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서점, 동반북스
그날은 비가 잔뜩 왔다. 여행에는 언제나 변수가 따르는 법. 여행에서 빈번하게 출몰하는 변수인 ‘날씨’는 책방 여행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나의 길목을 막았다. 밤새 고민했다. 장대비같이 내리는 굵은 물줄기를 뚫고 가야 할지 혹은 날씨라는 좋은 핑계로 하루 더 집안을 뒹굴러도 될지. 아침 해가 뜨는 순간까지도 답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모든 고민이 그렇듯, 사실 답은 진작에 정해져 있었다. 나는 정해진 미래를 다만 회피하고 있었을 뿐이다. 방수도 안 되는 카메라를 가지고 칙칙한 풍경을 애써 찍으려고 집을 나서는 건 책방지기님께도, 영상을 만드는 나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판단이었다. 보이지 않는 아침 해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끈질겼던 내적 갈등을 마무리했다. 휴대폰을 들어 책방지기님께 연락했다. (촬영 허락을 받기 위해 나는 책방에 방문하기 전 미리 연락을 하고, 책방지기님의 요청이 있으면 촬영 날짜를 따로 잡기도 한다.)
“비가 너무 많이 오네요. 혹시 내일 방문해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바람까지 불어 참 얄궂은 날씨네요.”
얄궂다는 단어는 당시 내 심경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일면식도 없는 나의 마음을 어쩌면 그렇게 단박에 읽으신 건지. 지척에 계신 책방지기님께 감사하면서도 머쓱했다. 안도하면서도 우를 범한 건 아닌지 걱정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약속을 취소한 거니까. 마음 한쪽이 괜시리 불편했다.
오후쯤 되니, 오전부터 피어났던 불편함은 어느새 간절함이 되어 있었다. 오후 느지막하게 비가 그치자 간절함은 더욱 커졌다. ‘아까 출발했으면 지금쯤 도착했을 텐데. 그럼 비가 안 왔겠네.’라는 생각과 그냥 갈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뒤따랐다. ‘비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촬영을 했을 텐데, 지금쯤 집에 돌아왔겠지. 참, 비만 아니었으면.’이라는 생각들이 맴돌았다. 그렇게 나는 하루종일, 시계를 보는 틈틈이 책방을 떠올렸다. 못 간 하루만큼 더 오래 마음속으로 간직하고 생각했다. 맑아진 다음 날 내딛는 발걸음이 유독 가벼웠던 건, 아마도 하루 동안 불어났던 묵직한 마음의 무게를 마침내 덜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오늘의 서점은 의정부시 가능동에 있는 ‘동반북스’다. 가능역 1번 출구에서 네 개의 중고등학교를 거쳐 10여 분 정도 걸어가다 보면 나타나는 작은 책방. 동반북스는 동물을 주제로 하는 서점이다. ‘동물과 더불어 사는(동반하는) 세상’을 꿈꾸며 이름도 ‘동반’북스라고 지으셨다고 하니, 책방지기님께서 얼마나 동물에 진심인지를 알 수 있다.
‘동물책을 취급하는 서점’답게 동반북스의 모든 면과 귀퉁이에는 동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간판은 물론, 벽에 걸린 그림들과 소품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책들까지. ‘동물’이라는 주제는 알차게 책방을 채우고 있었다. 특히나 책장에 끝없이 늘어선 책들은 폭넓은 범주의 ‘동물’을 다루고 있었다. 동물과 함께하는 일상을 다룬 소설이나 에세이, 잡지나 그림책들은 물론, 동물 양육 관련 실용서, 동물을 테마로 한 디자인 관련 예술 서적들과 동물의 권리와 복지를 함께 고민하는, 동물권과 동물법 관련 인문 교양서와 철학서까지. 책방은 장르와 분야, 종(?)과 영역에 한계를 두지 않았다. ‘동물책’은 생각 이상으로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하는 단어였다.
더불어 경탄했다. ‘동물’이라는 주제를 철저하게 지키면서도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으려는 책방지기님의 안목이 책장에서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소규모 책방은 책방지기의 입맛에 맞게 꾸며지는 독립되고도 사적인 공간이라, 서점을 구성하는 책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카페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취급하는 원두가 달라지고, 음식점 주인의 입맛에 따라 음식의 맛이 결정되는 것처럼. 책방지기도 자신의 선호도에 따라 책장을 꾸린다. 하지만 한쪽으로 흐르는 방향성은 언제나 그렇듯 장단점이 있다. 일관된 책의 구성은 책방만의 성격을 보여주는 좋은 장치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작은 책방의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반북스는 소규모 서점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다양한 책들을 취급했다. 독립출간물은 물론, 국내외 서적들과 소규모 서점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베스트셀러까지. 동물이라는 범위의 제약만 있을 뿐, ‘다양한 고객층을 위해 책을 판매하는 곳’이라는 ‘서점’이라는 공간의 정체성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
난 이걸 책방지기님의 ‘노련함’으로 해석하고 싶다. 실제로 동반북스는 올해로 꽉 채운 7년을 지나 8년 차에 접어드는 서점으로, 소규모 책방으로서는 오랜 시간 유지된 편에 속한다. 작은 책방에 치명적이라는 ‘마의 3년’을 두 번이나 넘기고도 건재하게 운영 중이니, 소규모 서점 중에서는 베테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책방에 도착하기 전까지 난 그 이유가 단순히 책방지기님의 굳은 의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긴 역사를 가진 서점답게 동반북스는 몇몇 지역 신문과 잡지, 블로그에서 소개되기도 했는데, 인터뷰와 기사의 한 꼭지에 늘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책방에 대한 책방지기님의 철학. 수익률이 높지 않음에도 ‘동네 책방’이라는 공간을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아 투잡, 쓰리잡을 병행하면서도 책방을 유지하려 하는 강건한 마음. 난 그 마음으로만 책방이 유지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동반북스가 그토록 오랜 세월 살아남은 데에는 단순한 ‘마음’ 이상의 것이 있었다. 분명 마음이 없다면 실현되지도 않았을 테지만, 마음뿐이었다면 결코 시도하지 못했을 노력들. 그러한 시도와 사건들이 모여 ‘동반북스’의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리고 서점의 책장은 그 다채로운 ‘노력’을 몹시도 잘 드러내 보이는 공간이었다.
다양한 책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책장을 시작으로, 책방지기님의 노력은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었다. 서점이 지나온 세월은 여러 흔적이 되어 벽과 선반 곳곳을 장식하고 있었는데, 대표적인 몇 가지를 언급해 보자면 펀딩 프로젝트, 지역 작가 홍보와 작가님들의 손 편지가 있다. 그리고 세 가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역시나 ‘동반’이다. 아니, 동반이 아닌 ‘동행’이다.
동반북스가 진행한 펀딩 프로젝트에는 포스터북, 패브릭 포스터와 천 가방 등이 있는데, 동물책 서점답게 역시나 동물이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동반북스의 펀딩 프로젝트에서 동물은 콘텐츠를 치장하는 ‘대상’, 그 이상이었다. 천 가방 프로젝트에서는 <동물 학대의 사회학> 책을 함께 펀딩했으며, 패브릭 포스터에서는 ‘길고양이 돌봄’ 관련 안내서를, 포스터북 펀딩에서는 ‘동물과 함께 살아간 인간들의 모습’을 첨가했다. 동반북스의 프로젝트에서 동물은 지구라는 공간에서 거주 중인 또 하나의 주체자였다. 어느 인터뷰에서 심선화 대표님(책방지기님)이 언급했던 것처럼 ‘동물의 권리와 복지까지 생각하려 하는’ 목표가 선명한 프로젝트들이었다. 동물과의 동행은 동반북스의 책뿐만 아니라 굿즈에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동반북스의 ‘동행’은 동물을 넘어 사람에게까지 이어졌다. 동반북스의 입구에는 의정부에 거주하시는 작가님들의 책들과 지역 잡지가 전시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쪽 벽면에는 책방에 입고된 책의 작가님들께서 보내 주신 손편지들이 깨알같이 장식되어 있었다. 물론, 혹자는 대수롭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다. 동네 책방이 지역 작가님들을 홍보하는 공간을 마련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며, 독립출간 작가들이 책방에 책을 보낼 때 손편지를 함께 보내는 게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러나 구태여 작은 공간을 쪼개어 책방 초입에 지역 작가님들의 책을 전시하는 공간을 만들고, 다른 목적으로 쓰여도 되는 벽을 비워 작가님들의 손편지를 붙여 놓는다는 건. 대상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선택이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면 별거 아닐 수도 있겠지만. 지역 커뮤니티와 공존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하고, 그걸 실제로 실천하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격이 있다. 품과 시간 대비 알아주는 사람도 많지 않고, 또 크게 자랑할 수도 없는 세밀한 작업들. 책방의 그런 작은 부분들을 보며 책방지기님께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뚜렷하게 알 수 있었다. 동반북스에서 ‘동행’하고픈 동물의 범주에는 분명 ‘인간’도 포함되어 있다. 기나긴 목록에는 사람과 사회도 언제나 함께다.
난 그 드러나지 않는 소소한 동행의 몸짓이 좋았다. 그리고 그보다 인상 깊었던 건, 공간 전체가 ‘동반’을 외치고 있음에도 굳이 그 사실을 내세우지 않았던 책방지기님. 책방을 구경하는 내내 팔 아프게 책방의 터줏대감 고양이 ‘고돌이’의 궁둥이를 투덕투덕 두드리고, 또 다른 고양이 터줏대감 ‘치돌이’의 칭얼거림에 한 번도 빠짐없이 응해 주면서도. 정작 내게는 고돌이가 사흘 동안 가출했다 이제야 돌아왔다며, 천방지축 고양이의 치기 어림에 대해 늘어놓았다. 나는 따뜻함을 배경으로 삼는, 그 묘한 무신경함이 좋았다. 동반북스에서 ‘동반’은, 이미 너무 짙게 배어 있어 감지되지 않는 공기의 냄새처럼, 대수롭지 않은 무언가였다.
(첨언을 좀 하자면, 책방에는 대략 한 시간 넘게 있었는데 궁디 팡팡은 서점에 있는 내내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책방지기님은 심지어 고돌이 추울까 봐 봄 날씨에도 기름보일러를 틀어 놓고 계셨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고돌이는 보일러 근처만 맴돌았다.)
자연스러운 편안함이 묻어나는 곳에 내 책이 있다는 사실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난 책방에 입고된 두 권의 책의 첫 페이지에 명함을 끼워 넣으며 이번 책들도 ‘참 좋은 곳에 당도했군.’이라고 조용히 생각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번만큼 내 책을 들여다보지 않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앞의 두 곳을 들를 때는 다른 곳을 촬영하고, 구경하면서도 시선의 반쪽은 늘 내 책이 있는 곳을 흘끔거렸는데. (그리고 그걸 너무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이번 방문에서 내 시선은 줄곧 내 책이 아닌 다른 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발견한 책이 그 유명하다는 ‘김종완 단상집’. (참고로 여기서의 ‘발견’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처럼, 이미 유명하고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걸 내가 뒤늦게 깨달았다는 의미다.) 의정부에 거주하시는 작가님들의 책을 전시해 둔 곳에서 집어 든 단상집은, 여러 책들 사이에서 독보적으로 눈에 띄었다. 작은 책과 마음에 콕 박히는 제목에 사로잡힌(?) 난 결국 세 권이나 집어 들었다.
(첨언2 :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독립출간 책을 냈음에도 독립 서적들에 문외한이다. 책방지기님의 설명이 없었더라면, 나는 그 책이 유명한 시리즈 출간집이라는 걸 아마 지금까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이 유명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음에도 가장 먼저 그 책에 손이 간 걸 보면, 왜 유명하게 되었는지는 짐작이 간다.)
돌아오는 길, 양손이 무거웠다. 한 손에는 책방지기님께서 쥐여주신 커피가 들려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김종완 단상집 세 권을 들고 있었다. 지하철에서는 커피를 삼키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단상짐에 담긴 짧지만 묵직한 글들은 집으로 가는 길의 좋은 동반자가 되었다.
집에 온 다음 날, 느지막이 깨달음이 찾아왔다. 나는 어느새 책방이라는 공간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었다. ‘내 책이 입고되었으니 찾아가 봐야지’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책방을 한 곳씩 거칠수록, 나는 어느덧 책방을 그 자체로서 순수하게 즐기고 있었다. 내 책에 대한 애착이 예전보다 사그라들었음에도, 나는 새롭게 변한 내 모습이 좋았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 변화하고 또 변형되겠지만, 적어도 책방에 대한 애정만큼은 오래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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