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좀비 같을 때
잠결에 경쾌한 재즈음악이 울렸다. 한동안 음악이 계속되다가 기계음으로 읽어주는 뉴스.
무슨 소리인가 비몽사몽간에 정신을 차려보니 어제 내가 설정한 알람이었다. 다소 정나미 없는 목소리이긴 하지만... 뭐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산뜻한 하루의 출발이다.
6시 40분.
좀비처럼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오늘 아침은 뭘 하기로 했더라...'
냉장고 속에는 하얀 순두부 하나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지. 너였지.'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을 내고, 고추기름을 만들고, 두부를 넣고... 그리고 계란까지.
팬에 기름을 두르고 소금으로 간이 된 커다란 눈을 가진 빨간 고기를 칼집을 내고 바싹하게 구워냈다. 음식냄새가 가득한 아침을 성공적으로 시작한 기분이다.
이렇게 아침부터 만족스러운 음식을 준비하는 건 오랜만이다. 아침을 거의 먹지 않거나 아침 겸 점심을 먹는 나는 음식을 잘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요리는 흥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해 왔다. 더 냉정하게 말하면 나는 요리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더 잘하고 싶고 어차피 매일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을 한 적도 많다. 그러길 25년.
할 줄 아는 요리 몇 가지를 계속 돌리는 게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해보고 싶은 요리도 있긴 했다. 그럴 때 보게 되는 건 유튜브, 블로그, 인스타그램이었다. 요즘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볼 생각으로 유튜브나 블로그를 검색한다. 사실 그렇게 해서 다 맛있었던 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입맛은 아닌 거지. 그래도 이런 생각이 든다.
'아, 나도 저 사람처럼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럼 가족들이 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더 행복해하겠지...'
요리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도 육아뿐만 아니라 내 직업을 갖고 커리어를 쌓고 싶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이젠 일 할 기회가 없어질 것 같아서 일을 하면서도 아이들을 잘 돌보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처럼 되고 싶었다.
연락이 뜸해진 대학시절 친구들, 아이들 학교에서 알게 된 동네 엄마들도 일을 하며 자신의 삶을 잘 개척해 나가는 것 같아서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어 했다. 나는 현재를 살고 있는데 나의 기대와 바람은 먼 미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시선이 향하고 있었다.
식물 키우는 법을 검색하면서도 마찬가지다. 나도 이렇게 식물을 잘 키우는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재테크를 잘하는 사람을 봐도,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 자신을 잘 가꾸는 사람, 돈을 잘 버는 사람 등등..
이 정도의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할 무렵 문득 나는 좀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의지가 없는 그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자신을 장악해서 힘없이 휘청거리고 있다는 생각.
'나는 왜 자꾸 누구처럼 되고 싶어 하는가?'
욕심이 많아서? 부러워서? 자존감이 낮아서? 성공하고 싶어서? 모두가 다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떤 철학자의 강연에서 자신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 간섭하지도 않고 간섭을 받는 것도 하지 않는다고 한 말이 와닿았다. 사람들이 얽혀서 사는 세상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하지만 이내 나는 내가 스스로 간섭받는 길을 택해서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 간섭받고 있는 삶의 형태로 산 것이다.
내 인생에 남을 빼고 보니 오롯이 남은 건 '나' 뿐이었다. 남이 뭔가를 잘해서 부러워도 내가 못해서 속상해도 결국 가슴 깊은 곳에서 나를 향하고 있는 진정한 '나'.
게임으로 인생을 배웠다는 우리 아들은 나에게 이런 얘길 해 주었다.
"삶이 컴퓨터 게임이라면 내가 고른 캐릭터를 내 의지대로 움직여 미션을 수행해 가는 것이 우리의 삶과 같다고 생각해.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내 캐릭터는 여러 다른 캐릭터를 만나지만 그들은 결국 플레이어가 조작할 수 없는 캐릭터인 NPC일 뿐이야."
나에게는 복잡했던 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주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조작할 수 없는 다른 사람에게서 부러움을 느끼고 그들처럼 되고 싶어 하고 심지어 그들과 비교해 나를 하찮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타인에게서 영향은 받을 수 있지만 결국 내 삶의 플레이어는 바로 나 자신이고 그 게임을 끌고 나가는 것도 오직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은 내가 채우면 그만 이었다.
얼마 전 딸과 함께 점심으로 먹을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 김치를 송송 썰고 양파, 새우, 모차렐라치즈를 준비했다. 기름을 두르고 파기름을 내고 김치와 양파 새우를 볶는다. 밥을 넣고 굴소스, 후추, 김가루, 모차렐라치즈를 올려 녹인다. 치즈대신 촉촉한 계란프라이를 올리기도 한다.
"엄마가 해준 볶음밥이 진짜 맛있어" 딸이 말했다.
"그건 네가 엄마밥을 계속 먹어왔기 때문이지. 여러 가지 다양한 요리를 안 해줘서 미안하네"
"아니, 진짜 나는 엄마가 해준 게 제일 맛있어. 엄마 요리 잘해"
"진짜? 고마워, 우리 딸."
정말 고마웠다. 내가 만든 음식이 최고의 요리사가 만든 음식처럼 맛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음식이란 게 맛으로만 먹는 게 아니지 않은가? 이야기와 기억과 사랑을 함께 먹는 것. 그것이 음식이니까. 그러고 보니 아들이 군복무 중에 전화로 엄마가 해준 음식 먹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내 삶의 게임에서 내가 고른 내 캐릭터를 사랑하고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선택을 하는 것. 그래서 그 비교 대상이 남이 아니라 어제의 내가 되는 것. 그것이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방법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