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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Oct 19. 2022

11. 안녕, 아가야

나의 작은 아기 사자 : 달작가 글뚜레의 소설(이야기책) NFT




11      



안녕 아가야.      


내 인사에 아기 사자는 눈을 깜빡였습니다. 헤드라이트를 켠 채로 차 시동을 껐습니다. 거추장스럽게 진동하던 기계음이 사라지자 주변이 삽시간에 고요해졌습니다. 어떠한 소리도 없는 사바나는 처음이었습니다. 촬영은 늘 소리와 함께였으니까요. 지프차의 엔진, 무전과 사람들의 말소리, 휴대폰, 미약한 카메라 소음까지. 나는 이토록 완벽하게 홀로였던 적이 없었습니다.      


텅 비었던 공기가 서서히 채워졌습니다. 혼자였던 공간이 조금씩 풍성해졌죠. 바스락거림, 펄럭임과 속삭임. 작은 발걸음들.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지만 요란스럽지 않아 귀 기울이지 못했던 소리들. 작은 파장들이 공간을 메웠습니다. 그곳은 미지의 벌판이었습니다. 낯선 어둠이 만든 새로운 공간.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나의 작은 아기 사자. 그의 눈길이 없었더라면, 나는 분명 꼼짝없이 그 검은 공간에 잠식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헤드라이트 앞에서 쫑긋거리는 두 개의 귀를 보며 나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바로 잡았습니다. 뒷좌석을 더듬어 물병과 작은 스테인리스 그릇을 집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하려고 계획했던 건 아닙니다만, 본능적으로 물품 몇 개를 챙기게 되더군요.      


차 문을 열고 몇 걸음을 걸었습니다. 건조하고 서늘한 사바나의 기온이 얼굴을 스쳤습니다. 발밑으로 느껴지는 거친 모래알들. 서걱거리며 으스러지는 마른 풀들. 그리고 완벽한 암흑. 적막한 대지 앞에 생각마저 사라졌습니다. 한 치의 앞도 알 수 없는 공간에서 완벽하게 혼자가 된다는 것. 야생에 온전히 노출된다는 것. 그건 새로운 공포였습니다. 차 앞으로 걸어가는 짧은 걸음 동안 몇 번이나 두리번거렸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조그만 털 뭉치가 보이는 순간 모든 게 이상하리만치 깔끔하게 잊혀지더군요. 남은 건 오직 반가움뿐이었습니다.   

   

나의 작은 아기 사자. 그는 이미 고개를 돌려 이쪽을 보고 있었습니다. 한쪽 다리는 배 밑으로 말아 넣고, 다른 다리는 일직선으로 쭉 뻗고서. 바쁘게 두 귀를 움직이고 있었죠. 귀를 움직일 때마다 앙증맞은 뒷발을 조금씩 꼼지락댔는데, 도톰한 발가락을 살짝 오므릴 때마다 작은 발톱들이 삐죽빼죽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우리는 잠시 서로를 응시했습니다. 어쩔 줄을 몰랐다는 표현이 적절할 겁니다. 막상 아이를 앞에 두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다짜고짜 다가가서 이마를 쓰다듬어 줄 수도 없을 테니까요. 아기 사자도 그걸 원치 않을 테고 말입니다.     


한참을 서 있다 조금 용기를 내어 한 걸음을 떼었습니다. 아주 조금 가까이 다가선 것뿐인데도 아기 사자는 몹시 놀라더군요.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갔습니다. 무서워서라기보다는 당황을 했던 것 같습니다. 무서웠다면 꽁지가 빠지게 도망을 쳤겠지요. 그는 고작 너댓 걸음을 가서는 다시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나와 눈을 맞추었죠. 슬며시 미소가 피어올랐습니다. 나는 소곤소곤 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여전히 의심 가시지 않은 그의 눈망울을 앞에 두고 나는 작은 그릇에 물을 따랐습니다. 물병과 스테인리스 그릇이 철크덕거리는 소리에 아기 사자는 다시 긴장했지만, 도망치지는 않았습니다. 들썩이는 철 그릇 안으로 떨어지는 차가운 물줄기. 아기 사자는 본능적으로 코를 옴싹였습니다.      


나는 서서히 몸을 낮추었습니다. 아기 사자는 서서히 몸을 높였죠. 허리를 낮추며 몸을 웅크리는 사람과 엉덩이를 한껏 들어 올려 경계하는 작은 사자. 그건 짧은 군무였습니다. 내가 한발 다가서면 아기 사자는 한발 물러났고, 멈추면 아기 사자는 물끄러미 관찰했습니다. 아기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물을 내려놓고 황급히 뒤로 멀어졌습니다. 아기 사자는 자리에 가만히 서서 물그릇과 나를 번갈아 보았습니다. 동그란 눈에 망설임이 어렸습니다.      


지프차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환한 불빛 앞에 나를 온전히 내보였죠. 주변의 빛이 강해 저만치 서 있는 아기 사자의 모습이 희미해졌습니다.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스테인레스 물병의 마개를 열고는 그 안의 물을 꿀꺽꿀꺽 들이켰습니다.      


“어유, 물맛 좋네.”     


소매로 입가를 훑으며 중얼댔습니다. 일부러 아기 사자를 보지 않은 채 호탕하게 껄껄댔습니다. 자갈을 밟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들렸습니다. 미세하게 튕기는 얇은 모래알들.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애써 모른 척했습니다. 돌아보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혀로 물을 가볍게 건드리는 듯 찰방거리는 소리. 물방울의 상쾌한 파닥임과 시원한 들썩거림이 이어졌습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아기 사자가 있었습니다. 허겁지겁 물을 욱여넣는 조그마한 아이. 어찌나 목이 말랐던지 제 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깨끗이 비워진 그릇. 아기 사자는 아쉬운지 거듭 바닥을 핥았습니다.      


“뚫리겠다. 뚫리겠어.”     


너털웃음을 짓자 아기 사자는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모양이었습니다. 아기 사자는 입맛을 다시며 빈 그릇을 흘긋 보았습니다.      


나는 문득 차 뒤편에 처박힌 가루우유가 생각났습니다. 짐가방에 늘 챙기고 다니는 가루 음료였죠. 몇 주째 들고 다니기는 했지만, 오히려 갈증만 나게 하는 음료라 선배도 나도 여태 마실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비상식량 정도로 치부하며 늘 가지고만 다녔죠.     


아니야. 안돼.      


세차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기 사자에게 가루우유는 건강상으로도 좋지 않지만, 그 행위 자체로도 독입니다. 아기 사자는 내가 기르는 강아지가 아니니까요. 그를 며칠 지켜본 게 전부입니다. 나는 그를 평생 책임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기 사자가 입맛을 다시고 있었습니다. 허망한 얼굴로 그릇만 바라보고 있더군요. 날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있는 쪽을 향해 귀를 쫑긋대고 있었습니다. 손에 든 물병의 물이 찰랑거릴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웠죠. 어쩌면 무언가가 벌써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후회가 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고집도 생겨났죠. 며칠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아기 아닙니까. 그렇게 자꾸만 스스로에게 읍소했습니다.      


“아잇, 모르겠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차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 뒷자리를 뒤졌죠. 이것저것을 챙겼습니다. 가루우유와 여분의 물그릇. 물이 가득한 또 다른 물병과 초콜릿 바 몇 개. 초콜릿 바는 내 저녁이었습니다. 곡물과 견과류, 초콜릿이 적당히 범벅된 에너지바였죠. 샐리가 챙겨준 식량이었습니다.      


양손 가득 무겁게 지프차 앞으로 돌아오자, 나를 기다리는 아기 사자가 보였습니다. 헤드라이트가 만든 빛의 공간에서 안락하게 쉬고 있는 그를 보니 고민들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자연의 섭리에 간섭하지 말라고는 하지만, 눈앞에 숨 쉬고 있는 아기를 어떻게 외면할 수 있을까요. 그게 가능한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겁니다. 


나는 빈 물그릇에 물을 가득 붓고는 지프차 앞에 앉았습니다. 아기 사자는 내가 적당히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금세 물그릇으로 다가와 두 번째로 목을 축였습니다. 영리하고 용감한 아이입니다. 몇 번을 봐도 그러했습니다.      


“얌마, 너 이거 엄청 위험한 일이야. 아무나 주는 거 막 받아먹으면 안 된다고.”     


괜히 실없는 소리를 지껄였습니다. 아기 사자가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고마웠습니다. 나는 헛헛하게 웃으며 철 그릇에 가루우유를 털어 넣었습니다. 물을 조금 붓고는 챙겨 온 간이 수저로 우유를 저었습니다. 숟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투명한 물이 점차 뽀얗게 변해 갔습니다.      


아기 사자가 문득 고개를 들어 나를 봅니다. 아기 사자와 눈이 마주치자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한껏 물을 머금은 통통한 주둥이. 그 위에 박힌 조그만 코. 깜장색 코가 들썩이는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옅은 갈색으로 반짝이는 아기 사자의 눈에 말을 걸었습니다.      


“맛있어 보이냐?”     


나는 핏핏 새어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아 가며 우유를 저었습니다. 물을 조금 더 붓고 성실히 저었습니다. 힐금힐금 아기 사자를 보았습니다. 아기 사자는 내가 저를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흔들리는 숟가락에만 온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한 숟가락을 떠서 점도를 확인했습니다. 숟가락이 기울며 우유가 한 줄기 쪼로록 흘렀습니다. 허공을 가르던 우유 한 방울이 튀어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건조한 토양은 우유를 순식간에 흡수했습니다. 땅 위에는 우유 한 방울이 잠시 머물렀던, 작고 짙은 얼룩이 남았습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바닥에 묻은 흔적을 지우려 했습니다만, 이미 토양 안으로 빨려 들어간 우유의 자국은 쉽게 사라지지 않더군요.      


아기 사자의 시선은 내 손길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마른 바닥을 뒤적이는 나를 최선을 다해 쳐다보고 있었죠. 온 신경을 집중해 눈앞의 광경에 매달렸습니다. 나는 문득 그의 시선이 불편해졌습니다. 그의 눈에 서린 간절함과 맹목적인 얼굴에 뜻 모를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이상하게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갈망하는 걸 너무 티 내지 마. 야생의 가장 첫 번째 원칙은 네가 원하는 걸 들키지 않는 거야.”     


아기 사자는 답이 없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하지만 나는 자꾸만 그에게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기회가 없을 거 같아서. 밤을 가르는 긴긴 주절거림이 시작된 이유는 아마도 그래서였을 겁니다. 듣는 이 없는 이상한 혼잣말은 아기 사자에게 우유를 건네는 순간까지도 계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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