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하루

by 가을 바다

가을이 날리고 있다. 길 가의 낙엽들은 마음 둘 곳을 찾느라 우왕좌왕한다. 전화를 받지 않는 어르신댁에 안부가 걱정되어 시골길을 달린다.


단풍이 지고 이제는 조용한 무채색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늘어나서인지 동네가 스산하다. 조금만 밀어도 삐거덕거리는 철제대문이다. 색도 바래고 귀퉁이도 휘어진 지 오래인 것 같은데 제구실을 하려고 외부인을 막아선다. 앉을 때도 아이고, 설 때도 아이고 하는 집주인 같다

그의 하루는 고요 속에서 시작된다. 티브이 소리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전화벨이 죽으라고 울려도 그의 귀에는 안 들린다.

밖에서 두드려도 기척이 없어서 문을 열었다. 방 안은 낮인데도 켜둔 형광등 탓에 담배 냄새가 가물거린다.


어디로 가셨을까 행여 지팡이를 잘 못 짚어 넘어졌을까 집 앞 개울도 보고 뒤편 산도 보는데 어르신이 보였다. 엉덩이로 밀고 다니며 불쏘시개용으로 갈비를 마대에 쓸어 담고 계신다. 나를 보더니 역시 엉덩이를 밀면서 내려오신다.


전화를 안 받아서 걱정되어 왔다고 스케치북에 써서 보여드리니. 귀가 안 들려서 못 받으니 걱정하지 마라고 했는데, 힘든데 왜 왔냐며 되려 지청구다.


하도 심심해서 나무하러 갔다고 한다. 한때는 소를 끌고 산을 두 개나 넘어 다니며 돈도 많이 벌었다고 한다.

아이들도 공부시키고 어른도 봉양하며 대가족을 잘 꾸려갔다고.

어느 날 보니 아이들은 도회지로 흩어져갔고 당신은 바빠서 세월에 밀려나는 줄도 몰랐다고.

와서 이야기 들어주니 고맙다며 뻣뻣하게 웃는다.

지금은 방방이 쓸쓸함만 남았지만 모른 척 무심한 척 살아간다.

찾아오는 이 없어서 딱히 할 일도 없다.

널브러진 시간을 어쩌지 못해 마루에서 졸며 해바라기를 할 것이다.

티브이 소리만 분주히 떠들고

관절이 아픈 대문은 반쯤 열린 채

오늘도 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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