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후의 이야기 #5
한단지보(邯鄲之步)
'한단 지역의 걸음걸이'
자신의 주제도 모르고 허황된 것을 좇으려다 오히려 자기 본래의 것마저 잃고 만다는 의미의 고사성어
1.
그 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스물둘 셋 군대 시절, 하나같이 반짝이기만 하던 그 밤들이. 낮이면 천천히 천천히 한 단어씩 꼭꼭 씹어가며 책을 읽고, 그렇게 씹어 삼켰던 문장들을 다시 게워내 홈페이지 게시판에 한 글자 한 글자씩 풀어내 적던 소방서에서의 밤들. 서장실 옆 부속실 모니터 앞에서의 글적기를 마치면 열두 시 혹은 한 시쯤 3층의 생활실로 올라가곤 했다. 불 꺼진 방 안 먼저 잠들어 있는 동기와 후임 옆의 이불로 기어들어가 아이팟에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꽂고, 돌고래가 가득 담아 준 앨범들을 꼬박꼬박 하나씩 들어 넘기던 그 무렵의 밤. 어떤 밤들은 아무리 앨범을 들어도 도통 잠이 오지 않는 밤들도 있었다. 그래도 나름 군대 생활인데 소방서에서의 시간이 너무나 빨리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편지를 적어 보내기도 했던 나지만 그래도 그리움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나 보다. 군대 밖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가족에 대한 그리움, 학교 생활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대화에 대한 그리움. 그런 밤이면 쉽게 축축해지는 마음을 애써 억누른 채 조용히 소방서 옥상으로 올라가 열 바퀴 스무 바퀴… 끝도 없이 옥상을 걸어 돌았다. 깊은 숲 속 암자에서 스님들이 번뇌를 지우려 늦은 밤 탑을 돌며 탑돌이를 하듯이, 도시 변두리 소방서에서의 나는 그리움을 지우기 위해 옥상을 돌았다. 옥상을 돌던 느린 걸음은 언제나 시계 반대 방향이었다.
시가지와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소방서가 위치한 덕분에 어두운 옥상은 언제나 고요하기만 했다. 옥상에 올라오면 얼마간의 어두운 거리를 지나 저 멀리 늦게까지 불 밝힌 도심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불빛들은 화려하게 반짝이며 밤의 하늘을 밝혔지만 먼 거리 탓에 소리는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그 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럴 때면 소방서가 시가지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시가지의 한가운데에 소방서가 있었다면, 만일 그러했다면 나는 소방서 옥상에 올라가더라도 아무런 소용을 얻지 못했을지 모른다.
주변에 있던 것이라곤 소방서 마당 앞 2차선 도로와 간혹 도로를 달려가는 자동차가 전부. 그나마 가까이에 있는 건물이란 추워지는 계절이면 문전성시를 이루곤 하는 장례식장뿐이었다. 소방서의 옥상에서는 장례식장 간판의 불빛이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謹弔’라는 두 글자가 적힌 무척이나 차가운 빛으로 빛나던 간판. 그러나 장례식장 쪽으로부터도 소란스런 소리는 결코 들려오지 않았다. 어느 날엔가,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거나 아니면 그런 이의 친지라도 상을 당한 것인지 운동장처럼 넓은 장례식장의 주차장이 자동차로 가득 메워지고 도로 갓길에까지 조문 차량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던 날이 있었다. 하지만 그 날에도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그저 차분히 가라앉아 있을 뿐이었다. 만약 사람처럼 건물에도 성격이란 것이 있다면 그런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을 가진 장례식장이라는 건물과는 왠지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과의 통화에 기대어 애써 위안을 구하던 밤들도 있었다. 돌고래와, J와, Y와, S누나와… 그들과의 통화에서는 마음속 그리기만 하던 먼 바깥의 분위기가 물씬 전해져 왔다. 휴대폰을 통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옥상을 걸어 돌던 군대에서의 나날들. 과연 나는 옥상을 몇 바퀴나 걸어 돌았을까. 조용히 검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언덕 아래 저 멀리서 빛나는 도시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숨을 가다듬고 왼발 오른발 한 걸음씩 주의 깊게 발걸음을 옮기며 아마 수천 바퀴는 족히 돌았을 것이다.
소방서에서 보낸 두 차례의 겨울 중 언제였나, 한없이 떨어지는 함박눈을 그대로 맞은 채 그리운 누군가와 수 시간 동안 이야기하며 옥상을 걷던 밤이 있었다. 통화가 끝났을 때 주머니에 넣고 있던 왼손과 달리 핸드폰을 쥐고 있던 오른손은 그대로 얼어붙어 쉽사리 펴지지 않던 그 밤. 생활실로 돌아와 이불 아래 손을 넣고 한참이나 주물러 녹인 후에야 손가락이 펴져 겨우 잠들 수 있던 밤이었다. 배터리가 가득 채워진 채로 시작했던 통화가 배터리가 다 닳고 난 후에도 마무리 지어지지 않던 밤도 있었다. 결국은 생활실의 캐비닛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충전기를 화장실의 콘센트에 꽂아 둔 채로 통화를 이어나가야 했던 밤. 하지만 그런 밤들도 한 개의 반짝이는 비늘이 되어 그리움에 사무친 나를 위로해 주기는 마찬가지였다.
2.
항암치료를 마치고 서울의 자취방에서 엄마 동생과 함께 셋이서 1년여를 살았다.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을 살았는데도 그 방에서의 기억은 별로 남은 것이 없다. 아직 얼마간 후유증에 시달리던 때였다. 다만 지금 떠오르는 기억이란 밤이면 방바닥이 가득 차게 이불을 펴고 엄마 동생과 함께 누워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던 기억. 마치 친구들과 떠났던 여행지에서의 밤처럼 엄마와 나 그리고 동생은 밤이면 매일같이 그렇게 머리를 맞대고 누워 시끄럽게 이야기하며 한참을 웃다 잠들곤 했다. 그리고 마치 데이트라도 하듯, 엄마의 어깨를 감싸 안고 영화를 보러 서울 시내를 돌아다녔던 기억도. 엄마와 단둘이서 영화를 봤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큰아들로서 이전까지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그렇게 엄마와 여러 일들을 함께할 수 있었던 1년이라는 시간은 엄마 그리고 동생과 한참이나 가까워졌던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동생의 추천으로 한 약학박사님의 약국에 찾아갔던 일도 생각난다. 암에 대해서는 전문가라는 동생의 말에 찾아간 약국에서 박사님께 상담도 받고 추천해 주신 종합비타민제와 칼슘 마그네슘제 같은 영양제들도 구입해 먹었다. 박사님의 약국에 처음 찾아갔던 날, 상담을 하며 내 이야기를 한참 듣던 박사님은 나와 엄마에게 왜 국가나 소방서에 피해보상 소송을 걸지 않았느냐고 말씀하셨던 것도 기억이 난다. 군 생활을 했던 소방서에서 화재 진압을 하며 마셨던 연기가 뇌종양의 원인일 수도 있는데 왜 법적인 소송은 생각하지 않느냐는 말씀이었다. 그런 박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와 엄마는 그저 멀뚱한 표정으로 어리둥절해 하고만 있었을 뿐이었다. 소송 따위의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으니까. 가만 보면 엄마도 그리고 나도 남 탓할 줄 모르는 소심한 사람들이기만 하다. 그저 내가 잘못했으려니, 다 내 탓이려니 하고만 생각하고 언제나 그저 웃어 넘기기만 하는 사람들. 바보같이 착하기만 한 사람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찰리 채플린이 했던 말이랬나? 갑자기 이 문장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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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고심하며 궁금해했던 것이 있다. 과연 내 인생은 한단지보(邯鄲之步) 고사 속의 젊은이인 것일까, 아니면 만화 <도로헤도로> 속의 등장인물 신(心)인 것일까 하고. 한단지보의 청년처럼 자신의 주제도 모르고 한단 지역 사람들의 멋진 걸음걸이처럼 헛된 것만을 바라다 결국엔 모든 걸 망쳐 버리고 자신의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려 기어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도로헤도로의 신처럼 자신이 마법사라고 믿고 마법 연기를 뿜어내기 위해 손가락을 자르고 팔까지 잘라 결국에는 정말로 마법 연기를 뿜어내는 뛰어난 마법사가 되는 것일까, 하고.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은 아직까지도 찾지 못했다.
수도권 지역에서 근무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다니던 직장의 서울 본사로 근무지 이전 신청을 했던 시기의 일이다. 불가능한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갔고 안 된다면 퇴사까지 생각하고 있던 차에 우리 팀을 맡고 있던 전무님과의 면담이 잡혔다. 내가 근무지 이전을 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전무님이 나를 불러 면담을 하게 됐던 거였다. 면담 자리 전무님의 첫 질문이었던, 요즘 하는 가장 큰 고민이 뭐냐는 물음에 나는 별생각도 없이 무심코 “좋은 문장을 쓰는 거요”라고 대답해 버렸다. 그게 정말이었으니까. 그저 ‘요즘’ 하는 고민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는 항상 그런 고민이 가득 차 있다. 어떻게 하면 과거처럼, 병에 걸리기 전처럼 내 마음에 드는 문장을 쓸 수 있을까. 치료를 마치고 한참 후의 언젠가 한 친구는 나에게 너는 전혀 외로워 보이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내 머릿속과 가슴속에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들어올 작은 틈도 없이 저 고민만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내가 무슨 뛰어난 문학성 넘치는 문장을 써서 세계적인 문필가가 되려는 꿈을 가진 줄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건 전혀 아니올시다. 나는 그저 어떻게 하면 과거의 문장이 돌아올 수 있을지만을, 어떻게 하면 예전만큼의 컨디션이 돌아와 과거처럼 상쾌한 문장을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을 뿐이다.
풍향계는 風向計일까? 風向鷄일까? 내가 의무소방으로 소방서에서 군복무를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랬다면 뇌종양에 걸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혹시 내가 뇌종양에 걸리지 않아 엄마 동생과 함께하며 가까워질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예전처럼 가족과 서먹서먹한 관계로만 지내고 있을까? 아무려면 어떠랴. 어쩌면 모든 것은 운명이 다 정해둔 일인지도 모른다. 어쩌면이 아니라 분명히 그럴 것이다. 나는 삶의 모든 일은 운명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내가 궁금해하는 건 운명이 지금 나를 데려다 놓은 곳이 과연 어디냐는 것이다. 한단지보의 청년 쪽에 가까울까 아니면 도로헤도로의 신 근처에 나를 데려다 둔 것일까. 내 인생은 정말로 다른 사람의 눈으로 봤을 때만 희극이고 내가 볼 때는 비극으로 끝나고 마는 것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지금도 나는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