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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Jul 01. 2023

웃기지만 시시하지 않은 서점

그래서 더 대단한. 팩토리 공공공

독립출간 작가 의 내 책 찾아 떠나는 책방 탐험기  다섯 번째 종착지, '팩토리 공공공(Factory 000)'



정신없이 시작된 하루였다. 뒤집어 입은 티셔츠, 잘못 탄 버스, 거꾸로 본 지도. 모두 단 몇 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다. 결국 예상했던 것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목적지인 행궁동에 도착했다.     


다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 탓이다. 행궁동에 가기 전날, 나의 마음은 초행길을 걷는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행리단길이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SNS나 사진으로 많이 접하다 보니 방심이라도 한 걸까. 나는 예전보다 느슨한 마음가짐으로 지도를 확인했고, 결국 예상했던 것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행궁동 행리단길에 도착했다.   


막상 발을 디딘 행궁동은 낯설고 새로웠다. 구불구불한 미로처럼 뻗어난 길은 매 순간 혼란의 연속이었다. 실제의 행리단길은 사진 속의 단편적인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저 구경만 하면 되는. 잘 정돈된 화면 속 사진이 아니었다. 끝없이 펼쳐진 연속된 길의 미로 속에서 한동안 잊고 있던 방향치의 본능이 발동되었다. 예상보다 긴 시간을 걸었다. 본래 들어서려던 길목마저도 놓친 채 빙 돌아 걸으며, 나는 오래된 삶의 교훈을 다시금 마음에 새겼다. 많이 본다고, 많이 봤다고 잘 아는 게 아니다. 직접 경험할 때까지는 안다고 착각하지 말자.    

 


좀 돌아가긴 했어도, 거리를 헤매는 시간이 그리 나쁜 건 아니었다. 행리단길은 예술가의 거리다. 실제로 수원 시립 미술관이 바로 옆에 있기도 하고, 행궁동 벽화마을도 지척이며, 행리단길 입구에 ‘한옥 기술 전시관’도 멋들어지게 세워져 있다.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예술의 장소들이 집결되어 있다 보니, 행리단길의 길목 요소요소에는 구경할 거리가 한가득이다. 화랑과 쇼품삽은 물론, 식당과 카페, 가게들마저도 심미적인 욕구를 충족한다. 간판과 쇼윈도의 소품들, 단숨에 밀고 들어가는 문 하나까지도 신경 써서 디자인했다는 것이 한눈에 느껴지는, 그야말로 힙스러운 곳이었다.     


오늘의 서점은 이렇게 모두가 예술을 하는 거리 한복판에 있다.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 ‘행리단길’의 중앙부에는 예술가 뺨치는 서점, ‘팩토리 공공공’이 있다. 팩토리 공공공을 그냥 지나치기란 쉽지 않다. 원색인 노랑과 파랑의 색채 대비와 예사롭지 않은 책방의 마스코트 ‘팩공이’의 얼굴. 그 둘이 풍기는 조화롭고 요사스러운 기운은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다. 첫인상이 남긴 진한 궁금증에 이끌려, 2층의 책방을 향해 계단을 오르게 된다.

  


보폭을 넓혀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다 보면, 귀여운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계단이 많아서 죄송합니다. :)’ 죄송할 거 하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머리를 긁적이는 해맑은 얼굴에 웃음이 난다. 가파른 계단에 당황스러웠던 마음도 눈 녹듯이 사라진다. 하지만 계단참의 문구는 서점의 매력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팩토리 공공공에서 이 정도 익살은 간지럽지도 않다. 그만큼 서점은 공간 가득, 방문객 웃기기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


‘안녕하소!’를 삼창하는 레트로한 포스터와 신발을 막 신고 들어오라는 쬐끄만 손가락들. 팩토리 공공공은 입구부터 유쾌하다. 포스터와 그림, 장식과 책에서 흘러넘치는 경쾌한 색깔들은 글자가 전하는 유쾌함에 통쾌함을 더한다. 개성 넘치는 색의 조각들이 모이고 쌓여 서점만의 역동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팩토리 공공공은 세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입구 근처에는 업사이클링 제품과 책들이, 중앙부는 다량의 소품과 다량의 책들이 진열되어 있으며, 마지막은 제일 중요한 책방의 사무실이다. 길다란 복도처럼 늘어선 공간은 한 걸음을 디딜 때마다 구경할 것들 투성이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아무래도 서점의 입구부터 존재감을 뽐내는 환한 노란색의 ‘문짝 책방’. 문자 그대로 ‘문짝을 뜯어서 만든 책장(혹은 작은 책방)’이다. 공간을 구분 짓던 문을 책장으로 재활용할 생각을 하다니, 심상치 않은 재간과 아이디어다. 심지어 문으로 만든 책장은 책을 진열하기에 꽤 유용했다. 책이 모두 전면을 보고 있으니 자연스레 그 위에 놓인 책들에 시선이 갔기 때문. 책이 아닌 그림을 감상하는 마음으로 표지와 제목을 훑어보게 된다.      


그렇다고 다른 곳에 놓인 책들에 눈이 가지 않았단 얘기는 아니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다. 팩토리 공공공의 책들의 표지는 대부분 서점만큼 개성이 강하다. 특히 표지가 아름다운 그림책이 많아 겉면을 구경만 해도 눈이 즐겁다. 군데군데 유머러스한 제목들도 섞여 있어 표지만 감상해도 지루하지 않다. 그림책들 사이에는 진짜 그림도 섞여 있다. 전부 책방 인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작품들이다. 수채화와 일러스트, 패브릭 포스터와 수공예품들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몸을 돌릴 때마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작품들이 모습을 드러내 심심할 틈이 없다.      



팩토리 공공공의 또 다른 이름은 ‘소품샵’이다. 간판에서부터 ‘디자인 굿즈와 업사이클링 소품, 책 조금과 위트’를 판매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실제로도 책만큼이나 많은 디자인 굿즈들이 책 사이사이에 놓여 있다. 패브릭 제품들, 컵과 엽서, 디자인 뱃지와 악세사리, 책갈피와 스티커까지. 책방에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넘쳐났다.     


당연히 위트도 군데군데에서 판매 중이었다. (간판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뼈다귀 모양의 볼펜, 싯가에 판매 중인 생선 필통, 멕시코 아저씨한테서 뜯어 온 (것 같은) 수염, 손 시린 날 손 대신 쓰기 좋은 모형 손 (실제 손과는 크기 좀 다른 주의),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지니고 다니는 진짜 같은 고무 파리, 진짜 초3이 그린 스티커까지. 어른이들이 환장할 ‘위트’들이 곳곳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크고 작은 위트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인 건, 책방의 마스코트 ‘팩공이’다. (팩공이는 안 판다. 다른 위트들은 다 팔지만 팩공이는 비매품.) 서점의 대표 얼굴인 팩공이는 책방의 정체성이자 시작부터 함께한 개국공신이다. 본래는 황학동 가발 시장에서 가발을 전시하던 두상 마네킹이었지만, 책방지기님께서 한눈에 반해 책방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그만큼 팩공이는 매력 만점인 친구다. 단호한 그의 무표정은 하나도 안 웃긴데 동시에 이상하게 웃기다. 심지어 머리에는 무지개색 우산 모자까지 씌워 놓아서, 무표정한 얼굴과 대비되는 익살맞은 부조화에 저도 모르게 피식하게 된다. 괜히 위트를 파는 서점/소품샵의 마스코트가 아니다.      



하지만 팩토리 공공공이 마냥 웃기기만 한 곳은 아니다. 간판에 나열된 여러 판매 물품들처럼, 웃음은 팩토리 공공공을 설명하는 여러 수식어 중 하나이기 때문. 굳이 비유하자면 책방을 싸고 있는 얇은 포장재 같달까. 하지만 위트라는 가벼운 겉껍질은 책방을 조금만 꼼꼼히 둘러보다 보면 금세 벗겨져 나간다.     


팩토리 공공공에는 진중한 얼굴을 한 책들이 많다. 특히 예술과 인문학, 디자인 관련 책들이 그러했다. 가벼운 교양서부터 호크니와 세잔 등 예술가들의 생애를 담은 도록, 리오타르와 비타유와 같은 사상가들의 식견이 담긴 심도 있는 서적들까지. 웃음에 정성을 다하는 곳에서 발견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 책들이 책장 여러 곳에 꼽혀 있었다. 독립 서적들마저도 그러했다. 인권과 젠더 등의 사회 문제, 기후 위기와 멸종 위기 동물 등 환경 문제를 다룬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책방의 이러한 성격은 소품들에도 녹아들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업사이클링 및 친환경 제품들. 공간을 가로막던 문을 폐기하는 대신, 문짝 책방으로 탈바꿈시킨 서점답게 책방의 요소요소에서는 환경을 고려하는 물건들이 눈에 띄었다. 악세사리를 판매하는 곳에는 씨글라스로 만든 목걸이와 귀걸이들이 있었으며, 책방 입구에는 친환경 제품들만 모아서 판매하는 구역도 따로 있었다. 천연 수세미와 대나무 칫솔, 설거지바, 광목 주머니, 유리로 만든 빨대 등 환경을 생각하는 제품들은 종류도 다양했다.      



가벼움과 무거움, 양면의 매력을 간직한 서점에도 어김없이 나의 책들이 있었다. 여느 때처럼 나는 책방의 책들에 나의 명함을 부착했다. 책에 명함이 하나씩 붙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괜한 뿌듯함을 느꼈다. 팩토리 공공공은 온라인 서점 다음으로 가장 많은 수의 책이 입고된 곳이다. 그래서 책방에 도착하기 전부터 기대감을 품고 있었는데, 그 마음은 명함을 부착하며 만개했다. (정확히 말하면 명함이 부착되는 모습을 보며 만개했다. 명함은 당일 책방을 지키고 계시던 작가님께서 부착해 주셨다.) 주르륵 쌓여 있는 책을 한 권씩 헤치며 나는 책방에 감사했다. 그리고 동시에 궁금했다. 이 책의 무엇이 책방지기님의 마음을 설득한 것일까. 야생 다큐멘터리 촬영 기사의 불안정했던 하루. 비정규직 직장인의 일상과도 같은 그 날의 어디가 그토록 눈에 밟혔던 걸까. 묻고 싶은 마음은 한가득이었지만, 나는 결국 질문을 건네지 못했다. 입 안을 굴러다니던 그 질문을 책방 어딘가에 놔두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태 궁금하긴 하다. 좀 더 적극적으로 물을 걸 그랬나.)     


팩토리 공공공은 웃기지만 시시하지는 않은 곳이다. 재기발랄한 외관과 통통 튀는 색깔들로 치장하고 있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장난기 다분하지만 생각이 깊은 서점이 되는 일. 그건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깊고도 폭넓게 세상을 알아야 하고, 동시에 유머도 겸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팩토리 공공공은 그 난도 높은 일을 해내고 있었다. 반나절 나들이에 알맞은 명랑함과 주말의 해방감에 어울리는 위트, 함께 간 이들과 자연스레 나눌 수 있는 토론 주제들과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지식과 상념들까지. 이어 붙이기 어려운 조각들을 자연스레 연결하여 쾌활하고 건강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었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차이가 기분 좋은 균형감이 되는 곳. 팩토리 공공공은 흑백의 시공간마저도 색깔로 물들이는, 다채로운 매력으로 가득한 서점이었다.



팩토리 공공공 Factory 000

Instagram @factgong

※ 책방은 현재 영업하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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