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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May 06. 2023

꿈 조각들이 숨 쉬는 책방

유기 동물을 품은 책방, 정글핌피(Junglepimfy)


독립출간 작가의 내 책 찾아 떠나는 책방 탐험기. 그 첫 번째 종착지 '정글핌피(Junglepimfy)'



세상은 수많은 꿈들로 이루어져 있다. 꿈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또 새로이 생겨난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삶에 스며든 꿈, 우리는 대부분 하나 이상의 꿈을 품고 산다.


세상에 흩뿌려진 나의 책들과 재회하는 것은 내가 품은 여러 꿈 중 하나였다. 고작 책을 하나밖에 내지 않았고, 그마저도 독립출간이지만. 책이 하나도 없었던 사람에게 한 권의 책이란 꽤 소중한 존재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났다. 나의 첫 번째 책 <나의 작은 아기 사자>를 만나러. 세상에 나서게 된 같은 모습의 책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     


큰 포부였지만, 사실은 말도 못하게 떨렸다. 걱정에 며칠 밤을 뒤척일 정도였다. 나는 사람이 어려운 사람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조차도 해야 할 말을 못다 할 때가 많다. (아, 물론 가족 제외) 그래서 낯선 사람을 끊임없이 만나야 하는 이 여행은 내게 결코 쉬운 선택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에게 창작물이란 자식 같은 존재다. 자식을 볼 수 있다면 부모가 뭔들 못하겠는가. 아마 첫 책이라서 더 애착이 깊었을 수도 있다. 첫 자식에게 유독 더 마음이 가듯이. 그래서 두렵더라도 한 발자국 내어 보기로 했다.      



처음으로 방문했던 서점은 서울시 관악구 보라매동에 있는 ‘정글핌피’다. 당곡역 1번 출구에서 도보 8분 거리에 있는 작은 책방. 원래 계획대로라면 첫 번째로 들리는 서점은 내 첫 책의 첫 번째로 구매해 준 곳이어야 했다. 첫 책의 첫 번째 구매자. 난 그게 ‘책을 찾아 나서는 여행’의 도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들의 세계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이 더러 간섭한다. 나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었고, 그래서 정글핌피는 첫 여행지로 낙점되었다. 그리고 난 이 선택에 대해서도 후회하지 않는다. 반대로 정글핌피 방문으로 여행의 포문을 열어서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한다.      


‘정글핌피’는 여러 역할을 해내고 있는 서점이었다. 동물 관련 책을 판매하는 책방이자, 굿즈 쇼룸, 카페와 임시 보호 상담소까지. 다재다능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책방은, 서점보다는 ‘복합 공간’에 더 가깝다. 실제로 정글핌피 설명란에도 ‘핌피바이러스의 플래그십스토어’라고 적혀 있으며, ‘임시보호의 중요성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한다.     


유기 동물 관련 문구들, 책자들이 책방 곳곳에 있었다


그렇다면 핌피바이러스(Pimfyvirus)란 무엇인가. 핌피바이러스는 소셜벤처 기업으로, 유기 동물 보호 시스템의 체계화 및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국내 최초 유기 동물 임시 보호 플랫폼을 운영 중이며, 정기적으로 봉사활동 및 동물 관련 행사들을 진행하고 있다.      


그들의 이러한 활동은 이름에서부터 잘 드러나는데, 먼저 핌피(Pimfy)는 ‘Paw in my front yard(내 집 앞마당의 발바닥)’이라는 뜻이다. 핌피바이러스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핌피(Please in my front yard) 현상에서 따 온 말이라고 한다. 유익한 시설을 자신의 지역에 유치하기 위해 ‘제발 내 앞마당에 만들어 달라!(Please in my front yard!)’라고 외치는 지역 이기주의를 한 끗 차이로 비틀어 이타주의를 실현한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에게 내 집 앞마당을 내어주고, 말랑한 발바닥들을 기꺼이 들이겠다는 의지의 표현. 핌피바이러스는 이러한 ‘핌피’ 정신을 바이러스처럼 세상에 전파하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이다. 유기 동물의 임시 보호에 앞장서겠다는 정신이 이름에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정글핌피는 핌피바이러스의 이런 테마를 그대로 담은 공간이었다. 유기 동물의 임시 보호를 돕는다는 플랫폼의 성격은 책방 구석구석에 깃들어 있었다. 동물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인 만큼,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했고, 오가는 산책 강아지들은 언제든지 환영받았다. 눈길 닿는 곳곳에는 임시 보호 동물들의 입양 관련 안내 문구들이나 유기 동물 관련 책자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책과 소품의 주인공은 모두 동물들이었다. 정글핌피에서 ‘핌피바이러스’는 어디에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책방만의 장르 구분법이었다. 정글핌피에서는 모든 숨 쉬는 것들이 하나의 고유한 장르가 되었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비롯한 동물들, 식물과 ‘월든’, 펫로스와 채식까지. 생명과 관련된 주제들은 하나의 장르로 대우받았다. 아기자기한 소품들만큼이나, 참으로 몽글몽글해졌던 분류법이었다.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이 담뿍 묻어 나는 표지들은 그 자체로 책방의 성격을 잘 보여주었다. 더불어 정글핌피의 수익금 또한 유기 동물들을 돕는 데 대부분 사용된다고 하니, 공간과 사업구조를 모두 동물들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하나의 사람으로서, 동물들의 이러한 점령이 참으로 바람직하다고 느껴졌다.     



새로운 책의 분류법 속에서, 나의 책, <나의 작은 아기 사자>는 ‘세상은 넓고, 동물은 많다!’ 카테고리에 소속되어 있었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쬐끄만 책은 나름대로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나름대로 우스우면서도 대견했다. 내가 만든 책이 하나의 상품이 되다니. 나름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지만, 그래도 전문가의 숨결을 불어 넣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서 있는 모습을 보자니 제법 책의 태가 나서 더 재미났다. 유치원에 간 자식의 첫 공개 수업을 참석한 느낌이랄까.      


그리고 나의 책은 나름대로 정글핌피라는 공간의 성격과도 잘 어우러졌다. <나의 작은 아기 사자>는 무리에서 낙오된 아기 사자와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으려고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기를 하는 다큐멘터리 촬영기사의 하룻밤 이야기다.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생명의 성장기는, 길을 잃은 동물들에게 다시 가족의 연을 맺어 주는 ‘정글핌피’라는 책방의 성격과 어울렸다. 다행이었다. 다시 재회한 나의 책은 생각보다 자리를 잘 찾아간 것 같았다.      


"정글핌피" 책방에서 재회한 나의 책, <나의 작은 아기 사자>


오랜만에 만난 책에게 나는 작은 선물을 안겨 주었다. 미리 만들어 두었던 나의 명함. 책을 만날 때마다 하나씩 붙여 주겠다고 결심하며 만든 표식이었다. 그건 ‘다시 만난 네가 너무 기특해.’라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했다.     


책에 명함을 붙이기 전, 나는 책방지기님께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허락과 함께 의외의 제안을 받았다. 책에 서명해 줄 수 있냐는 것. (사인이라는 말은 차마 부끄러워서 못 쓰겠다.) 그 제안을 받자마자 나는 ‘오마나 세상에 나에게 이런 일이 벌써부터?!’라며 펄쩍 뛰었다. 물론, 속으로. 어쩌면 다른 평행우주에서는 정말로 펄쩍 뛰어 일어나다가 근처 어딘가에 머리를 부닥쳤을 수도 있겠지만. 이 세계의 나는 땅굴 밑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소심쟁이라 놀라서 벌떡 일어나지는 않았고, 다만 발가락 끝만 조금 꼼지락댔다.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게 다행인 건 또 처음이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초면에 정말 크나큰 실례를 범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책에 서명하고 주문한 음료도 쭉쭉 들이켰다


제법 진지하게 서명을 하고, 문구를 남겼다. 여기서 우스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난 진작부터 ‘서명(=사인)’이 있었다. 만들려고 해서 만들었던 건 아니라고 겸손하게 말하고 싶지만, 사실 미리 만들어 두었다. 왜 만들었냐고 하면, 나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했나 보지, 뭐. 어쨌든 나의 철저한 대비(?) 덕에 전혀 허둥대지 않고 차분하게 서명을 마쳤다. 앞 장에 명함도 예쁘게 붙여 두고, 멋들어진 문장도 써 봤다. 마치 베스트셀러 작가라도 된 것처럼. 유명 작가 놀이는 제법 괜찮았다. 더불어 당시 날 보고 있던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도 너무 좋았다. (사실 날 보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책에 첫 서명을 한 기억은 절대 흑역사로 남지 않을 테니까.     


앞으로 책에 얼마나 더 서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남긴 서명은 내게 꽤 큰 의미로 다가왔다. 미리 만들어 두었던 서명이 무안하지 않게 제안해 주신 책방지기님께도 깊은 감사를 표한다. 사실 따뜻한 공간에 비치될 책에 서명을 할 수 있어 오히려 내가 영광이었다.     

 


내 손을 떠나간 책과 첫 번째로 재회한 곳, ‘정글핌피’. 그곳에서 나의 책은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며 한구석에서 머물러 있었다. 동물들이 새로운 가족을 찾을 때까지 잠시 임시 보호 가정에 머무는 것처럼, 책방 한구석을 지키며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막 걸음마를 뗀 작은 책이 지내기에 ‘정글핌피’는 꽤 괜찮은 곳이었다. 마음 놓고 머물 수 있는 따뜻한 임시 거처였다.     


그리고 나의 책이 주인을 찾길 바라는 만큼, 눈에 밟히는 존재들이 있었다. 사진으로 만났던 길 잃은 동물들, 강아지와 고양이, 그리고 더 많은 이름들. 그들은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린 채, 사진으로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만으로도 ‘정글핌피’라는 공간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고 또 무한했다. 모든 책이 저마다의 책꽂이가 필요하듯, 모든 존재에게는 가족의 자리가 필요하다. 유기 동물들은 오늘도 임시로 머물 가정과 거처를 기다리고 있다. ‘핌피바이러스’와 ‘정글핌피’의 메시지가 더 많은 이들에게 퍼져, 사진으로 만났던 수많은 꿈들의 반짝임이 오래도록 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글핌피 Junglepimfy

Instagram  @junglepimfy


핌피바이러스 Pimfyvirus

Instagram  @pimfyvirus




그달 모나 Monah the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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