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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Jun 17. 2023

사람을 좋아하는 고양이와 고양이를 닮은 책방지기가 있는

고양이, 로컬, 그리고 푸른 기둥의 책방. 생활방식

독립출간 작가 의 내 책 찾아 떠나는 책방 탐험기 네 번째 종착지, '생활방식(The Lifestyle)'



책방은 골목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책방이 골목을 사랑한 게 먼저인지, 골목이 책방을 품은 게 먼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책방의 자리는 언제나 골목길 어딘가다. 둘의 긴밀한 공식은 어쩌면 정당한 인과관계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삶의 이야기를 간직한 책방이 생활 터전 깊숙한 곳에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다채롭고 구구절절한 사연이 내려앉은 골목만큼 책방이 잘 어울리는 곳도 없을 테니까. 책방이 골목과 늘 함께인 건, 분명 두 공간의 짙은 유사성에서 기인한 것일 테다.     


서점을 소개하기에 앞서 골목에 대한 말을 먼저 꺼낸 이유는, 오늘의 서점이 유독 골목과 닮아 있어서다. 이름에서부터 골목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 ‘생활방식’은 평택에서 몇 곳 없는 동네 책방이자, ‘독립서점’이다. 하지만 골목길이 통로 외에 여러 역할을 하는 것처럼, ‘생활방식’도 여러 역할을 해낸다. 책방 외에도 달마다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동네 장터가 되며, 필사 모임과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 작가와의 만남 등이 진행되는 지역의 문화 공간이자, 동시에 ‘평택 최초의 로컬 매거진’ <계간 생활방식>을 발행하는 1인 잡지사가 되기도 한다. 여러 삶들이 녹아들어 있는 골목길처럼. 서점 ‘생활방식’에는 다양한 색감의 ‘생활방식’들이 겹겹이 포개어져 있다.     



서점의 정체성은 책방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시작된다. 평택시 평택동(신평동)에 자리를 잡은 책방 ‘생활방식’은 접근성이 좋은 곳이다. 평택역 1번 출구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하는, 번화가 한복판에 있는 서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변수가 있다. 책방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번화가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 조금 더 세세하게 풀어 보자면. 평택역 앞 큰 도로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병원(박애병원) 뒤편 길로 들어선 후, 길 끝의 약국(정문약국)에서 몸을 틀고, 고깃집(육풍)을 발견하면 곧 서점이 눈앞이다.      


건물 사잇길을 따라 걷는 시간. 그건 어쩌면 서점이 의도한 장치일지도 모른다. 도시의 생활 내가 묻어나는 길을 따라 걷는 경험. 책방을 찾으려 골목을 유심히 살피는 시간은, 책방 ‘생활방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서점에 다다르기 위해 좁은 거리를 훑다 보면 낯설었던 ‘평택’이라는 도시가 조금씩 눈에 익는다. 간판과 가게, 사람들의 분위기에 서서히 익숙해진다.      

     


평택의 풍경을 감상하며 발을 내딛다 보면 저만치 싱그러운 파란색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빛의 두 기둥은 서점 ‘생활방식’의 상징과도 같은 색깔이다. 환한 색감 사이로 들어서면, 알록달록한 색깔의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생활방식’은 독립서점이다. 말 그대로 ‘독립 서적’들을 주로 판매하는 서점이라는 뜻. 정제된 상품으로 만들어진 책이 아닌, 사람 냄새가 가득한 책들은 ‘생활방식’이라는 이름의 서점과 매우 잘 어울렸다. 매대에 진열된 책들의 군데군데에는 책방지기님의 메모가 붙어 있었다. 한 권 한 권 직접 읽고 적어 둔 짧은 소감문. 그건 누군가에게 생소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책들에 좀 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드는 통로였다.


책과 메모를 구경하고 있다 보면, 어느새 한 마리의 고양이가 슬며시 시야 안으로 들어와 앉는다. 검고 하얀 털, 빨간색 스카프를 두른 책방의 마스코트, 고양이 ‘어리’다. ‘복덩어리’라는 풀네임(?)을 가진 책방 고양이 어리는 손님 응대에 진심이다. 유능한 고양이 직원의 열렬하고 진심 어린 환대는 책방에 한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다리와 팔에 끝없이 머리를 부비고, 배를 보이며 뒹굴거리다 귀여운 목소리로 야옹. 어리는 평생 만난 어떠한 책방 점원보다도 능력이 출중했다. 책방에 들어서는 첫걸음부터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어리는 이미 최고의 능력치를 지닌 마스코트였다.      



어리의 천연덕스러운 애교는 사실 근거 있는 몸짓이다. 어리가 책방에 충실한 만큼, 책방도 어리에게 진심이기 때문이다. 책방 입구 앞, 책을 진열하기 가장 좋은 곳에 ‘복덩어리 히터 zone’을 마련해 놓았으며, 책장의 한편에는 ‘내 새끼 예쁜 거 보고 가세요’라는 팻말을 단 ‘어리 전용 사진집’ 구역도 있다. 그 밖에도 서점의 모든 곳은 어리의 침실이자, 숨숨집이자, 일광욕을 할 수 있는 쉼터이다. 하지만 책방의 ‘어리 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021년, 서점은 무려 어리를 주인공으로 하는 그림책을 냈다. 이름하여 ‘내 이름은 어리’. 평택의 청년공동체 ‘청년고리’의 5인 작가가 모여 출판한 그림책이다. (‘생활방식’의 책방지기님도 공동 작가 중 한 명이다.)     


책방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그림책은 2015년경에 태어난 고양이가 어떻게 2020년 책방에 들어와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를 그림과 글로 설명한다. 청년고리 작가들은 어리의 생애를 추적하기 위해 골목 상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골목을 걸어 다니며 정보를 수집했다고 한다. 책방이 들어서기 이전부터 골목의 거주민(?)이었던 고양이의 역사를 되짚다가 결국 어리가 태어난 지붕까지 찾아가셨다고. 한 마리 고양이의 생애를 기록하기 위해 다섯 명의 청년들이 발품과 대화품을 파는 건 흔치 않은 일이기도 하지만, 대상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이쯤 되면 어리의 구김살 없는 태도가 이해된다. 본디 사랑을 듬뿍 받고 지내는 이들은 (그게 사람이든 동물이든 곤충이든 식물이든) 티가 나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책방에는 어리만큼이나 사람에게 살가운 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책방지기님. 서점 ‘생활방식’의 책방지기님은 고양이 어리와 무척이나 닮았다. 자신이 선택한 공간과 그 공간 안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관심과 애정을 쏟는다는 점에서 둘은 서로를 거울처럼 빼닮았다. 굳이 다른 점을 한 가지 꼽자면, 어리가 선택한 공간은 서점과 근방의 골목이고, 책방지기님께서 선택한 공간은 ‘평택시’ 전체라는 점이다.     


평택시라는 ‘지역 공동체’는 책방 ‘생활방식’을 설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서점은 그만큼 ‘로컬’에 진심이기 때문. 어리를 담은 그림책의 후기에 ‘우리는 길고양이 어리와 어리를 아끼는 골목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라고 덧붙일 정도로 서점은 지역과 골목, 그리고 그곳을 채우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인다. (물론 이 문구는 책방지기님 혼자서 쓰신 건 아니고, 청년고리 5인 작가진의 공동 후기다.) 필사 모임, 글쓰기 모임, 독서 모임, 작가와의 만남 등 책방이 주도하는 지역 기반 문화 모임은 많고도 많지만, 그중 단연 대표가 되는 건 ‘평택 최초 로컬 잡지’ <계간 생활방식>이다.     



2022년 6월, 평택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로컬’ 잡지, <계간 생활방식>은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잡지를 손에 쥐어야만 알 수 있는 진짜 제목은, ‘영등포역에서 무궁화(열차) 타고 4,300원 내고 45분이면 갈 수 있는 생각보다 가까운, 평택 최초 로컬 매거진 계간 생활방식’이다. 이 재치 넘치는 문구는 사실 시작에 불과하다. <계간 생활방식>은 제목부터 내용까지, 평택에 대해 알리려고 단단히 작정한 잡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잡지에는 ‘평택’하면 흔히 떠오르는 것들. 신도시와 산업단지, 항구도시나 관광지에 대한 정보는 없다. (손가락을 튕겨서 금세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없다는 뜻이다.) 대신, 외부인은 쉽게 알 수 없는 평택의 이야기가 그 자리를 대체한다. 잡지는 팔 할의 인터뷰와 이 할의 편집장(책방지기님) 글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터뷰는 평택의 골목에 있는 작은 가게와 공방 주인들의 현재로 채워진다. 이밖에 세세한 지역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이를테면, 찾아가기 알맞은 맛집들과 평택에 사는 사람들의 진솔한 일상, 그리고 평택시 곳곳에 거주 중인 동물(그러니까 주로 고양이)과 식물에 대한 기록들이다. (아 물론, ‘생활방식’에 입고된 독립 서적 작가들의 이야기도 한 꼭지를 차지한다.) 이처럼 잡지는 표지부터 내용까지, 평택에 살지 않는 사람은 알 수 없는 진한 로컬의 감성으로 촘촘히 엮여 있다.     


<계간 생활방식>의 편집장님(책방지기님)의 이러한 로컬 사랑은 책방의 구석구석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책방의 초입에는 평택의 명동거리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한 ‘다시, 명동 1953’이라는 책자가 놓여 있었고, 카운터 근처에는 평택시 도서관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들이 정리되어 있기도 했다. (참고로 ‘생활방식’은 평택시 도서관과 협력 사업을 진행 중인, 몇 안 되는 지역 서점 중 하나다.) <계간 생활방식>의 편집장님, 그리고 책방지기님은 이렇듯 잡지 안과 밖에서 모두, 지역 공동체에 진심인 분이었다.     



책방 탐방을 마친 나의 양손은 어느새 꽤 묵직해져 있었다. 이번 책방에서는 무려 네 권의 책과 하나의 키링과 함께 집에 돌아왔다. ‘생활방식’ 계간지 두 권과 그림책 ‘내 이름은 어리’, 산문집 한 권과 수공예품 뽑기 기계에서 획득한 작은 열쇠고리까지. 책방의 넘쳐나는 콘텐츠들을 하나도 놓칠 수 없다는 듯, 나는 열정적으로 장바구니를 채웠다. 책방지기님은 수집 욕구 가득한 나의 장바구니를 하나씩 계산하고서, 마지막에 쿠폰을 하나 건네주셨다. 독립 서적의 표지와 소개 문구, 도장을 찍을 빈칸들이 인쇄된 길쭉한 종이. 그건 쿠폰보다 책갈피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종이였다. 책방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에 꼭 맞는 모양새였다.     


책방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나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여러 독립 서적들 속에서 다시 한번 나의 책과 마주했다. 언제나처럼 첫 페이지에 명함을 쥐여주며, 독립 서적이 가득한 곳에 도착한 그를 축하해 주었다. 고양이와 매일을 함께할 수 있는 그를 조금 부러워하기도 했다. 책과 가벼운 악수를 나누며 나는 이번에도 책이 꽤 적당한 곳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고양이와 그 고양이를 쏙 빼닮은 책방지기가 있는 서점. 자신만의 콘텐츠와 이야기로 성실하게 무장한 ‘생활방식’에는 여러 모습이 중첩되어 있다. 지역과 공동체, 독립 서적에 대한 깊은 애정과 약간의 사명감, 그리고 멈추지 않고 나아가려는 뚝심. 그들이 적절하게 혼합되어 ‘생활방식’이라는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옹골찬 하늘빛 매력으로 가득한 곳. 서점 ‘생활방식’은 자꾸만 돌아보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생활방식 The Lifestyle

Instagram @chorok_life

어리 (책방 고양이) Instagram @hello_im_u._.ri


모듬공방

책방에서 함께 운영 중인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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