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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Oct 14. 2022

8. 빌어먹을 아버지

나의 작은 아기 사자 : 달작가 글뚜레의 소설(이야기책) NFT



8      



휴대폰이 데굴데굴 조수석을 따라 구릅니다. 한참을 참던 숨을 내쉬었습니다. 어둑해진 공기가 양어깨를 무겁게 짓누릅니다.     


전화가 온 건 코디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해가 저무는 평범한 저녁이었죠. 전화를 한 건 선배였습니다.      


“어. 그래. 춥진 않고?”     


그렇게 시작되는 전화는 처음이었습니다. 선배는 살가운 사람이 아닙니다. 늘 용건만 간단히 했었죠. 하지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내가 알던 선배가 아니었습니다. 몇 가지 중요치 않은 질문을 던지던 그가 물었습니다.      


“오늘 일부러 안 들어온 건가?”     


선배는 언제나처럼 답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임마, 너도 그 버릇 고쳐. 말하기 싫더라도 가끔은 해야 할 때가 있는 거야. 사내자식이 겁만 많아 가지고, 새끼가.”     


“죄송합니다. 내일 아침 해가 뜨면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하지만 아기 사자가 무리에서 홀로 남겨졌어요. 이대로 그냥 두었다간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겁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한숨. 미친 새끼. 옅은 중얼거림. 선배는 잠시 호흡을 골랐습니다.     


“임마, 내가 너 추천한 건 알지? 아무리 단기직이었다지만, 내가 널 왜 추천한 거 같냐. 어? 여기서 기회 한번 잡아보라고 그랬던 거야. 여기 감독이랑 팀이 얼마나 유명한지는 알지? 그걸 아는 놈이 그래? 너 진짜 왜 그러냐. 장비 들고 튀고.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너 요새 무슨 얘기 오가는지는 알고 있었지? 그래서 그런 거냐? 어?”     


잠자코 있었습니다.      


“아기 사자? 너 지금 아기 사자가 대수야? 불만이 있으면 와서 얘기를 해야 알 거 아니야. 부탁을 할래도 와서 해야지. 그렇게 냅다 꽁무니 빼고 도망치면 누가 알아줘? 답답하다, 정말. 너 언제까지 그럴래? 임마, 애도 곧 나온다며. 너 이제 가장이야. 새끼야, 정신 차려.”     


너나 돌봐, 너나. 귓가를 울리는 선배의 말. 잠깐의 공백. 드디어 내게 차례가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다였습니다. 수화기 반대편이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쏟아지던 독백이 일순간에 멈췄습니다. 깊은 한숨.      


“그... 저. 내일 오면 짐 싸야 할 거 같다.”     


선배의 짧은 말. 조금 주저하다 내뱉은 말은 생각보다 간결했습니다.      


“예? 내일이요?”     


나는 공백 없이 답했습니다. 조금 놀란 어투도 포함했죠. 사실은 하나도 놀랍지 않았습니다만, 선배를 위해 짐짓 놀란 척을 했습니다. 그게 최소한의 예의일 테니까요.      


“원래 오 개월 정도 같이 하기로 했었잖아. 그치? 그냥 몇 주 조금 일찍 마쳤다고 생각하자. 자세한 건 내일 오면 설명해 줄게.”     


“그냥 지금 설명해 주시면 안 될까요?”     


새끼가 정말 끝까지. 선배가 중얼댔습니다.      


“좀 갑작스러울 거 알아. 근데 결정도 급하게 나서 말이야.”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깔끔하고 일목요연한 정리. 선배는 내가 어떤 계약 사항을 위반했는지를 조목조목 읽어 주었습니다. 무단 이탈과 팀 자산의 독단적 점유 등. 야생에서 하루를 머무름으로써 내가 어떠한 피해를 입혔는지를 나열했죠. 계약서. 우리는 누구도 그걸 자세히 읽어 보지 않습니다만. 계약서는 이런 때를 위해 필요한 거겠지요. 묵묵히 듣던 나는 한마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더 많은 말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요.      


“죄송하다니, 임마. 죄송할 거 없어. 감독 성격 알잖냐. 네가 싫은 게 아니라 고급 장비가 걱정돼서 화가 났나 봐. 그리고 차가 한 대 나가 버리면 내일 일정에도 차질이 생기니까. 그렇다고 사람 자를 일까진 아닌데. 에휴. 너무 앙금 가지지 말고. 너도 뭐. 크게 잘한 건 없으니까 다음부터는 좀만 더 신중하고.”     


선배의 목소리는 나직하고 부드러웠습니다. 잔뜩 꾸며낸 그의 친절함이 나는 오히려 무서웠습니다. 그건 돌이킬 마음이 없는 호의니까요. 나는 작은 한숨과 함께 알겠다고 답했습니다.     


“야, 그래도 아프리카 오지보다는 태어났을 때 곁에 있어 주는 아빠가 더 좋긴 할 거야, 응? 정서발달 그런 거에도 더 좋고. 안 그러냐?”     


평소와 같았다면 속삭이듯 ‘네’라고 답을 했을 겁니다. 보통의 나였다면 그렇게 말했겠지요. 그걸로 그날 저녁의 전화는 끝이 났을 겁니다. 하지만 황급히 전화를 끊으려는 선배의 조바심이 느껴지자, 나는 문득 다른 말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선배, 아기 사자가 왜 무리에서 버려졌는지 아세요?”     


선배는 답이 없었습니다. 깊게 한숨만 내쉴 뿐. 침묵과 실랑이를 벌이던 그가 입을 열었습니다.      


“끊는다.”      


전화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끊어졌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온몸이 땀범벅이었다는 걸.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핸들에 머리를 박았습니다. 무너지듯 앞으로 고꾸라졌습니다.     


꽝!      


별안간 울린 경적에 소스라치며 고개를 들었습니다. 이마가 아립니다. 문득 커다란 혹이나 시원하게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아가서 볼 아내와 얼굴도 모르는 아이. 혹이라고 커다랗게 붙이고 가면 그들을 보기가 좀 괜찮을까요. 변명이라도 몇 마디 들어줄까요.      


아내는 출산을 이유로 휴직을 요청했다 회사에서 퇴사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게 고작 한 달 전의 일입니다. 해고를 당한 날, 그녀는 내게 무척이나 미안해했습니다. 아이를 낳고 꼭 일을 다시 알아보겠다고. 안 되면 뭐라도 하겠다고. 몇 번이나 거듭 약속했습니다. 그건 약속에 가까운 다짐이었습니다. 그녀는 아직도 죄책감에 살고 있습니다. 아이도 분명 그녀와 함께 죄책감 위에 서 있을 겁니다. 난 절대로 아내와 아이에게 해고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겠지요. 아내에게는 휴가를 받아서 좀 일찍 왔다고 해야겠습니다. 우선은 그게 최선이지 않을까요. 빌어먹을 아버지가 되지 않으려면.     


빌어먹을 아버지. 빌어먹을 아버지가 되지 않기 위해 난 뭘 할 수 있었을까요. 뭘 해야만 했을까요.

내게 아버지라는 호칭이 어울리기는 한 걸까요.     


꺄웅!      


별안간 목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습니다.      


꺄웅! 꺄웅! 꺄웅!      


반복되는 울음소리에 문득 정신이 들었습니다. 얼굴을 한껏 그러쥐었던 손에 힘이 풀렸습니다. 두어 번 거칠게 마른 세수를 했습니다. 소리는 카메라에서 들려왔습니다. 휘몰아치는 전화들을 받느라 카메라는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돌아가고 있던 모양이었습니다. 손을 뻗어 카메라의 설정을 야간 모드로 바꾸었습니다. 화면 안에 조그만 아이가 꿈틀거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의 작은 아기 사자. 그가 비로소 오랜 잠에서 깨어난 모양입니다.      


꺄웅!      


아기 사자가 다시 한번 크게 울었습니다. 우렁찬 목소리. 아기 사자는 주변을 살피며 더듬더듬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얼마간 원을 그리며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습니다. 쉼 없이 울음을 울며 두리번거리기를 한참. 마침내 사자는 깨달은 듯했습니다. 자신이 홀로 남겨졌음을.     


꺄웅?     


아까보다는 조그마해진 소리. 반쯤 쉬어 버린 목으로 아기 사자는 물었습니다. 똑같은 울음이었지만 나는 그가 질문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꺄웅? 아기 사자는 울음이 너른 들판에 메아리쳤습니다. 꺄웅? 꺄웅? 꺄웅? 드넓은 벌판이 질문들로 가득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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