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아기 사자 : 달작가 글뚜레의 소설(이야기책) NFT
베이스캠프는 발칵 뒤집혀 있었습니다.
“휴대폰은 꺼져 있지. 무전은 안 받지. 차는 없어졌지. 반나절이 지나도 베이스캠프로 오는 사람은 없지. 우린 네가 죽은 줄 알았어! 이 멍청아, 가면 간다고 연락이나 하고 가던가! 캠프에 비상 걸릴 뻔했다. 무슨 말인지 알어?”
선배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지만, 그는 내 생각보다 더 얼굴을 붉혔습니다. 나는 연거푸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말아! 경찰 부를 뻔했어, 임마!”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습니다.
에휴. 참. 거. 에휴.
사람들은 한숨을 푹푹 쉬며 하나하나 자리를 떴습니다. 코디가 슬며시 다가오더니 어깨를 툭툭 쳤습니다. 그가 스와힐리어로 나직이 몇 마디 말을 건넸습니다.
난 그게 욕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
바로 짐을 싸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으로의 출국은 예정된 일이니, 일주일 후에 출국하는 표 한 장을 예매했습니다. 팀에게는 한국으로 가는 표를 구하기가 힘들었다는 변명을 둘러댔습니다. 불편함을 감추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내게는 할 일이 있었거든요.
사흘 동안 꼬박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다행히 사흘 동안 팀원 중 그 누구도 얼굴 한 번 비치지 않았죠. 이제 난 그들의 일원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들이 냉정하게 대해 준 게 나로서는 오히려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던 사흘, 아기 사자는 나와 함께였습니다. 내 카메라의 모든 순간은 그였죠. 사흘 동안 나는 녹화본을 돌리고, 또 돌려 보며 자연이 선사한 귀중한 그의 시간을 이야기로 엮었습니다. 이건 나의 마지막 도박이었습니다.
조각나 있던 영상들이 20분짜리 단편이 되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습니다. 사흘 만에 처음으로 맞는 깊은 밤이었습니다.
……
새벽 5시. 알람 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었습니다. 이미 한참 전에 깨어 있었습니다. 머릿속으로 리허설을 몇 번이나 마친 상태였죠.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노트북을 집어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감독의 방. 걸음마저 조심스러워지는 그 앞에 섰습니다. 복도에 문을 마주 보고 앉았죠.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습니다. 감독은 새벽마다 조깅을 했고, 그건 늘 5시가 조금 넘는 시각이었습니다.
“엄마야.”
정확히 새벽 5시 반. 감독은 운동복 차림으로 방을 나서다 벽에 딱 붙어 버렸습니다. 내가 있다는 사실에 놀란 건지, 결연하게 불타는 형체에 놀란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요.
“뭐야? 뭔데?”
거지꼴의 행색이 나라는 걸 깨닫고 감독은 헛기침을 했습니다. 괜시리 바지춤을 매만지며 손바닥에 한가득 찬 땀을 은근히 닦아냈죠.
“아, 오늘 서울 가나?”
내가 답이 없자 감독은 민망한지 다시 말을 걸었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잠깐 저랑 얘기 좀 하시죠.”
왜..왜? 감독이 더듬더듬 물었습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죠. 우리의 감독은 작고 연약한 사내입니다. 작고 깡마른 체격에 얇고 길쭉한 눈매. 강단 있어 보이지만 감성적이고 겁도 많습니다. 당시에 내가 그걸 알 리는 없었지만요. 거구인 젊은 혈기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걸 보며 아마 그의 머릿속에선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을 겁니다.
“꼭 보여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난 감독의 팔목을 붙들었습니다. 저 딴에는 부탁을 한답시고 매달린 거지만, 감독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나의 가벼운 손길에도 그는 화들짝 놀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죠.
“무슨 일인지 먼저 얘기부터 해 봐.”
감독은 내 손아귀에서 팔을 빼냈습니다. 그의 긴급한 발재간에 나무판자들이 삐그덕 삐그덕 요란스러운 소리를 냈습니다.
“꼭 보여 드리고 싶은 영상이 있습니다. 지난 사흘간 제가 촬영한 영상의 편집본인데, 떠나기 전에 감독님께 보여 드리지 않으면 후회가 막심할 것 같아 꼭두새벽부터 기다렸습니다.”
감독님께서 한 번 봐주셔야 비로소 편해질 수 있을 거 같다고. 후련한 마음으로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난 몇 번이고 되풀이해 말했습니다. 감독은 애꿎은 팔꿈치만 연신 긁어대다 마지못해 답했습니다.
“알았어, 일단 틀어나 봐.”
컴퓨터를 열고 영상을 틀었습니다. 사흘간 매달렸던 아기 사자의 영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십 분 남짓한 시간 속에 감독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날카로운 눈매로 영상을 매섭게 노려보기만 했죠. 그가 영상을 멈춰 세운 건 단 한 번. 아기 사자가 홀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을 맞이하는 장면에서였습니다.
“아가 얼굴에 핏자국이 있네. 밤이 격렬했나 보지?”
난 답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마른 입술만 다셨습니다. 그날 밤 아기 사자와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요. 감독은 다행히 내 답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나레이션이 필요해. 그렇게 중얼거렸을 뿐이죠.
마침내 나타난 검은 화면. 나는 초조하게 감독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감독은 팔짱을 낀 채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노트북을 천천히 닫으며 말했습니다. 탁. 노트북이 반으로 접혔습니다. 감독은 미동도 없이 서 있었습니다. 턱을 괸 채 복도 바닥만 노려보고 있었죠.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매우 사납게요.
“들짐승이 가득한 밤이었지만, 아기 사자는 하룻밤을 무사히 보낸다. 무리에서 버려진 아기 사자가 다시 무리로 돌아간다. 이제 그는 자신의 몫을 요구할 수 있는 사자가 되어 있다. 사바나의 야생은 잔혹하지만, 또 한 편으론 이상하리만치 관대하다.”
감독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중얼거렸습니다. 혼자서 조용히 궁리하던 그가 나를 흘긋 쳐다보았습니다.
“아기 예정일이 언제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조금 머뭇거렸습니다만,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다음 달 중순입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답했죠.
“그럼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나? 최대한 빨리 돌아온다면 말이야.”
네? 되물었습니다.
“빨리 돌아온다면야... 아이는 제가 낳는 게 아니니... 다음 달 말...”
감독은 내 답을 끝까지 듣지 않았습니다.
“2달 있다가 돌아와. 그때쯤이면 우리 캠프 움직일 거니까 새로운 캠프 위치는 샐리한테서 전달받고. 누가 물어보면 내가 콜해서 왔다고 해. 됐지?”
감독은 방문을 닫고서는 내 곁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복도를 걸으며 팔을 쭉 뻗어 스트레칭을 했죠. 아으. 아침부터 일했더니 피곤하구만. 감독이 구시렁대는 소리가 점차 희미해졌습니다. 나무 바닥을 타박타박 밟는, 그의 가벼운 발자국 소리도요.
실없이 웃음이 나왔습니다. 울컥울컥 터지는 웃음. 두텁고 커다란 손으로 입을 부여잡았지만,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을 길은 없었습니다.
우하하하하하. 우하하하하하.
방에 되돌아올 때까지 난 미친놈처럼 웃어댔습니다. 복도를 가로질러 방문을 열 때까지도. 노트북을 책상 위에 집어 던지고 이불에 몸을 파묻은 때까지도. 웃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거친 숨을 헐떡대면서도, 격렬한 근육통에 배를 감싸 안으면서도, 나는 웃고. 웃고. 또 웃었습니다. 그건 아주 오래도록 멈추지 않는 웃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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