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로봇만이 행복한, 행복 제작소

꿈 몸살, 소설 <오로라 이엘로>


팔찌를 인식 패드에 갖다 대자 작업실 복도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터벅터벅 복도를 걷던 그녀의 앞으로 도우미 로봇 하나가 방방 뛰며 다가왔다. 고무 재질로 만들어진 그는 이리저리 통통 튀어 다니며 출근하는 오로라 제작자들을 반겼다.


“오로라 얼음 필요하세요?”


눈사람처럼 생긴 그는 해맑은 얼굴로 두 팔을 팔랑팔랑 흔들며 제자리에서 빙글 돌았다. 양팔에 매달린 라탄 바구니가 좌우로 흔들렸다. 바구니 안에는 작은 박하사탕처럼 생긴 오로라 얼음들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하얀색 빛을 내는 반투명한 알갱이들은 바구니가 움직일 때마다 녹색과 보라색, 붉은색으로 은은하게 일렁였다.


오로라 얼음은 오로라 제작자들에게 커피 같은 존재였다. 일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필수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식품이라기보다는 약이었다. 그러나 모든 오로라 제작자가 오로라 얼음을 섭취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오로라 얼음은 커피보다 훨씬 위험했기에, 오직 ‘관리자’에 승인받은 오로라 제작자들에게만 오로라 얼음이 허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오로라 얼음은 아로마 향초처럼 공기를 통해 조금씩만 흡수하도록 권장되었다. 그마저도 일정 용량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었으며, 절대 삼키거나 먹어서는 안 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오로라가 한꺼번에 체내로 들어오면, 발작이나 실신과 같은 치명적인 증세를 일으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로라 제작자들은 여러 부작용에도 오로라 얼음을 포기할 수 없었다. 우수한 품질의 오로라 얼음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꿈을 통해 강한 SEND 파동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로라 얼음이 필요했다. 오직 오로라 얼음만이 세상에서 가장 선명한 행복의 꿈을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방법도 오로라 얼음 한 조각을 입에 물고 꾸는 꿈보다 강력하지는 못했고, 강력한 SEND 파동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오로라 제작자들은 오로라 얼음을 함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들은 아침마다 손에 쥐는 커피 한 잔처럼, 매일 로봇이 들고 다니는 바구니에서 오로라 얼음을 한 움큼 집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오로라 얼음을 만들기 위해 오로라 얼음이 필요하다니. 상당히 모순적인 현상이었지만, 그 사실에 깊은 의문을 품는 제작자는 없었다.


“오로라 얼음 없이 오로라 얼음을 만들 방법은 없나요?”


피페는 새내기 시절, 패기 좋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신입 제작자들을 위한 간담회이자, 몇천 명의 오로라 제작소 임직원 앞에서 신입 제작자들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그날 간담회에 앉아 있던 제작자 전원은 피페의 질문을 듣자마자 일제히 폭소했다.


“그래. 그럴 수 있으면 그렇게 해 보렴.”


저만치 앉아 있던 한 오로라 제작자가 그렇게 답했고, 그의 말에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던 이들마저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십 년이 흘렀고. 이제 피페는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안다.


오로라 제작자들은 상상 근육을 통해 SEND 파동을 생성했다. 상상 근육은 전두엽 피질과 편도체를 아울러 지칭하는 말로, 실제로는 근육이 아닌 신경 군집이었으며, 그중 일부는 호르몬을 관장했다. 진짜 근육이 아니었기에, 상상 근육은 쓰면 쓸수록 약해졌다. 상상 근육의 약화는 감정의 둔화로 이어졌다. 한 해씩 먹어 가는 나이도 업무 효율 저하에 한몫을 거들었다. 삶의 경험을 반복해 온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감정의 파고가 적었다. 같은 연애를 상상해도 전처럼 심장이 떨리지 않았으며, 결혼과 탄생 같은 축복할 만한 사건들 앞에서도 덤덤해졌다.


그들의 지닌 긍정적인 감정의 총량, SEND 파동의 생산력이 줄어들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문제는 삶의 경험이 늘어간다는 데에 있었다. 삶의 시간이 늘어감에 따라, 그들은 ‘행복’이라는 정의의 이면을 발견하게 되었다. 결혼식에서는 웃음 짓는 주인공보다 눈물이 그렁한 하객들이 눈에 들어왔고, 돌잔치에서는 방긋 웃는 아기보다 그 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서 있는 부모에게 공감했으며, 시상식에서는 트로피를 받은 우승자보다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시선이 머물렀다. 한 해씩 나이를 먹어 가며 그들은 자신이 당연하게 빚어냈던 행복한 꿈의 이면을 보게 되었고, 그 순간 그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행복할 수 없었다.


오로라 얼음이 필요한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오로라의 꿈은 제작자들이 평생 바래 왔는지도 모르게 바라던 일들을 경험하게 했다. 제작자들의 무의식으로 파고들어 그들이 가장 원하는 형태의 행복을 마치 실제처럼 보여주었다. 오로라의 꿈을 꾼 제작자는 더 이상 진정한 행복을 고민하지 않았다. 모호했던 행복의 의미는 성공과 승리의 꿈을 통해 명확하게 정리되었고, 그들은 이제 꿈에서 한눈을 팔지 않았다. 오로라의 꿈을 경험한 제작자들은 곧 예전처럼 SEND 파동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오로라 얼음은 훌륭한 각성제이자, 업무 효율을 높이는 보조제였다. 그래서 오로라 제작소는 제작자들에게 오로라 얼음을 배급했다. 오로라 얼음이 오로라 제작자에게 얼마나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오로라 얼음을 장려했다. 오로라 얼음에 대한 친근감을 높이고자 작은 사탕처럼 포장해 동그란 로봇의 팔에 실어 보냈다.


“필요한 만큼 충분히 가져가세요!”


도우미 로봇의 상냥한 목소리에 피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니야. 괜찮아. 오늘은 상담하러 왔어.”


피페는 복도 입구에 있는 상담실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물어봐 줘서 고맙다는 말을 덧붙였다. 도우미 로봇은 왔던 걸음 그대로 살랑이며 저만치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피페는 그의 반대편을 향해 걸었다. 상담실 앞에 선 그녀는 문 옆에 걸린 작은 화면을 두드렸다.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그녀는 안쪽에 있는 사람이 답을 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패드의 색깔이 바뀌었다. 방 안에 있는 사람과 그녀만이 알고 있는 비밀번호를 눌렀다. 로딩 화면이 뜨며 그녀가 입력한 비밀번호가 맞는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로딩 화면을 멍하니 지켜보던 피페의 시선이 문득 패드 위에 놓인 손으로 옮겨 갔다. 서른 초중반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운, 주름살이 깊게 팬 손등. 물을 잔뜩 먹은 것 같은 쭈글쭈글한 손은 어제보다 한층 더 늙어 보였다.


이상하네. 요 며칠 오로라 얼음도 끊었었는데.


그녀는 손등을 만지작거렸다. 반대쪽 손에는 옅은 검버섯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씁쓸한 얼굴로 손등을 쓸자, 손가락 모양대로 눌린 자국이 생겼다. 한 번 밀린 피부는 쉽사리 되돌아올 줄을 몰랐고, 그런 모습이 보기 괴로웠던 피페는 습관처럼 혀를 차며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어 버렸다.


노화는 오로라 얼음의 과도한 복용이 초래하는 부작용 중 하나였다. 오로라 제작자들은 일을 시작한 지 두 해를 넘기기도 전에 급격하게 늙어갔다. 오로라 얼음은 그들의 몸에 짙은 주름과 검버섯, 흰머리를 만들어냈다. 일부 제작자들은 머리가 빠지고 치아를 잃는 수모를 경험하기도 했다. 지팡이가 없으면 걷지 못하는 제작자들도 있었다. 오로라 제작소는 그들의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지 않도록 의료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오로라 얼음을 매일같이 복용해야 하는 그들에게 임시방편적인 치료는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근본적인 원인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약과 시술과 수술을 반복하는 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었다.


피페도 당연히 오로라 얼음의 부작용을 피하지 못했고, 그녀는 서른 중반도 되기 전에 노파의 모습으로 변했다. 피부는 재생 능력을 잃은 지 오래였고, 무릎은 자주 시렸으며, 한쪽 어금니는 가장 여린 고기에도 쉽게 시큰거렸다.


아니야. 상담 전에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돼.


피페는 심란한 마음을 추슬렀다. 관리자와의 상담 전에는 평정심 유지가 필수적이었다. 오늘은 더군다나 일상적인 정기 상담일도 아니었다. 휴가를 강제로 처방받고 일주일 만에 다시 돌아온 오로라 제작소였다. 어쩌면 오늘은 그녀의 앞날을 좌우할 중요한 시간이 될지도 몰랐다.


피페는 다급한 손길로 가방을 열어 매끈한 향수병을 꺼내 들어 온몸에 분사했다. 머리가 향수에 젖어 촉촉해질 때까지, 향수를 뿌리고 또 뿌렸다. 무화과와 수선화 그리고 회양목을 섞어 만든 시원하고 달콤한 향이 온몸을 휘감았다. 오직 그녀만을 위해 만들어졌던 향수.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오로지 그녀만 사용할 수 있던 세상에서 가장 유일하고도 특별한 향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대단했던 향도 이제는 별다른 위안이 되지 못했다. 피페는 여전히 불안이 밀려올 때면 습관처럼 향수를 온몸에 흩뿌렸지만, 한때 그녀를 진정시키던 향은 이제 코를 찌르는 탁한 공기로 변해 있었다.


이건 뭐 갖다 버릴 수도 없고.


콧구멍을 쑤시고 들어오는 강한 향에 피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는 또 한 번 향수를 절대 뿌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가방에 향수병을 세차게 던져 넣었다. 하지만 그건 금세 잊힐 다짐이었다. 몇 년간 굳어진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 소설 <오로라 이엘로> 중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소설 < 오로라 이엘로 >


“행복의 제물, 우리는 모두 행복의 제물이에요”


가까운 미래, 행복마저 상품이 되어 버린 시대. 행복과 특별함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가장 평범한 노동자 피페의 이야기.


꿈으로 행복을 만드는 오로라 제작소. 피페는 지난 10년간 그곳의 성실한 제작자였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교체되고, ‘그’마저 사라졌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녀를 지탱하는 힘은 하나였다. 특별하고도 평범한 성공의 꿈. 평생 그 꿈이 온당하다 믿었다. 어느 날, 삶에 한 질문이 날아들어 모든 걸 뒤흔들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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