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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Oct 15. 2022

9. 아기 사자의 밤

나의 작은 아기 사자 : 달작가 글뚜레의 소설(이야기책) NFT



9



아기 사자는 같은 자리에서 한참을 맴돌았습니다. 메아리치는 질문들은 여전히 그와 함께였습니다. 애당초 그의 물음에 답이 있긴 했을지 궁금합니다. 그가 던진 물음은 목적을 잃은 추궁이니까요. 역사상 한 번도 답해진 적 없는 근원의 난제니까요. 모든 약자가 언젠가 맞닥뜨리는 필연적인 숙명. 버려지거나 죽는 가련한 운명. 나의 작은 아기 사자는 그 반복된 공식을 다시 한번 되풀이했을 뿐입니다. 안타깝게도 역사상 그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한 이는 없었죠.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촬영팀은 내가 도착한 첫날부터 매정했습니다. 처음 소개하는 자리에서 내 이름 앞에 붙은 호칭은 ‘임시방편으로 들어온 친구’였습니다. 유명 감독과 일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한껏 품은 채 도착한 아프리카였지만, 선배가 붙여 준 호칭을 듣자마자 나는 알았습니다. 여기서 일하는 동안 나는 그 호칭에서 절대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걸.     


사실 얼마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촬영팀이 전보다 더 분주해졌고, 수많은 서류와 메일, 전화가 오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숙소 로비에서 원격 면접이 진행되는 광경을 몇 번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그건 임시방편이었던 나의 시간이 끝나가는 소리였습니다. 결정은 지난주에 났습니다. 나와 약속된 시간보다도 훨씬 이른 결정이었죠. 나는 샐리의 자료를 보며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이유로 자료를 뒤적이다 우연히 발견한 다음 주 촬영 일정에는 이상하게도 내가 없었습니다. 난 늘 선배와 페어를 이루어 촬영을 나갔는데, 선배 이름 옆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더군요. 오늘은 언젠가 와야만 할 날이었습니다. 난 자연스러운 현상에 다만 그럴듯한 명분을 마련해 준 겁니다. 바보같이. 고작 아기 사자 따위에 정신이 팔려서.      


저만치 하마가 걸어옵니다. 둔탁한 발소리가 들리자 아기 사자가 목청을 높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조금 긴장이 되었죠. 하마는 아기 사자에게 위협적인 존재니까요. 눈이 대단히 좋지 않은 동물이거든요. 짙은 밤에는 더더욱 눈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아기 사자는 하마의 발에 짓이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의 기척에 한껏 상기된 아기 사자가 이 사실을 알 리 없었죠. 상대가 총을 든 포수였더라도 여전히 아장거리며 반갑게 달려갔을 겁니다. 아기 사자가 생의 공포를 느끼는 대상은 하마나 포수 따위가 아니거든요. 

    

늘 그런 식이었습니다. 십 년 동안 반복되었던 보부상.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습니다. 나는 언제나 해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일이 무너지기 직전에 투입되었죠. 두어 번 그러지 않은 적도 있었지만, 그건 짧은 행운이었을 뿐입니다. 임시방편, 임시직, 급해서 데려온 사람. 모두가 처음부터 날 그렇게 소개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나의 시간은 그런 일들로 가득해졌고, 결국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눈앞에서 임시방편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호방하게 웃으며 악수를 하는 지경이 되었죠. 이번에도 다를 건 없었습니다. 아프리카 사바나, 유명한 감독, 유수의 촬영팀 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증명했을 뿐입니다. 만년 일용직인 나의 모습을.      


하마는 아기 사자를 지나쳐 갑니다. 아마 처음부터 별 관심이 없었을 겁니다. 아기 사자는 하마가 보이는 순간부터 그를 불렀지만, 하마는 성가신 듯 귀를 몃 번 쫑긋거린 게 전부입니다. 필사적으로 자신의 뒤를 쫓는 아기 사자를 그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하마는 떠났지만, 같은 모습은 몇 번이고 반복되었습니다. 하마가 코끼리, 얼룩말, 기린, 영양 등으로 조금씩 바뀌었을 뿐이죠. 그들은 전부 잰걸음으로 멀어지기 바빴습니다.     


아기 사자에게 필사적이었던 건 그가 낯설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를 쫓았던 건 그가 내게 답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죠. 정말로 오랜만이었거든요. 그토록 삶을 갈구하는 존재는. 어쩌면 아기 사자는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삶의 답변을 부정할 방법을. 임시방편으로 가득했던 삶의 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을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건 내 어리석은 착각이었습니다. 아기 사자는 그저 나의 과거였을 뿐입니다. 불행히도 사자로 태어난 그는 미처 내가 되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나와 달리 그는 철저한 야생에서 살아남아야 하거든요.      


아기 사자의 갈라진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울고 또 울어서 목이 다 쉬어 버렸나 봅니다. 그를 탓하지는 않습니다. 아기 사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를 했을 뿐입니다.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은 우는 것이고 그래서 그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죠. 하지만 조그맣고 버려진 아기 사자는 동물들의 호기심 거리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적막 앞에 홀로 남겨진 현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지, 아기 사자는 이제 우는 것조차 잊었습니다. 우두커니 허공을 응시할 따름이었죠.     


몇 번이고 그가 홀로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이상하게 나는 분개하지 않았습니다. 동물들이 아기 사자를 귀찮아하면 할수록 되려 마음이 고요해졌죠. 오후까지만 해도 들끓던 마음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저게 옳은 순리겠죠. 아기 사자는 애초부터 버려질 운명이었습니다. 여태 약자 공식을 망각하고 있던 건 나였습니다. 어차피 그를 지켜보는 것 외에는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오랜 세월 다져진 굳건한 자연의 섭리를, 난 무슨 자신감으로 뒤엎으려 한 걸까요.      


왁자지껄한 동물들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기 사자는 이제 그편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조금 시무룩해진 얼굴로 배를 대고 누울 따름이었죠. 나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마침내 수긍했습니다. 아기 사자와 같은 삶도 있는 거지요.      


‘야생에 온 걸 환영하네, 미스터 지.’     


스스로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습니다. 나는 이제야 진정한 야생에 도착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것일지도 모르지요.      


아기 사자가 크게 하품을 했습니다. 그를 따라 나도 길게 하품을 했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강행군을 달려서 그런지 피곤이 밀려왔습니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침낭을 이불 삼아 펼쳤습니다. 내일은 일자리를 알아봐야겠습니다. 한국에 백수인 채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반쯤 감긴 눈으로 카메라 화면을 응시했습니다. 아기 사자의 밤은 그렇게 저물어 가는 듯했습니다. 약자의 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깨달으며. 변변치 않은 측은지심이 얼마나 무모한지를 상기하며. 그렇게 잔잔하게요. 그대로 잠이 들었다면 우리의 이야기도 거기서 끝이 났겠죠.      


한 가지 변수가 있었다면 마침 내가 성능이 무진장 좋은 카메라를 지니고 있었다는 겁니다. 고성능의 렌즈는 내가 보지 못한 걸 보았죠.      


발광하는 두 개의 눈.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번쩍이는 두 눈이 없었더라면, 아기 사자와 나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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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작가의 소설(이야기책) NFT 컬렉션 Moonstories는 실물 연계형 NFT로, 출간 예정이거나 이미 출간된 책들을 NFT화하여 컬렉션으로 엮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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