 조금도 궁금하지 않도록, 그녀를 위한 사탕을 공급해 주었다. 피페는 일을 하다 힘에 부칠 때마다 그가 전해 준 사탕을 하나씩 입에 물었고, 사탕의 달콤함에 취해 다시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사탕이야? 단 음식이라면 초콜릿이랑 젤리랑 콜라 같은 것들도 있잖아. 그런 걸 먹으면 안 되는 거야?”


피페는 입 안에서 사탕을 굴리며 물었다.


“다른 게 먹고 싶어? 다른 걸 해 줄까?”


그가 사탕 기계에 설탕을 한 봉지 털어 넣으며 되물었다. 봉지의 겉면에는 커다랗게 ‘유기농’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아니, 나도 사탕 괜찮긴 한데, 그냥 궁금해서 그러지.”

“사탕은 내 이름이랑 닮았잖아. 난 나랑 닮은 것들이 좋아.”

“단순히 좋아서 만드는 거야?”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걸 만드는 게 좋잖아. 더 재밌기도 하고.”


그는 빙긋 웃으며 피페의 앉은 자세를 고쳐 주었다.


“웬만하면 그쪽을 보면서 앉아 있지 마. 어제 작업실 감시 카메라 위치가 바뀌었거든. 무전기가 전파를 교란하고 있어서 녹화가 안 되는 중이긴 할 텐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카메라에 입 모양이라도 잘못 잡히면 곤란하잖아.”


피페는 감시 카메라가 있는 방향을 흘긋 보며 물었다.


“바로 옆 작업실인데 왜 여기만 감시 카메라 위치가 바뀌어?”

“글쎄, 오로라 제작소가 날 싫어하나 보지.”


그는 심드렁하게 답하며 과일 향료가 담긴 통을 집어 들었다. 기분 좋게 싱그러운 무화과 향이 공기를 타고 흘러왔다.


“요즘 작업은 잘 돼? 상상 근육은 여전히 잘 단련하고 있지?”

“잘하고 있어. 걱정 마.”


“그래. 오로라 얼음 없이도 오 년은 버텨야 돼. 최소 오 년이야. 그보다 길면 더 좋고. 늘 말하지만, 넌 절대 나같이 되면 안 돼. 알겠지? 피페, 넌 나보다 곱절은 특별해. 어쩌면 오로라 제작소를 통틀어 가장 특별할지도 모르지. 네게는 우리 모두가 갖지 못한 시간이 있으니까. 너는 아직 기회가 있어. 그걸 최대한 이용해. 이기적이어도 괜찮아. 눈앞에 있는 기회를 함부로 뿌리치지 마. 알겠지?”

“알았어. 오로라 얼음 절대 안 먹어. 맹세. 또 맹세.”

“좋다, 좋아.”


피페의 옆 방 제작자. 그와 공유했던 시간의 단편들. 피페는 그 속에서 많은 것들을 보았다. 그는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던 현실의 지식을 알려 주었다. 몇몇 말들은 진짜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했지만, 그마저도 대부분 삶에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피페는 신입 제작자가 흔히 맞닥뜨리는 장애물들을 손쉽게 피할 수 있었고, 남들보다 더 긴 세월을 오로라 제작자로 살 수 있었다.


“근데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야?”


피페는 언젠가 그에게 그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는 늦은 오후. 유독 일이 빨리 끝난 금요일이었다.


“내 알사탕을 받아 줬잖아. 그것도 오로라 제작소에 들어온 첫 주에.”


그는 오로라 제작기의 전원을 끄며 말했다.




* 소설 <오로라 이엘로> 중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소설 < 오로라 이엘로 >


“행복의 제물, 우리는 모두 행복의 제물이에요”


가까운 미래, 행복마저 상품이 되어 버린 시대. 행복과 특별함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가장 평범한 노동자 피페의 이야기.


꿈으로 행복을 만드는 오로라 제작소. 피페는 지난 10년간 그곳의 성실한 제작자였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교체되고, ‘그’마저 사라졌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녀를 지탱하는 힘은 하나였다. 특별하고도 평범한 성공의 꿈. 평생 그 꿈이 온당하다 믿었다. 어느 날, 삶에 한 질문이 날아들어 모든 걸 뒤흔들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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