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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May 20. 2023

내 책이 사라지지 않을 이유가 생겼다

낯선 책들을 소개합니다, 백운호수도서관

독립출간 작가 의 내 책 찾아 떠나는 책방 탐험기 두 번째 종착지, '백운호수도서관(Baek-woon Lake Library)'



도서관에 책이 소장되는 일은 유명 작가이거나, 적어도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책이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내고 나서야 알았다. 생각지도 못한 기적은 예상치 못한 때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나는 책이 입고된 곳들의 목록을 살펴보다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꽤 놀랐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책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이유가 생겼다.’라고. 도서관의 책들은 적어도 상품성이 없다고 반품되거나, 악성 재고가 되어 하루아침에 전량 폐기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독립 출간한 익명의 책이 어느 도서관의 일원이 되다니. 독립 출간한 작가로서 자축해 마땅한 일이었다.      


하지만 색다른 경험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또 다른 예상치 못한 일이 줄지어 이어졌다. 영상 촬영 허가를 받으러 도서관에 전화를 했을 때의 일이었다. 내 책이 입고된 곳을 한 곳씩 방문하며 영상으로 담고 있다는 사실을 도서관 측에 설명하던 중, 나는 내 책이 ‘전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 저희 전시에 대해서 알고 전화하신 게 아니셨어요?”



전화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올해 3월부터 내 책이 도서관에 전시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독립출간’이라는 주제 아래 소개할 만한 책들을 도서관 한편에서 전시하고 있다고. 순간 머리에서 뎅하는 종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전시라니. 익명의 독립출간 작가에게 그런 기회도 생길 수 있는 거였나! 독립출간이라는 영역에 대한 나의 무지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긴, 밑도 끝도 없이 일단 책부터 출간하고 봤으니. 많은 것을 모르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도서관 측으로부터 이야기를 전달받자마자 급작스럽게 목표가 생겼다. 전시가 끝나기 전에 전시되고 있는 내 책을 두 눈으로 봐야겠다는 것. 부랴부랴 도서관 방문 계획을 세웠다. 도서관에 전화를 한 건 4월 중순쯤이었고, 전시는 4월 말에 끝난다고 한지라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당장 다음 주에 방문하겠다고 약속하고 급하게 짐을 싸서 달려갔다.      

  


오늘의 종착지, 내 책을 품은 도서관은 경기도 의왕시 학의동에 있는, ‘백운호수도서관’이다. 의왕시에서 10번째로 생겼다고 공지된 백운호수도서관은 (의왕시 공식블로그 참조), 백운커뮤니티센터 4층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2022년 5월에 개관한 도서관답게 세련되고 깔끔했으며, 도서관보다는 ‘모던 사랑방’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익히 알고 있던 도서관의 정석. 나이대별로 구분된 자료실과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있는 열람실은 백운호수도서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도서관은 로비, 일반자료실, 어린이 자료실. 총 세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구획별로 단절된 기존 도서관들과 달리, 이곳의 공간들은 서로 열려 있고, 연결되어 있었다. 열람실과 자료실, 어린이 공간이 혼재한 곳에서 누구든지 자유롭게 책을 읽고 휴식할 수 있으며 동시에 자신의 일에도 몰두할 수 있었다. 커뮤니티센터 안에 있는 도서관답게 ‘공동체’라는 정체성과 특성을 잘 담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공간은 전화로도 미리 설명을 들었던 ‘책 전시’였다. 미리 찾아보고 가긴 했지만,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도서관의 흔한 전시들처럼 한쪽 구석에 나열된 조그마한 공간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책 전시 공간, ‘북 큐레이션’ 구획은 도서관 입구에서부터 자료 열람실까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소개하는 일이 드문 건 아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책을 소개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곳은 처음이었다. 총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던 공간은 각각 새로 입고된 책, 기간별 주제에 맞는 전시를 선보이고 있었는데, 대형 서점이나 작은 책방이 남부럽지 않은 공간이었다. 책 밑에 붙여진 작은 메모들, 책을 소개하는 문구들도 도서관보다는 이색 서점에서 찾아볼 법한 모습이었다.     


촬영차 방문했을 때, 도서관 관계자분께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 바에 따르면 백운호수도서관은 한두 달에 한 번씩 주제를 바꾸어 가며 책 전시를 진행한다고 했다. 주제는 시기와 이슈에 따라 정해지는데, 새해에는 새로운 시작이나 결심을 응원하는 책들을 소개하며, 봄에는 새싹처럼 움트기 시작하는 창작자들의 책들을 알리는 식이다. 2023년 맨부커상 최종 후보가 발표된 현재는 천명관 작가님의 작품들을 전시할 계획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도서관에서 전시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지만 명확했다. 독자들에게 ‘여러 책들을 탐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는 것’. 매번 읽던 책들, 읽던 주제들에서 벗어나 낯선 세계를 살펴볼 기회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두 달에 한 번씩 주제를 바꾸어 가며 정기 전시를 진행해, 여태 경험하지 못하거나 알지 못했던 책들에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는 자리를 열어 주고 싶었다고.     


난 그 설명이 마음에 몹시 와닿았다. 도서관을 한 번이라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그곳이 ‘책쟁이’들의 천국이자 동시에 전국(全局, 전쟁터 아니고 여러 국면, 여러 정보를 한꺼번에 흡수할 수 있다는 의미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많고, 많고, 또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늘어서 있다는 말이다. 도서관은 말 그대로 무한한 선택의 늪이다. 모든 책을 선택할 수 있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또 없다. 책이 빼곡하게 꼽힌 서가에서 혼란에 빠진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낯선 주제의 책을 읽고 싶어도, 색다른 시도를 하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내밀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 좋은 책이라는 건 알겠는데, 뭐부터 읽어야 하는 거지?’라며 머리를 부여잡던 우리는 결국 늘 가던 곳으로 회귀하게 된다. 또 조금 슬픈 얘기지만, 몇몇 이들은 책장 입구에 붙어 있는 서가분류표의 주제를 보고 들어온 모습 그대로 후진해서 빠져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은연중에 이루어지는 책 편식은 비좁은 식견의 바보를 잉태하는 결과로 이어지는데, 이걸 왜 이렇게 잘 아냐면. 그게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빠둠빠두비두바 ♪♬)      


그래서 안다. 소위 ‘떠먹여 주는’ 책 소개가 얼마나 중요하고, 또 가치 있는지를. 정기적으로 주제가 바꿔 가며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들을 알려주는 게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일인지를. 그렇기 때문에 한두 달에 한 번씩 모습을 바꾸는 전시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를 위해 특별히 공간까지 마련해 놓았다는 사실도.      



하지만 역시 가장 좋았던 건 전시된 책들 속에 ‘내 책’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 그것도 가장 중앙 전시 공간 중 하나였다는 점. 너무 유치한 이유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창작물을 아껴주는 곳을 좋아하지 않을 창작자가 있을까. 난 과감하게 없다는 데 한 표를 내건다.     


중앙 전시를 둘러본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곧 내 책과 마주했다. ‘새싹처럼 작지만 강한 독립출간 책’이라는 테마의 전시의 한 구석. 수많은 독립출간 책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저도 ‘책’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얼굴을 내보이고 있었다. 다시 만난 나의 책은 예전보다 살짝 손때가 묻어 있었다. 갓 제본이 끝난 모습만을 기억했던 터라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꼬질해진 책의 모습이 조금은 낯설었다.     


난 그 낯섦이 좋았다. 손때가 묻었다는 건 누군가에게 읽힌 기억이 있다는 것. 그건 책이 자신의 역할을 해 내고 있다는 증거였다. 책을 만든 사람으로서 책이 제구실을 해 내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한 것만큼 기쁜 일은 없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였다. 기뻐하는 것. 도서관에 구비된 책이니 전시를 단순히 ‘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책들과 다시 조우할 때 관례처럼 이루어지는 ‘명함 붙이기’도 당연히 할 수 없을 거라 여겼다.      


내 생각은 당연히 적중했다. 규칙과 규율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고, 일개 독립출간 작가에게 특별한 권한이 주어질 리는 없었다. 그래서 고요한 도서관 공기 속에서 명함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로 분위기에 묻어 들어갔다. 하지만 일단 조용하면 왠지 떡을 주고 싶다고 했던가. (혹은 요상한 놈에게 떡을 던져주면 비로소 조용해진다는 말이었던가.) 책을 눈으로 보고 얌전히 돌아서는 나를 사서 분께서 잡아 주셨다. (아니 이런 행복할 데가.) 그리고 무려 책 앞면에 서명을 요청해 주셨다. 두 번 연속 서명 당첨이라니. 처음으로 책을 낸 무명의 누군가에게 벌어질 수 있는 최고의 행운이 아닐까 한다. 이번 서명도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며, 겉으로는 담담하게 손가락을 놀렸다.      



도서관을 나서기 전, 잠시 한 구석에서 시간을 보내며 필사의 시간을 가졌다. 당연히 내 책은 아니고, 전시된 책 중 가장 손길이 가는 책으로. 매번 서점을 들를 때마다 잠시 시간을 내어 책을 읽긴 하는데, 별다를 것 없는 이 시간을 굳이 글로 쓰는 이유는 백운호수도서관에 마련된 ‘체험’ 하나를 기록하고 싶어서다.      


백운호수도서관에는 ‘필사 용지’가 마련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본 400자 빨간 줄 원고지. 심지어 필사를 마친 종이를 가져오면 게시판에 걸어 주는, 소소한 이벤트도 함께였다. 필사 용지를 구비해 두는 도서관이 이곳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필사 용지를 마주하니 왠지 좋은 문장을 하나 써 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전시된 책들 중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이 땅에서 사라진 동물들을 세세히 기록해 놓은 책 <사라진 동물들 찾아서>. 책의 한 페이지를 받아 적으며 나는 문득 이 문장들이 도서관이라는 공간과 어쩐지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했다. 사라진 동물들을 문자라는 틀에 넣어 보존한 책처럼, 도서관은 세상에서 (혹은 시장에서) 사라진 책들을 꾸준하게 보존하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학술적, 기능적 가치를 제한 동물들의 고유한 이야기를 기록한 저자의 시선처럼, 도서관에서만큼은 책은 책 그 자체로 존재감을 가진다. 도서관에서 책은 ‘책’ 그 이상일 필요도, 그 이하일 필요도 없다.     



책은 여러 이름을 갖는다. 정보의 매개체이자 이야기의 그릇이며, 동시에 값어치를 가진 상품이기도 하다. 가끔은 예쁜 표지를 차려입은 디자인 소품일 때도 있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책은 오직 ‘책’일 뿐이다. 각자의 고유한 시간을 머금은, 개성 넘치는 존재들. 아무런 부가적인 요소가 없어도, 이미 책이라는 사실만으로 한 자리를 차지할 이유가 있는 존재들. 책이 온전히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공간. 그곳에 내 책이 있다는 건 참으로 가슴 뿌듯한 일이었다.     


도서관을 나서며 소소한 소망이 생겼다. 내 책이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하며, 나보다 더 넓고 깊은 식견을 가진 멋진 책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수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길목의 한복판에서 작가보다 더 잘 나가는 책이 만들어지는, ‘청출어람의 기적’이 일어나길 자그맣게 바라본다.



백운호수도서관 Baek-woon Lake Library




그달 모나 Monah the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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