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버깅 요원, 소설 <오로라 이엘로>
디버깅 요원이라니. 우리가 무슨 프로그램도 아니고.
불쾌한 이름. 피페를 포함한 오로라 제작자 대부분은 디버깅 요원을 기피했다. 그들은 오로라 제작자들을 위해 기용된 특수 심리 상담가들이었지만, 그건 단지 표면상의 이유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오로라 제작자들은 디버깅 요원을 ‘인사과’라고 불렀다. 꿈 몸살에 시달리는 오로라 제작자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는 이가 디버깅 요원이었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었다. 관리자들은 그걸 ‘디버깅 요원과의 특수 심리상담’이라 불렀지만, 그 어떤 상담에서도 오로라 제작자들의 마음에 관심을 보이는 디버깅 요원은 없었다. 그들이 궁금한 건 오로라 제작자의 심리나 정신 상태 따위가 아닌, 앞으로 일을 지속할 수 있는지였다. 그래서 그들은 상담 내내 날카로운 눈으로 오로라 제작자들을 관찰하며 성능을 판가름했고, 그들의 의견은 오로라 제작자 평가에 즉각 반영되었다.
오로라 제작소는 디버깅 요원의 분석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디버깅 요원은 언제나 옳았다. 틀려도 옳았다. 아무도 그들의 의견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옳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로라 제작자들은 디버깅 요원과의 만남을 최대한 꺼렸다. 목숨줄을 쥐고 있는 막강한 존재는,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녹슨 부품이 아니라고 설득하는 것뿐일 테니까.
지금 내가 그러려고 하는 것처럼. 피페는 한숨을 쉬며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은 9시 50분을 향하고 있었다.
10분 남았군.
디버깅 요원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목을 감고 있는 스카프 끝을 만지작거렸다. 노화가 시작된 후부터 중요한 날에는 빼놓지 않고 착용하는 패션 아이템이었다. 한낱 목주름 따위가 상대의 시선을 끌기를 바라지 않는 날, 그녀는 늘 가장 고급스러운 천을 목에 둘렀다.
벨이 울렸다. 화면이 켜지며 작업실 복도를 보여주었다. 검은 헬멧을 쓴 사람이 문밖에 서 있었다. 피페는 크게 숨을 몰아쉬고서 버튼을 눌렀다. 문이 스르르 열렸다. 문밖으로는 검은 사람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신소재로 만들어진 검은색 바디수트와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까만 헬멧을 쓴 디버깅 요원. 검은 헬멧의 가장자리에는 홀로그램 글자들이 쉴 새 없이 번쩍거렸다. ‘업무 수행 중. 방해 금지. 업무 수행 중. 방해 절대 금지.’ 머리를 맴도는 화려한 글자들은 디버깅 요원을 알리는 소리 없는 사이렌과도 같았다.
가녀린 체구의 디버깅 요원은 성큼성큼 작업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피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바닥으로 반대편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디버깅 요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를 향해 걸었다.
꽤 자그마하네..?
지금껏 보았던 디버깅 요원들은 모두 근육질에 덩치가 산만 했던지라, 피페는 자신보다도 선이 가는 요원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반갑습니다.”
검은 헬멧에서 굵은 남자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피페는 요원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피페의 손안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은 손이었다.
“반가워요. 편하게 앉으세요. 작업실까지 오시느라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피페는 디버깅 요원에게 최대한 밉보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높은 톤을 유지했다. 그가 의자에 앉자 피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디버깅 요원은 자리에 앉자마자 투명한 전자패드를 꺼내들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화면을 움직이더니, ‘비밀 유지 서약서’를 열어 피페에게 보였다.
“디버깅 요원은 침묵을 유지할 것을 맹세합니다. 상담에서 나는 대화는 오로라 제작자의 건강과 관련된 사안을 제외하고 결코 오용이나 남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를 어길 시 디버깅 요원은 합당한 징계를 받을 것이며, 오로라 제작자는 개인 정보 유출로 발생한 피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화면에 엄지를 댄 채로 디버깅 요원은 중얼중얼 문구를 읊었다. 습관적이고 딱딱한 말투였다.
“서약서에 서명해 주세요.”
디버깅 요원은 전자패드를 피페에게 내밀었다. 피페가 엄지를 화면 위에 가져다 대자 빛이 반짝이며 알림음이 울렸다.
“그럼 상태를 좀 보죠.”
디버깅 요원은 가방에서 작고 동그란 기기를 하나 꺼내서 피페 곁에 내려놓았다.
“뇌파 스캐너입니다. 피페의 신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함이니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전자패드로 눈을 돌렸다. 피페는 작은 빛을 내는 카메라를 흘금대며 초조하게 입술을 물어뜯었다. 오늘 만남을 위해 어젯밤에 단단히 마음의 준비도 했건만, 밤새 되풀이한 자기 암시들은 실제 면담 자리에서 하나도 쓸모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피페는 오늘 어떤 질문을 받게 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오로라 제작자들은 대부분 디버깅 요원과의 면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는 풍문으로 떠도는 소문들이나 와전에 와전이 되어 이미 한참 뒤틀려진 이상한 묘사들뿐이었다.
디버깅 요원과의 면담이 미지의 영역이 된 데에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그들과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디버깅 요원을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중증 꿈 몸살을 앓고 있었고,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꿈에 대한 헛소리만을 늘어놓았다. 당연히 디버깅 요원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있을 리도 만무했다. 그러니 오로라 제작자들은 정신이 멀쩡한 채로 디버깅 요원을 만난 극소수의 경험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그건 대부분 부풀려질 대로 부풀려진 뜬소문들 뿐이었다.
피페가 디버깅 요원에 대해 유일하고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는 디버깅 요원의 모든 모습이 거짓이라는 것 정도였다. 외형은 물론, 목소리마저도 완벽하게 가짜라는 사실. 그건 그가 해 주었던 여러 이야기 중 하나였다.
“디버깅 요원은 모두 신체 변형 슈트와 홀로그램 헬멧, 가짜 목소리를 이용해 완벽하게 신변을 가린대. 신체 변형 슈트로는 체형을 변형시키고, 검은색 홀로그램 헬멧으로는 얼굴을 가리고, 헬멧에 탑재된 인공지능으로 진짜 같은 가짜 목소리를 만들어 실제 목소리를 덮는다나 봐. 아주 철저하고 비겁하게 우리의 눈을 속이는 거지.”
오로라 제작소가 디버깅 요원의 신변을 완벽하게 감추려고 애를 쓰는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었지만, 오로라 제작자들은 지레짐작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의 특수한 작업복은 보복 방지용 갑옷이었다. 오로라 제작소에서 퇴출된 제작자들이 앙심을 품고 디버깅 요원을 공격할 수 없도록, 시끄러운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정책이었다. 오로라 제작소는 자신들과 관련된 어떠한 이야기도 뉴스에 실리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게 부정적인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래서 그들은 할 수 있는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문제가 일어날 소지를 줄였다. 하지만 오로라 제작소가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면 취할수록 오로라 제작자들은 그들의 의도를 더욱 투명하게 알 수 있었다.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제작자들은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다. 오로라 제작소가 발설하지 않는 진짜 본심을. 자신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건강이 매우 좋지 않으시군요.”
디버깅 요원은 건조하게 말하며 전자패드 위의 수치들을 살폈다.
“갈 길이 멀어 보이네요. 길어지면 어차피 서로 힘드니, 짧게 합시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어쩌다 이 지경이 되신 겁니까?”
심리 상담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딱딱한 질문. 피페는 그 질문을 듣자마자 자신이 여태 들었던 소문들이 전부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피페의 정신 건강을 살피러 온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가 오로라 제작자로서 제대로 기능하는지를 점검하러 온 것뿐이었다.
“왜겠어요.”
반병신이 되었으니까 그렇죠. 피페는 저도 모르게 생각을 잎 밖으로 내뱉으려다 급하게 말을 삼켰다. 미쳤어, 미쳤어. 피페는 자신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정신 차려, 피페. 너 진짜 정신 차려야 돼.
* 소설 <오로라 이엘로> 중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행복의 제물, 우리는 모두 행복의 제물이에요”
가까운 미래, 행복마저 상품이 되어 버린 시대. 행복과 특별함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가장 평범한 노동자 피페의 이야기.
꿈으로 행복을 만드는 오로라 제작소. 피페는 지난 10년간 그곳의 성실한 제작자였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교체되고, ‘그’마저 사라졌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녀를 지탱하는 힘은 하나였다. 특별하고도 평범한 성공의 꿈. 평생 그 꿈이 온당하다 믿었다. 어느 날, 삶에 한 질문이 날아들어 모든 걸 뒤흔들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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