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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Oct 15. 2022

10. 먼저 한 인사

나의 작은 아기 사자 : 달작가 글뚜레의 소설(이야기책) NFT



10      



시커먼 어둠은 작은 빛도 놓치지 않습니다. 동물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라면 더더욱. 화면에서 번쩍이는 두 눈을 보는 순간 잠은 순식간에 달아나 버렸습니다.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 카메라 화면을 찬찬히 살폈습니다.     


하이에나. 그건 하이에나였습니다. 


높은 풀 사이에 교묘하게 몸을 숨긴 채, 아기 사자를 숨죽여 쳐다보고 있었죠. 방금 막 잠이 든 그 조그만 생명체를요. 아기 사자에게서 조금 떨어진 풀숲에서, 하이에나는 바닥에 배를 깔고 납작 엎드려 있었습니다. 적외선 카메라 속에서 허옇게 변한 점박이 무늬는 유렁처럼 일렁였습니다. 점박이 사냥꾼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서서히 다가왔습니다.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검은 어둠만이 가득한 초원. 그곳을 메운 고요한 침묵에 숨이 막혔습니다. 하이에나는 슬며시 턱을 들어 고갯짓을 했습니다. 검은 점박이는 점차 둘로, 셋으로 늘어났습니다. 하나가 아니었던 겁니다. 아기 사자가 철저하게 혼자라는 걸 확인한 그들은 더 이상 몸을 낮추지도,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나는 잠자코 화면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광경은 아니었습니다만, 막상 눈앞에서 일이 펼쳐지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그의 죽음 앞에 함부로 고개를 돌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 말이죠. 식어버린 혈흔이 되어 누군가의 발자국으로만 남게 하지 않으려면, 나는 봐야 했습니다. 끝까지 지켜봐야 했습니다. 적어도 내게는 그를 기억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카메라 안의 아기 사자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귀를 쫑긋대고 코를 킁킁댔습니다. 하이에나들의 발걸음이 과감해졌습니다. 들려 오는 날카로운 위협. 하지만 상대는 나의 작은 아기 사자였죠. 그는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몸을 잔뜩 부풀리고, 앞발을 한껏 곧추세우고서 거세게 저항했습니다. 하지만 하이에나들은 곧 아기 사자를 에워쌌습니다. 낄낄대는 웃음소리로 아기 사자의 울음을 뒤덮었죠. 작은 생명체는 분명 직감했을 겁니다. 자신에게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카메라 화면에서 아기 사자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 나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그러모아 내뿜는 최후의 울부짖음. 공기를 휘갈기는 그 섬짓한 비명을.      


내가 어째서 때마침 핸들을 잡고 엑셀을 밟았는지 설명할 길은 없습니다. 하이에나가 아기 사자의 목덜미를 향해 달려드는 순간, 내게는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거든요. 헤드라이트를 최대한으로 키운 채 전속력으로 달려야겠다는 생각. 엄밀히 말하자면 생각도 아니었습니다. 미처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몸이 움직이고 있었거든요. 굳이 이유를 찾자면, 내 알량한 이성을 탓하겠습니다. 그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으니까요. 

    

하이에나들은 다행히 차를 무서워했습니다. 갖은 비명을 질러대며 사방으로 튀어 나갔죠. 낡은 지프차의 무자비한 엔진 소리가 고마운 건 처음이었습니다. 꽁무니 빠지게 도망치는 하이에나의 다급한 뒷모습을 보며 나는 핸들에 무너지듯 머리를 기댔습니다.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았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습니다.     


“아무도 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와, 진짜 정말 다행이야, 하이에나를 치지 않아서. 진짜로. 다행이야. 정말로.”


거친 숨이 잦아들 때까지 한참을 중얼댔습니다. 같은 말인 줄도 모른 채 바보처럼 반복했죠. 다행이라고. 또 다행이라고. 정신이 들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카메라를 끄는 것이었습니다. 더듬거리며 손을 뻗었고, 손가락 끝의 감각만으로 버튼을 눌러 촬영을 종료했습니다. 촬영본을 넘기기 전에 하이에나에게 돌진하는 부분을 지워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내 두서없는 중얼거림도요.     


……     


조금 진정이 되자, 나는 헤드라이트 불빛을 줄였습니다. 환하던 빛이 사그라들자 주변이 선명해졌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차 앞에 삐죽 튀어나온 두 개의 귀였습니다. 본네트에 가려 아주 살짝만 보이기는 했지만, 분명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고개를 내밀어 차 앞을 확인했을 때, 나는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사흘간 괴로울 정도로 쫓았던 얼굴. 그가 그곳에 있었거든요.     


나의 작은 아기 사자. 

그는 왜 도망치지 않은 걸까요.     


털털털털 시끄럽게 울리는 차의 엔진이 무섭지도 않은지 그는 강한 헤드라이트 불빛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몹시도 다부진 얼굴로 입을 앙다문 채 미동도 하지 않았죠. 그의 눈이 나의 눈과 마주쳤습니다. 우리는 잠시 서로를 응시했습니다.      


꺄옹!      


먼저 인사를 건넨 건 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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