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조금씩
우리 집은 아파트 2층이다. 여느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베란다가 있고 밖이 보이는 창이 있다. 그전에는 어린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뛰게 하려고 아파트 1층에 살았었다. 거기도 베란다창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우리 집을 흘깃 들여다보고 지나가는 바람에 우리는 남부럽지 않은 내 집에서 남의눈을 의식하며 살아야 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옷사이를 파고들어 온몸이 찌릿했던 15년 전 12월.
우리 가족은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평수도 넓어지고 방도 늘어나서 좋았지만 가장 마음에 든 것은 베란다였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도 좋았고 아침저녁으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과 차가 이리저리 다녀가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다. 아침 청소와 정리를 마치고 햇빛을 맞으며 여유를 누리기도 하고 겨울에는 차가운 바깥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창으로 쏟아지는 햇빛에 발을 담가두면 따뜻한 온기가 스며들어 잠이 솔솔 쏟아지기도 한다.
베란다에는 여러 식물이 자라기도 했다. 엄마가 가져다준 선인장은 정성을 쏟지 않아도 해마다 한 번씩 분홍꽃을 피워준다.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화분에 꼭꼭 눌러 심어둔 꽃씨가 터져 나와 초록빛 싹이 되고 일 년을 자란 후 시들기도 했다. 학교에서 과학시간에 키우는 식물을 함께 키워내기도 하고 한때 대파를 키우는 것이 유행하던 시절 우리도 대파를 키워보기도 했다.
빨래를 널고 창문을 열어두면 계절의 냄새가 바람과 함께 들어온다. 바로밑 1층 화단에는 여러 가지 식물이 자라고 있는데 여름에는 해바라기가 줄지어 피어나고 이름 모를 꽃들이 사계절 동안 번갈아가며 피어났다. 특히 가을쯤에 피어나는 노란색 만리향 향기는 창문을 열면 바람을 타고 들어와 집을 꽃향기로 가득 채운다. 그 달콤한 향기를 여름이 끝나갈 무렵부터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작년 여름쯤이었다. 어딘가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창밖을 보니 어디에서 들리는지 알 수없지만 근처에서 나는 소리에 바깥으로 나가 보았다. 1층 현관바깥으로 나가니 바닥에 아기새가 놓여 있었다.
"어머나! 아기새가 어디서 나왔지?"
"어디서 떨어졌나?"
고개를 들어 집 앞에 있는 나무를 바라보니 나뭇가지에 새가 앉아서 지저귀고 있었다. 아니 지저귀는 게 아니라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아마 어미새의 새끼가 나무에서 떨어져서 어찌할 바를 몰라 소리를 지르는 것이 분명했다. 아기새는 아직 어려 날지도 못하는 듯했다. 경비 아저씨께서 새를 올려주고는 잠잠해진 일이 있다.
우리 아파트는 벚나무가 많기로 유명해서 벚꽃축제도 했는데 우리 동 앞 화단에도 벚나무가 있었다. 이 벚나무는 아기새를 길러내고 여름이면 매미들이 살아가게 해 준다. 새들이 잠시 머물렀다 다시 날아가고 꽃이 피면 나비들도 날아든다. 봄에 베란다창으로 바깥을 보면 벚꽃이 저마다의 가지에 꽃을 한아름씩 껴안고 연분홍빛 커튼처럼 드리워져있다. 벚꽃은 그렇게 몇 날을 나에게 보여주고 하나둘씩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나부끼며 떨어진다. 떨어지는 꽃사이에 서 있으면 어린 공주님이 된듯한 달콤함에 빠진다.
사계절을 돌아 또다시 봄이다. 지금은 또 벚꽃이 만개했고 이제 며칠 후면 나는 또다시 어린 공주님이 된다. 그런 다음 초록잎이 가득해지고 싱그러운 잎과 애벌레도 볼 수 있다. 여름엔 세찬 바람과 내리는 비에 녹음은 더 짙어지고 강한 생명력을 뽐낼 것이다. 초록의 절정을 지나 가을이 오면 움켜쥐고 있던 이파리들을 하나둘씩 놓아주고 다음 계절을 기약한다. 싱싱하던 초록빛은 빛바랜 추억으로 땅에 떨어져 쓸려나가고 앙상함만 가득한 채 찬 공기를 이겨낸다. 그렇게 잊힌 채로 겨울을 보내고 다시 연분홍 꽃으로 소박한 듯 화려하게 부활한다.
우리 집은 갤러리다. 창은 사계절을 쉼 없이 보여준다. 그 사계절 동안 창을 열면 바로 손에 닿을 듯 보였던 꽃잎이 있었고 나뭇잎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바라본 창에서 더 이상 나뭇가지는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키가 자라 있었다.
'언제 이렇게 자랐지? 나뭇가지를 손으로 잡을 수 있었는데...'
창으로 바라본 나무들은 어느새 한 뼘이나 아니 훌쩍 자라 있었다. 항상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계절을 보여준 다고 생각했는데 그대로가 아니었다. 매일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조금씩 자라나 어느새 손이 닿지 못할 정도로 자라난 것이다.
'난 무엇을 했을까?'
'나무가 자라난 만큼 나도 성장했을까?'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던 건 아닐까?'
꽃을 피우고 나뭇잎을 키우고 새와 매미와 열매를 키우면서도 자신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조금이 어느새 커다란 나무가 되어 더 많은 것을 키우는 넓은 품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나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거나 아니면 바쁘다는 이유로 오늘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았다. 아파트 2층으로 이사 온 지 15년이 됐지만 그저 사계절이 지나가고 아이들이 커가고 나무가 자라나는 것만 보고 있었던 것 같아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오늘.
나를 보니 나도 변해있었다. 어떤 이유로든 변하기 마련이지만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매일매일 조금씩 조금 더 큰 그릇으로 자라 있길 바란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창. 창은 나의 세계이며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