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자기소개서, 스펙 쌓기로 대표되는 '취업 준비'라는 기간이 딱히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취업 준비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스펙이 없었기 때문이고, 나중에는 운이 좋아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 내 주변 사람들이 스펙이 없다, 스펙이 나쁘다 한들 나보다 심각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대학교 3학년 과정을 마친 내게 남은 것은 7가지의 아르바이트 경험과 3.0에 빛나는 학점... 이런 학벌에, 이런 학점으로는 취업 준비를 해도 승산이 없을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내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남들은 토익이다, 한자 자격증이다, 인턴 지원이다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나는 해야 할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회사에 어떤 포지션에 어울릴지를 알고 달려가는 것 같았다.
나는 잡학다식에 얕은 경험이 많아 뭐든 맡겨주면 정말 잘 해낼 자신은 있는데, 내가 뭘 내세우면서 어느 회사에, 어느 포지션에 그 자신감을 표출해야 할지 그야말로 "No Idea"였다. 나의 현실을 자각한 이후 패닉 상태가 4학년 초반부터 이어졌다. 다시 돌아가라고 해도 기꺼이 돌아갈, 대학 입학 후 3년을 재미나게 보낸 대가였나...
이건 누가 답을 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믿고 따를 선배들이 없었던 것도 있지만 결국은 내가 답을 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답을 찾아낼 수 없을 것 같았고, 생각이 너무 깊어져 우울감도 찾아왔다. 고민하던 나는 학교 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우선 여러 가지 심리 검사와 진로 적성검사 등 내가 할 수 있는 검사들을 모두 받고 결과를 기다렸다.
"하지나 씨는 우리나라 교육 체제에서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네요." 심리상담사는 '당신은 손으로 만지고, 직접 체험해보는 공부가 잘 맞는 사람이어서 암기로 많은 것들을 보여줘야 하는 학과 공부를 잘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완성본 예시도 없이 혼자 10000피스짜리 퍼즐을 힘겹게 맞추고 있는 것 같았는데... 처음으로 위로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펑펑 울고 상담실을 나오기 전, 마지막 그녀의 말에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지나씨는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도 잘 살 거예요."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사는 것은 노오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운도 적절하게 따라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내게 있어 가장 큰 운은 하고 싶은 일들에 따라줬던 운이 아니라 답이 없어서 힘들었던 그때, 나를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학교 안에 상담센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무료로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 너무 지쳐있던 내게 단비 같은 한마디를 건네준 상담사를 만날 수 있었던 것. 이 모든 운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지금의 나는 하고 싶었던 일, 방송을 하면서 잘할 수 있는 일, 코칭을 하고 있다.
내가 누군가의 운을 관장할 수는 없지만 방송과 코칭을 통해서 자기 탐색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 우연히 만난 상담사에게 아주 큰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나의 꿈도 매일 이루어지고 있다.
앞으로 나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특별히 '좌충우돌' 하는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싶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이라는 성은 특수성을 띤다. 나만 해도 공부와 취업, 연애, 결혼, 임신과 육아 같은 삶의 이벤트들에 대비할 것들이 남편보다 더 많았다.
세상 모든 문제에 대해 하나씩의 정답을 찾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정답이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할뿐더러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대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들여다보는 자기 탐색을 통해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