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도 방송이 되나요?
2011년 6월,
예비 방송인이었던 나는 대구에 있는 한 방송국의 오디션을 보고 합격 소식을 들은 상태였다.
교육을 받던 중에 피디님께 갑작스러운 호출이 왔다.
그리고 '다음 노래 간주가 나갈 때 교통정보 하나를 방송하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헉!
시간이 없었다.
내가 방송해야 할 교통사고 제보가 정해지고 마이크 앞에 앉는 사이에
노래는 내 속도 모르고 간주까지 힘차게 내달리고 있었다.
헤드폰을 뒤집어쓴 나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숨을 고를 뿐이었다.
어느 순간 노래가 줄어드는 듯하더니 ON AIR의 빨간 램프가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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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AIR 램프가 켜지면서 내 정신의 램프는 꺼졌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20여 초의 시간 뒤, ON AIR 램프의 불이 꺼지면서 내 정신도 돌아왔다.
그 날의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지금의 나 자신이 아니라
SNS에 올려둔 나의 기록이다.
2011.6.2 쭈구리 일기
오늘 간주 중 제보 ㄷㄷ
감도 좋은 마이크 때문에 내 심장소리가 대구 전역에 생중계될까봐
되지도 않은 걱정을 하다니...... 초보티내지마......
선배님이 잘했다고 해주셔서 자신감 좀 충전하고 마무리ㅋㅋㅋ
이젠 방송국 밖에서 내 목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느낌이 이상했다.
정신없이 끝나버린 처음ㅋㅋ
분명히 조금만 지나면 온에어 빨간불은 내게 단지 '지금이 말해야 할 때'임을 알려주는 신호가 되겠지만
힘들 때마다 오늘의 이 느낌과 병아리 시절을 떠올릴 수 있기를....
그러나 내가 맨 마지막 줄에서 바랐던... 그런 일 따위는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방송을 처음 시작한 2011년부터 지금까지 매번 새로운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에
내 앞에 산적한 문제들부터 해결해야 하는 탓이었다.
실제로 방송을 해보니 방송인이 되는 것보다 더 어렵고 괴로운 것이
'내가 사랑하는 방송 일을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것이었다.
방송인들의 신분이 대부분 프리랜서인 점을 감안했을 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이유로 내가 사랑하는 방송을 중단해야 하는 위기를 맞는 경우가 많다.
프로그램의 성격과 내 이미지가 맞지 않아서, 내가 소화를 잘 못해서의 명확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프리랜서인 우리가 해고되는 데는 딱히 별 다른 이유가 필요 없다.
맡고 있던 코너가 없어졌는데 나한테 통보가 안되었던 경험,
이거 이번 주까지니까 다음 주부터 안 나와도 돼요~라는 간단한 통보로 일자리를 잃은 경험,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의 해고 소식을 알 때 까지도 나만 모르는 채로 방송을 소화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도 되는 신분이 프리랜서이기도 하니 말이다.
기본급이 없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수당을 지급받는 '건 BY 건'이 일상이다 보니
내 살길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하는 것이 많은 방송인들의 현실이고 프리랜서의 현실이다.
그렇지만 나는 프리랜서 방송인의 어려운 점과 부정적인 면을 한탄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프리랜서 방송인으로서 혼자서도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콘텐츠를 발굴하고 만들 수 있는 능력'이며,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과 접촉하는 일이 줄어들고 유튜브 콘텐츠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그 안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싶은 사람들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이 두 가지 능력이야 말로 21세기형 방송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방송인에게만 필요한 능력은 아니다. 예비 크리에이터들이나 각 분야 프리랜서로서 한계를 느끼는 이들, 혹은 나만의 콘텐츠를 가지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능력일 것이다.
지금까지 방송을 하며 기록한 것들과 나의 생각으로 엮는 이 글들이 조그만 조약돌이 되어서
나의 콘텐츠를 갖고 싶은 모든 이들의 마음에 물결로 다가선다면 더없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