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몸살, 소설 <오로라 이엘로>
작업실 구역 입구에 걸린 초대 연구소장 부낭의 사진. 나이 지긋한 남자의 자애로운 미소를 위에서부터 찬찬히 훑어보던 피페는 쯧하고 혀를 찼다. 인공지능이 생성한 사진에는 부낭의 진짜 모습이 한 톨도 담겨 있지 않았다.
아무리 세계적인 위인이라고 하지만. 이건 완전히 재창조한 수준이잖아.
피페는 툴툴대며 옷 소매 안으로 말려 올라간 팔찌를 잡아당겼다. 언제나처럼 투명한 팔찌가 팔을 타고 흘러 내려와 손목 근처에서 달랑거렸다. 오로라 제작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수한 팔찌. 그건 피페의 가치를 증명하는 지문 같은 물건이었다.
피페는 세상에 몇 안 되는 오로라 제작자였다. ‘행복 제작자’라 불리는 오로라 제작자는 직업만으로도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는 특수한 사람이었다.
오로라 제작자의 시작을 알린 건 부낭 박사의 연설이었다. 사람을 완벽하게 대체할 기계가 우후죽순으로 발명되던 시절, 그는 새로운 개념을 선보였다.
“SEND 파동. 오직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감정 에너지. 오로라 얼음은 오직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전유물이 하나둘씩 사라지던 시절, 그의 말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여전히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SEND 파동으로 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특수한 몇몇뿐이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인간을 위한 성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때쯤 상상학교가 건립되었다. 당연히 누구나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SEND 파동이 강한 아이들. 긍정적인 감정을 누구보다도 잘 느끼고 표현하며, 상상할 수 있는 아이들. 상상학교는 오직 그런 아이들만 입학할 수 있었다. 그래서 수많은 아이들의 부모가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에 상상학교로 입학 신청서를 보냈지만, 그중 선택된 소수만 학교의 초대장을 받게 되었다.
자제분은 전 세계의 상위 0.01%에 속하는 특별한 아이입니다. 아이의 재능이 마음껏 빛날 수 있게 해 주세요.
피페는 그렇게 선정된 소수였다. 그녀는 아직도 입학 통지서 상단에 있던 문장을 잊지 못한다. 당시 다니던 초등학교 학생의 대부분이 상상학교에 입학 신청서를 보냈지만, 입학이 허가된 건 그녀가 유일했다. 입학 통지서는 그녀가 4학년에 올라간 첫날 도착했고, 그녀는 순식간에 학교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감정 영재 프로젝트’라는 슬로건을 앞세운 상상학교는 입학과 동시에 취업을 보장했다. 직장은커녕 직업을 구하기조차 하늘의 별 따기 같던 시절, 자녀를 상상학교에 보내는 건 모든 부모의 꿈이었다. 교내의 모두가 그녀를 알았고, 모든 부모가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부러워했다. 피페는 남은 3년의 학교 시절을 학교의 슈퍼스타로 살았다.
상상학교에서 입학한 후에는 전문적으로 꿈을 꾸는 법을 배웠다. 예비 오로라 제작자들은 선천적인 SEND 파동 수치만 높을 뿐, 꿈을 통해 파동을 일정하게 생산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학교는 그들에게 꿈을 꾸는 모든 기술적인 부분을 가르쳤다.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방법과 상상을 이어 붙여 꿈을 생성하는 방법, 의식적으로 꿈을 시각화하는 방법과 꿈에서 감각을 유지하는 방법, 그리고 그렇게 형성한 꿈을 SEND 파동으로 변환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1년에 한 번 있는 시험에서는 상상을 통해 생산되는 SEND 파동 수치를 측정했는데, 피페는 그때마다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이대로라면 그녀는 별문제 없이 오로라 제작자가 될 수 있었다.
상상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그녀는 대내외적으로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교내 사람들은 미래가 창창한 우수 학생인 그녀를 부러워했고, 학교 밖 사람들은 예비 오로라 제작자인 그녀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된 어린 학생은 어딜 가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피페는 성인이 될 때까지 그런 삶을 살았다. 그녀는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까지도 굳게 믿었다. 앞으로의 날들도 지금과 같을 거라고. 평생토록 밝고 찬란하게 반짝일 수 있을 거라고.
그랬지. 그땐 이 사진이 진실이라 믿었지.
피페는 부낭의 사진을 흘긋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진짜 부낭 박사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오로라 제작소에 입사한 첫날의 일이었다. 그때는 아직 부낭 박사가 살아있던 시절이었다.
오로라 제작소가 처음이었던 그녀는 작업실 복도를 찾지 못해 길을 헤맸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그녀는 한 노인을 만났다. 그는 머리가 하얗게 세다 못해 듬성듬성 벗겨져 있었고, 손은 바들바들 떨었으며, 온 얼굴에는 검버섯이 피어 있었다. 길을 물으려고 그에게 다가갔던 피페는 얼떨결에 그를 부축하며 같이 걷게 되었다.
“학생, 견학 온 건가?”
우물우물한 발음으로 그가 물었다. 뭉개지는 발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피페는 몇 번이나 되물은 후에야 겨우 그의 질문을 알아들었다.
“아, 아니요. 오늘이 첫 출근이어서요.”
“오, 그래. 오로라 제작자가 되려고 하는 거군.”
“네. 맞아요.”
그는 파르르 떨리는 손길로 코끝에 걸린 안경을 쓸어 올렸다. 고개를 들어 그녀를 자세히 뜯어보았다.
“자네, 오로라 제작자를 평생 할 각오가 되어 있는 겐가?”
“예?”
피페가 되물었다.
“오로라 제작자.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야. 특별하다는 수식어로 포장한 냄새 나는 썩은 우물이지. 한 번 빠지면 쉽게 나갈 수 없지만, 그렇다고 도움을 구하지도 못해. 우물 주인이 처음부터 그러지 못하도록 설계해 놨거든.”
그는 피페의 팔을 꽉 움켜쥐었다. 근육이 아릴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그러니 말해 보게. 정말 저 문턱을 넘을 용기가 있는가?”
노인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저만치 보이는 작업실 구역을 가리켰다.
피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적 부모님께서 종종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눈앞에 다가온 기회는 함부로 버리는 게 아니라고. 전 선택받은 아이예요. 제가 가진 특별함이 함부로 사그라들게 두지 않을 거예요.”
노인은 피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그래. 아무렴 어때.”
그는 아련하게 웃으며 안경을 벗었다. 안경을 접으며 앞주머니에 찔러 넣는 노인의 미소가 어딘가 슬퍼 보였다.
“아가야. 네게 주어진 기회, 꼭 잃지 말고 잘 쓰길 바란다.”
그는 피페의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벽을 짚으며 몇 걸음 나아가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단어에는 여러 뜻이 있지. 사전에 없는 뜻일지라도 누군가에겐 의미가 되기도 해.”
그는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 말고는 고개를 저었다.
“작업실은 저쪽이란다. 잘 가거라.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또 보자.”
그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위태롭게 내디디며 천천히 그녀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가 부낭 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한참 뒤에 있었던 그와의 두 번째 만남에서였다. 두 번의 만남 동안 피페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낭은 한 번도 사진 속 모습과 같았던 적이 없었다. 노인이 된 그의 모습은 초라하고 구차했다. 작업실 구역 입구에 걸린 남자의 당당한 태도와 자애로운 미소는 완벽한 거짓이었다.
* 소설 <오로라 이엘로> 중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행복의 제물, 우리는 모두 행복의 제물이에요”
가까운 미래, 행복마저 상품이 되어 버린 시대. 행복과 특별함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가장 평범한 노동자 피페의 이야기.
꿈으로 행복을 만드는 오로라 제작소. 피페는 지난 10년간 그곳의 성실한 제작자였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교체되고, ‘그’마저 사라졌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녀를 지탱하는 힘은 하나였다. 특별하고도 평범한 성공의 꿈. 평생 그 꿈이 온당하다 믿었다. 어느 날, 삶에 한 질문이 날아들어 모든 걸 뒤흔들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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