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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Oct 25. 2022

13. 아름다운 작별 인사 따위

나의 작은 아기 사자 : 달작가 글뚜레의 소설(이야기책) NFT



13      



전에 없던 태양이었습니다. 시뻘겋게 물드는 아침. 풍경은 묘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어슴푸레한 하늘 아래 널브러진 뱀의 허울. 나는 깨달았습니다. 어제의 해가 영원히 저물었다는 사실을요. 숨 막히게 내리쬐던 태양은 더 이상 없었죠. 우리는 차가운 땅을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새로운 태양 아래 더 이상 거리낄 것은 없었으니까요.      


사람은 차에 올랐고, 사자는 자연스럽게 앞장섰습니다. 돌아가는 길에는 어떠한 동물도 훼방을 놓지 않았습니다. 굉음을 울리는 지프차가 사자의 뒤에서 바싹 붙어 달렸기 때문은 아닙니다. 사자에게 달려드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입니다. 어지간한 배짱이 아니고서야 의기양양하게 눈을 번뜩이는 사자에게 덤벼들기는 쉽지 않죠. 야생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니까요.     

우리는 곧 아기 사자의 가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늘 머물던 덤불 숲에서 아침 휴식을 즐기던 중이었죠. 덤불이 가까워지자 아기 사자는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덤불 사이로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내는 가족들을 지그시 바라보던 아기 사자는 이내 발걸음을 떼었습니다. 둔탁한 발걸음으로 한 발 한 발 내디뎠습니다. 마침내 그는 가족 앞에 섰습니다.      


그를 먼저 알아본 것은 어미였습니다. 허리에 깊은 상처가 있는 어미. 그가 미처 다가오기도 전에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습니다. 그리 반가운 표정은 아니었죠. 아기 사자는 개의치 않았지만요. 그는 먼저 다가섰습니다. 꼬리를 가볍게 흔들며 꺄웅!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어미는 화답하지 않았습니다. 의아하다. 그건 어미의 얼굴을 가장 잘 설명한 단어일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반갑게 다가오는 아이 앞에서 주춤거렸습니다. 다리에 몸을 비비는 아이를 차마 밀어내지 못한 채 머뭇댔습니다. 그녀는 아이의 눈을 자꾸만 살폈습니다. 빛을 잃었던 아기 사자의 눈. 꺼져가던 그의 눈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몇 번이고 아기 사자의 눈을 확인했습니다.      


어미 뒤에서 등장한 작은 귀의 털북숭이들. 그의 형제들은 그를 반겼습니다. 그들 중 아기 사자에게 가장 격하게 달려든 건 눈 밑에 하얀 점이 있던 덩치 큰 형제 사자였습니다. 그는 여느 때와 같이 몸뚱이를 던져 아기 사자를 덮쳤죠. 하지만 놀랍게도 이번에 땅바닥에 나동그라진 건 아기 사자가 아닌 그의 형제였습니다. 눈 밑의 하얀 점을 가진 형제는 풀밭에서 한 바퀴를 구르고서는 조금 멍한 표정으로 몸에 붙은 먼지들을 부스스 털었습니다.


아기 사자의 작은 승리는 다른 어린 사자들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주변에 다른 아기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아기 사자의 몸 이곳저곳을 냄새 맡았습니다. 입 주변에 유독 몰려들었죠. 아기 사자의 주둥이 근처에는 어제의 격한 싸움의 잔재들이 말라붙어 있었거든요. 응고된 뱀의 피딱지들. 격한 상처들. 사냥을 아직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어린 사자들의 눈에는 그것이 마치 어른의 표식처럼 느껴졌나 봅니다.    

  

나의 작은 아기 사자는 그들의 눈길을 피하거나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쌓여 가는 그들의 궁금증에 성실히 답했죠. 따가운 아프리카의 태양을, 아기 사자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한바탕의 환영식을 마치고, 아기 사자는 다시 어미 앞에 섰습니다. 풀숲 사이에 누워 있던 그녀는 졸린 눈으로 아기 사자를 흘긋 보았죠. 아기 사자는 어미의 품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어미는 귀찮은 듯 그를 밀치려다 푸르르. 숨을 내뱉었습니다. 주변을 슬쩍 살피더니 파고드는 그를 내버려 두었죠. 아기 사자는 정말 오랜만에 어미의 젖을 양껏 먹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조용히 카메라를 껐습니다. 완벽한 결말에 피가 끓었죠. 촬영 장비를 정리하며 아기 사자가 있는 편을 슬쩍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미동도 없이 잠들어 있더군요. 눈 밑이 하얀 그의 형제는 그와 뒤엉켜 잠에 취해 있었습니다. 나는 조심히 시동을 걸었습니다. 차와 함께 뒤로 조금씩 물러났죠. 사자들이 최대한 깨지 않길 바라면서.      


영화같이 아름다운 작별 인사 따위는 없었습니다. 동물이 뛰어나와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 준다거나, 아쉬움에 못 이겨 뒤돌아본다거나 하는 감성적인 장면들 말이죠. 우리의 이별은 담백했습니다. 현실은 낭만 가득한 드라마가 아니니까요. 우리의 진짜 영화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나는 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이제는 내 차례였습니다. 아기 사자의 달라진 발걸음을 내가 이어받을 차례였죠. 뭘 해야 할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아기 사자를 처음 본 순간부터 떠올렸지만 머뭇거렸던 과업. 차마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주저했던 일. 그 일을 이제는 실행에 옮길 때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도박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이건 내가 얻을 것밖에 없는 게임입니다.      


이제 난 베이스캠프로 돌아갑니다.

오늘은 내가 이곳에 머무는 마지막 날이 되겠군요. 물론,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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