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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Aug 27. 2019

그때 내게 필요했던 것이 정말 '다이어트'였을까?

덕분에 코치가 되었지만...

# 한 연예인의 체중 감량 소식이 뉴스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업체를 통한 감량이라 좀 더 지켜봐야 안다', '돈도 받고 살도 빼고 너무 부럽다' 등등 내 주변에서도 그의 달라진 모습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리즈시절의 외모를 되찾았다는... 혹은 넘어섰다는 그의 모습에서는 정말 예전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사람들의 폭발적인 반응 이후 그가 개인 SNS에 남긴 글에서는 그의 설레는 마음도 엿볼 수 있었다.


"최고로 살쪘을 땐 아무도 못 만난 것 같아요."


그가 쓴 글 중 이 문장에서 시선이 멈췄다.

6년 전쯤, 내게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이 생각났던 것이다.




운이 좋아 그렇게 들어가기 힘들다는

서울의 공중파 방송국으로 적을 옮기고 갓 1년을 넘긴 시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2n년간 살았던 대구를 떠나 자리를 잡아야 하는 시점이었고, 직업인으로서는 올드루키라서 뽑혔지만 경험이 풍부하지 않아서 좌충우돌했던 때였다.


당시 회사 사정상 우리가 웬만한 제작자들의 몫을 했어야 했지만, 회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내 실력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상당했다.

또한 주말을 포함해 개인 일정이 거의 허락되지 않을 정도로 들쑥날쑥한 외부 취재가 일상이라, 시간 맞춰 밥을 먹거나 충분히 쉬는 것, 운동을 꿈꾸는 것도 어려웠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이렇게 장황하게 나의 변명을 하는 이유는

'그 당시의 내가 너무 가여워서'이다.


1년을 이렇게 보내는 동안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돌아볼 정도의 시간적, 심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 가장 컸다.

그렇게 입사 1년이 지나면서 일이 어느 정도 손에 익고, 서울 살이도 조금은 적응이 되어간다고 느꼈을 때

내 배 위에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샤워를 하면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데 오른쪽 배 위에 붉은 물집이 잡힌 것을 발견한 것이다.

단순히 피부병이겠거니 싶어서 며칠을 뒀다가, 궁금증이 도져서 피부 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피부과라도 들어가서 환부에 대해 물어보았다. 살펴보던 의사 선생님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언제부터 그랬냐, 아프지는 않냐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옆 방 선생님까지 호출해서 한참 상의를 한 끝에 내놓은 병명은 대상포진이었다. 통증은 없냐고, 입원을 할 수 있는 병원에서 입원을 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약을 받아 나왔다.


그 이후로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프리랜서라는 일의 특성상 내가 일을 쉬려면 내 일을 누군가에게 맡겨야 했는데 막내 주제에 아프다니...

물론 편하게 부탁할 수 있는 있는 선배들도 있었지만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상포진은 면역력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한번 떨어진 면역력은 바닥을 치고 올라올 줄을 몰랐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포진은 아물고 있었지만 내가 느낄 수 있는 다른 증상들이 나타났다.


일이 끝나면 들어와서 잠만 자고, 어쩌다 쉬는 날이 생겨도 잠만 잤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물 머금은 솜처럼 무거운 몸 때문에 아무런 의욕도 나지 않았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었지만 먹고 싶은 것이 생기면 폭식을 했다. 그리고 돈을 벌어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무거운 솜이불 같은 몸을 이끌고 일을 했다. 운동은 언감생심...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많이 피곤하냐'와 '살이 왜 이렇게 쪘냐'는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몸을 돌볼 수 있는 에너지가 하나도 없는데 생생한 것이 더 이상하지...


이렇게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눈으로 보는 내 몸뚱이가 너무 버거웠고, 내가 들고 다니는 내 몸뚱이가 버거웠던 것이다.

이 몸뚱이만 바뀌면 뭔가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 같았다.


다이어트!!!!


여러 다이어트 방법과 여러 운동을 전전하다가 큰돈을 들여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았다.

돈을 들인 만큼 식단도 운동 관리도 철저하게 해 주었는데 문제는 내가 마음이나 몸의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평범한 사람들도 운동과 식단을 지키는 일을 울면서 한다는데, 나는 내 돈 내고도 마음이 불편했다. 트레이너와 하는 운동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고, 식단은 뭘 먹으면 다행인 수준이어서 트레이너에게 매번 미안했다. 결국 어느 아침, 나는 몸과 마음 모두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로 스텝박스에서 운동을 하다가 발목을 크게 다치고 운동도 그만두었다.


발목을 다치고 나서도 계속 자책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내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그랬는지... 발목 부상은 생각보다 심했다. 6개월에 걸쳐서 치료를 한 후에야 조금씩 달릴 수 있었을 정도로...




의외로 나를 다잡아 준 것은 나 자신과의 만남이었다.

우연히 신부님과 함께 타고난 내 기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툴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었다.

남들에게 피해주기 싫어하고, 사랑 주는 만큼 받고 싶어 하고, 의지와 욕심도 많은 내 기질을 마주하면서

그것들이 내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돌아본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의 고삐를 당기기만 했다.

고향의 부모님께 걱정 끼쳐드리고 싶지 않아서 아프면 안 된다, 힘들어하면 안 된다 채찍질했고,

아플 때 주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인 것 같아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일에 미숙했던 내게 필요 이상으로 무자비한 폭언을 가했던 사람이 트리거가 되었던 부분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탓만 했다.


내가 힘들어할 때 마음껏 힘들어해도 된다고 스스로를 풀어줬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이 세상 누구에게 보다 내게 냉정했다.


어쩌면 나는 내게만 냉정했다.


그때부터 나는 나와 화해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어린아이를 키우듯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게 해 주고, 투정을 부리고 싶으면 투정을 부리고 들어주기도 했다.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싶어 하면 그렇게 하게 해 주었다.


내가 진짜 어린아이였다면 틀림없이 버르장머리 없는 작은 악마로 키울 있는 방법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살면서 내 마음속의 요청이 이렇게 허용적으로 받아들여진 경험이 없었기 때문인지, 가뭄난 땅처럼 갈라져있던 내 마음속은 갈수록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촉촉해지고 비옥해졌다.


마음의 에너지가 생기면서 가장 크게 느낀 변화는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점이다.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의원 치료와 낮은 강도의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냈다. 한의원도 여러 군데 다녀보고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곳으로 정했고, 운동도 내가 강도를 정할 수 있는 30분 순환운동으로 내 컨디션에 맞게 운동을 했다. 속도는 더뎠지만 몸과 마음이 정말 편했다.


무엇보다

나와 가장 친해졌다.


5년 여가 지난 지금.

이제는 위의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수 있다. (물론 부모님이 아시게 된다면 여전히 너무 힘들 것 같지만)

그때 내게 다이어트보다 먼저 필요했던 것은

내 마음의 소리를 잘 들어주는 일이었단 것을 이제는 안다.

왜 내 몸뚱이가, 내 마음이, 그들의 온몸을 바쳐 비정상을 외치고 있는지 그것부터 잘 들어줄 것을..


나는 먼저 잃고 나서 이 깨달음을 얻었지만, 다른 이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잃기 전에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들어줄 수 있도록 돕고,

그들 각자의 행복, 사랑, 성공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리는 것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코치가 되었다.

그리고 매일 그렇게 누군가를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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