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완벽한 삶

이대로 완벽한 꽃

by 몽셰

동그란 꽃봉오리가 오늘 아침에 팝콘처럼 터졌다. 집 주변의 나무들은 누가 질세라 하나둘씩 저마다 꽃잎을 터트려내기 시작한다. 차디찬 겨울의 시련을 딛고 움츠려있다가 다시 분홍빛 꽃을 피워내는 나무는 참 예쁘다. 대견하다. 나무는 끊임없이 변해왔지만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내가 보고 싶은 꽃에만 시선이 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무는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즐기고 있었을까?




'나는 벚나무니까 예쁜 벚꽃을 피워야 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때가 되었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사람들이 예쁘다고 봐주거나 앙상해져 외면하거나 개의치 않는다. 그저 그냥 자신의 속도 대로 자연의 흐름에 따라 자신을 드러낼 뿐이다.


육아와 살림을 하며 나는 현실에 맞닥뜨려졌다. 둘만의 살림을 차리고 둘만의 빨래가 널려있던 집안에서 손바닥만 한 작은 아기옷과 우리의 빨래가 함께 걸린 모습에 행복을 느꼈다. 사진보다 생생한 눈으로 스캔해 놓은 내 머릿속의 앨범에 이런 작고 귀여운 행복들이 가득하다. 아기가 둘이 되고 손바닥만 하던 옷이 내 옷 보다 커지고 이제 몸이 좀 편해질 무렵 문득 '내'가 떠올랐다. 가족들과 함께여서 내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나를 찾고 싶었다. 엄마는 이런 사람인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했다.

아이의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주고 공감해 주는 멋진 엄마, 현명하고 능력 있는 아내, 살림의 여왕, 요리를 뚝딱해 내고 상냥한 며느리, 자기 계발, 이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는 자랑스러운 딸.

한마디로 슈퍼맘이 되고 싶었다. 여기저기 닉네임을 슈퍼맘이라 정하기까지 했다.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슈퍼맘은 힘들지 않아야 하는데 나는 슈퍼맘이 되기엔 체력과 마인드와 재능을 가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모습을 가진 사람을 보면 나는 더 분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더 옥죄었다. 뭔지 모르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는 자신을 정해진 틀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맞추려고 하는 것 같아.'

남편이 말했다. 맞다. 나는 그랬다. 그제야 옆에서 남편이 참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적당히 타협해야 하나? 아! 모르겠다.'


'나는 누구인가? 누구나 하나씩 재능이 주어졌다는데 도대체 나는 무엇을 잘하는 걸까?'라는 근본적인 생각.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보냈다. 내가 누구인지 찾기 위해. 그런데 사실 지금까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찾는다기 보다 사회가 인정하는, 내가 원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에 나를 끼워 맞춰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꾹 참아야 하고 나를 바꿔야 한다고 믿었다. 그럴수록 점점 커지는 열등감에 나는 나를 더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본성이라는 게 있다. 가장 자연스럽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나인 것. 참나. 뭔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틀을 깨고 나오고 싶었다. 진짜 나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이제 오기가 생겼다.

'이게 뭐야? 내 청춘 그냥 다 보낼 거야? 그래서 뭘 찾을 건데?'

그 무렵 들은 불교강의에서 '사람은 자신이 만든 상을 찾아 쫓아간다'라고 했다. 그 상은 생각으로 만든 자아상인데 그걸 따라갈수록 자신을 더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이미 자신으로서 완벽한데 찾을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랬다. 꽁꽁 얼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리듯 지금까지 움켜잡고 있었던 나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내가 나에게 씌웠던 가면을 벗어버리고 나니 홀가분했다. '이래야 돼. 저래야 돼.' 하는 마음의 소리가 점점 약해지고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마음에 힘을 빼니 삶에도 여유가 생겨 화날 일이 없었다. 이젠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는 방어막이 하나 생긴 느낌에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을 잘 의식하지 않는다. 나는 나일뿐이니까.




계절 따라 피고 지는 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존재의 의미. 한 생명이 변화하고 또 성장하고 피고 지는.

사람의 삶도 그러하다. 어떤 모습이든 누구와 함께 있든 무엇을 하든 그냥 그 존재자체로 의미가 있다. 동그란 꽃봉오리가 팝콘처럼 터져 분홍색의 꽃이 나올 수도 있고 차가운 계절의 혹독함에 움츠려질 수도 있다. 그러고는 또다시 꽃망울을 터트리고 또 낙엽이 지고 얼어붙고를 반복한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나는 항상 여기에 있다. 이대로 완벽한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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