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 바다 Aug 26. 2019

내가 나에게


‘너 가 나에게’이길 바랐다. 하지만 괜찮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 때 제 이름 제가 써내는 것만큼 어색했지만 ‘내가 나에게’를 해냈기 때문이다.
 
 태생이 우아하지 않아서 그다지 보석에 관심이 없었다. 아니 아주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결혼 전에는 목걸이도 몇 개 있었고 반지도 나름의 유행 따라 갖고 있었다. 결혼 후 아기 안고 다닐 때 목걸이의 보석이 아기 이마에 생채기를 내어서 뺐다. 그 후 이것저것 바쁘게 살아오다 보니 벌써 삼십여 년이 지났다. 친구들이 생일 때 남편에게 받았다고 자랑하면 그냥 좋겠다, 예쁘다, 했을 뿐 그다지 부럽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부터 목걸이가 갖고 싶어 졌다. 목에 주름이 생겨서 감추고 싶어서인지, 조금은 우아하고 싶은 감정이 생겨서인지, 아무튼 목걸이가 하고 싶어 졌다. 내가 가진 것은 벌써 구닥다리가 되었다. 목걸이에 꽂혀서 지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목만 보였다. 가느다랗고 조그만 사슬이 줄줄이 엮인 것도 예뻤고, 노랑 사슬에 간간이 다이아몬드가 박혀서 반짝거리는 것도 좋았다. 핑크 골드라나 약간 붉은빛이 감도는 금목걸이도 무척이나 세련돼 보였다.
 
지난여름 남편이랑 다른 볼 일로 백화점 갔을 때 보석 진열대 앞을 지나게 되었다. 보통 때의 나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발걸음을 멈췄다. 내심 목걸이가 사고 싶었지만 여태까지 여자도 남자도 아닌 그냥 아줌마로 살아온 내가 새삼스럽게 사달라고 하면 이상할 것 같아서 슬쩍 지나는 말을 던졌다.
 “난 이런 스타일 좋아하니까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뭘 할까 고민하지 말고 이런 것 사줘요.” 하면서 목걸이를 가리켰다.
 
평생 사달라는 적이 없는 내가 그런 말을 했으니 혹시 이즈음의 내 심경을 읽어서 굳이 생일까지 갈 것 없이 조만간에 사 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 여름이 다 가고 가을에 있는 생일에도 사 오지 않았다. 행여 정말 결혼기념일에 주려나 싶었는데, 없었다.
 
 내가 이 집에 시집와서 아들딸 잘 낳아 주고 살림까지 알뜰하게 해 줬는데 저 남자는 고마움을 모르는 걸까. 정확하게 꼭 집어서 말하지 못한 내 잘못인데 섭섭했다. 그깟 것이 얼마나 한다고 처음부터 생일이다 결혼기념일이다 하며 사달라고 해야 했는데 저 형편 봐서 아무 말 없이 살아주니 내가 여자로 안 보이나 여태껏 살면서 목걸이 하나 선물할 줄을 모르네. 괜스레 밀린 화까지 치받쳐왔다.
 
좋은 것만 있으면 애들이나 저부터 챙겨줬는데 매번 받을 줄만 알지 줄 줄을 모르네.
이래저래 혼자 속을 끓이다가 남편이고 애들에게 그동안 할 만큼 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접 사러 가리로 결정했다.
 
혼자 식당에서 밥 먹는 것도 어색한데 쑥스러웠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젊은 아가씨들이 목걸이를 걸고 거울에 비춰보고 있었다. 나이도 많은 이가 왔다며 쳐다볼까 봐 그냥 나와 버렸다. 용기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다음에 갈까 어쩔까 하다가 여기서 주저앉을 수가 없다 싶어 다른 가게로 갔다. 마침 나하고 연배가 비슷한 아주머니 둘이 구경하고 있었다. 나도 그 속에 묻어서 구경했다. 조그맣고 소담스러운 목걸이가 딱 눈에 띄었다.


직원분이 유리장에서 꺼내면서 선물하실 거냐며 물었다. '아뇨 내가 할 거예요.'라고 말했는데 갑자기 진열장을 보고 있던 아주머니 둘이 '우우' 하면서 나를 쳐다봤다. 안 그래도 어색한데 당황스러웠다. 야유인가, 부러움인가, 의미를 파악하기도 전에 밑도 끝도 없는 말이 나와 버렸다.
 “남편은 있는데 목걸이 사줄 남편은 없네요.” 했더니 그 아주머니 중에 한 분이 말했다,
“ 하기사 우리 나이에는 누가 신경 써 주겠어요. 내가 나에게 선물해야 해요. 잘하셨어요.”
 
 내가 나에게 선물을 해야 한다.는 말이 감동을 주었다. 어색하고 멋쩍어서 불편해있던 내 몸의 촉수들이 그제야 편안해졌다. 우리의 말을 듣고 있던 직원분이 “그럼 지금 목걸이하고 가세요.” 하면서 걸어 주었다.
 
직접 가서 사면 될 것을 여태 까지 받으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왜 꽃이랑 보석은 받는 걸로 생각했을까. 선물을 받는다는게 이렇게 좋을 줄이야. 내가 나에게 하는 선물이라 더 뿌듯하고 감격스럽다.직원 아가씨가 걸어주는 목걸이를 하고 거리로 나서는데 클레오파트라인 양 지나는 사람들이 눈 아래로 들어왔다.

작가의 이전글 벼룩이의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