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인터뷰

치료 후의 이야기 #7

by 이대


“(…) 그전의 일은 뭐 하나 기억나지 않아요. 계속 좋지 않은 일만 일어났어요. 머리 위에선 언제나 나쁜 바람이 불고 있었죠.”
“바람의 방향도 때가 되면 바뀔 거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언젠가는.”

- 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中


오늘 엄마가 다녀가셨다. 아니 어쩌면 어제… 라는 건 시원찮은 농담이고(카뮈에게 영광을!) 엄마가 한 일주일 정도, 지금 내가 사는 지방 광역시에 와서 머물다 가셨다. 별 것 아닌 그저 내 개인적인 일 때문이었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이은상 시인의 유명한 시구처럼 남쪽 바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고향 서쪽 바다 황색 물 눈에 보이는 서해안의 작은 마을. 기찻길도 닿지 않는 그곳에서 엄마는 버스를 타고 대전까지 가 대전에서 KTX로 갈아타고 내가 있는 곳까지 먼 걸음을 해 주셨다. 덕분에 일은 무리 없이 마무리됐고 여유 시간이 생겨 엄마와 이야기를 나눠 보기로 했다. 다른 게 아니라 나에게 찾아왔던, 그리고 우리 가족이 경험했던 병에 대한 이야기를. 내 병의 발병과 치료 그리고 회복까지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전부 지켜보았던 엄마와 한두 단락씩 이야기한 적은 있었지만 그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 나눈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제는 먼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병의 시간은 엄마에게 어떤 풍경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또 지금, 무엇이 엄마의 마음에 남아 있을까?




나 _ 전에도 물어봤던 것 같은데, MRI 찍고 병원에서 처음 뇌종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엄마 기분이 어땠어?


엄마 _ 엄마는 좋았어. 고칠 수 있다. 원인을 찾았으니까 치료하면 된다. ‘요즘 의술이 얼마나 좋은데 치료 못하겠어’ 하는 생각이 딱 들었으니까. 머릿속 종양 때문에 네가 그랬다는 걸 알고 나니까 엄마는 오히려 안심이 됐던 것 같아.


나 _ 나도 뇌종양이라고 듣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 전까지는 어떻게든 내 컨디션을 돌려놓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진짜 답답했었거든. 그런데 엄마, 뇌종양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무섭진 않았어?


엄마 _ 무서웠지. 엄마만 무서웠겠어? 걱정 많은 아빠는 아마 네가 뇌종양 걸렸다는 얘기 듣고 정말 큰일 났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래도 엄마는 너랑 병원에 있을 때 마음 편했어. 의사선생님이 다 치료해 줄 거라고 믿고 걱정은 안 했지. 만약에 네가 아프다고 울고불고했으면 엄마도 힘들었겠지만 넌 안 그랬으니까. 그래서 병원에서 너랑 노상 놀았잖아.


나 _ 나는 병원에 입원해서 엄마랑 지낼 때 좋았는데. (엄마도 좋았어) 병원에서 항암치료 받을 때 나 밥도 못 먹고 그랬는데 엄마는 그래도 걱정 안 됐지?


엄마 _ 항암제 맞으면서 영양제도 같이 맞는다니까 별 걱정 안 했지. 그리고 밥을 계속 못 먹었던 것도 아니고 치료 받으면서 2주쯤 못 먹고 집 와서는 먹고 또 2주 못 먹고 그랬으니까 뭐. 또 과일 같은 건 먹었잖아.


나 _ 그렇게 나랑 같이 병원에 있었을 때, 엄마는 어떤 게 제일 기억나?


엄마 _ 그냥 너랑 얘기하고 그랬던 거. 같은 병실에 있던 다른 환자들은 다들 힘들어하는 게 보이는데 그래도 너는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생각하고. 자식이 아파했으면 옆에서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겠어.


나 _ 그때 엄마가 그랬잖아 우리가 너무 웃어서 다른 환자들이 흉볼 것 같다고.


엄마 _ 그래도 네가 입원해서 척수액 빼낼 때, 그건 정말 보기 힘들었어. 척추에 바늘 꽂아서 뽑는데 네가 얼마나 아플까 생각되고. 그런데 처음 입원했을 때 같은 병실에 있던 아저씨 있잖아 왜. 처음 봤을 때는 건강해 보이기만 했는데 언젠가 또 만났을 땐 얼굴이 새카매지고 완전 상한 모습 보니까 마음이 좀 그렇더라. 사람 좋은 분이었는데. 그런데 그 아저씨, 지금은 안 살아있을 것 같애.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 _ 문병 왔던 내 친구들도 기억나?


엄마 _ 걔 돌고랜가 하는 애 왔었잖아. 그리고 엄마는 너 아는 친구들 오면 나가있었어. 그런데 네가 병인 줄도 모르고 정신없을 때, 친구들도 오해했었지? 너 좀 이상해진 것 같다고.


나 _ 그랬지. 그래서 영돈이는 나한테 화도 났었대. 락페스티벌까지 와서 잔다고.


엄마 _ 그런 상태로 가면 안 됐는데, 거기도 네가 간다고 해서 갔던 거잖아. 맨날 잠만 잘 때, 너도 일찍 일어나려고 하는데 몸이 안 따라줘서 그랬던 거였지? 그때 엄마랑 중학교 운동장 돌면서 엄마가 ‘내일은 일찍 일어나자’하면 알았다고 해놓고 다음날에는 또 못 일어나고, 못 일어나고…. 그럴 때가 엄마는 정말 힘들었어. 네가 정신적으로 어떻게 돼버린 건가 싶어서. 그래서 엄마는 절도 안 다니는데 이모랑 절에도 갔었잖아. 불경도 따라 쓰라고 해서 맨날 쓰고 그랬어.


나 _ 재훈이한테 들었던 이야긴데, 아빠가 엄마한테 내가 이상해진 것 같다고 하고 재훈이도 나보고 좀 그런 것 같다고 하니까 엄마가 울었다면서.


엄마 _ 울었지. 그때 말고도 많이 울었어. 네가 잠만 자지 씻지도 않지 그러다 얘가 진짜 바보되는 거 아닌가,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거 아닌가. 동네마다 보면 꼭 모자란 사람들 한둘씩 있잖아. 그렇게 될까 봐 할머니댁 가서도 울고 그러니까 할아버지 할머니가 몇백만 원 줘서 그 돈으로 굿한 거였잖아.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런 미신 절대 안 믿는데 내가 너무 답답해하니까 돈 주셨던 거지. 굿을 하루도 아니고 며칠 동안 했어. 그런데도 너는 네가 이상해졌다고 생각을 안 하는 거야. 피곤해서 그렇지 괜찮아진다고, 학교도 다시 간다고 그러고. 아빠는 학교 가 봐야 잠만 잘 텐데 가서 뭐 하냐고 화내고.


나 _ 나도 뭐 제정신이 아니었지. 그렇게 복학해서 중간고사 시험지를 받았는데 한 글자도 못 쓰겠는 거야.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그때 들었어.


엄마 _ 네가 그렇게 집으로 오고 나서부터 병원을 찾아다녔잖아. 그런데 그때도 엄마는 네 머리에 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그런데 의사들도 모르더라. 수면클리닉 가서 검사해 봐도 별 이상 없다고 그러고. 실연당했냐고 그러면서 우울증 이런 쪽으로면 접근을 했잖아. 그래도 거기서 큰 병원 가서 MRI 찍어보라고 해서 네 병을 알게 되긴 했지.


나 _ 내가 아는 누나가 있거든? 그때 문병도 왔던 누나였는데, 남자친구가 ‘뇌종양 걸렸으면 금방 죽을 건데 뭐하러 문병까지 가냐’고 그랬다더라.


엄마 _ 그러니까. 뇌종양 걸리면 그렇게 된다니까. 제일 무서운 병이야. 네가 그렇게 큰 병에 걸릴 줄은 누가 알았겠어? 입원 한 번 안 해봤던 넌데. 그래도 병원에 입원한 후부터는 치료도 힘든 치료는 아니고 네가 아프다고도 않고 그러니까 엄마 마음이 불편하진 않았어. 그때 너 뇌수술 할 때 빼고는.


나 _ 항암치료 마치고 방사선치료 시작하기 전에 했던 뇌수술 말이지?


엄마 _ 응. 그때 네 머리에 나사 박고 그럴 때, 아으…. 엄마는 그때가 진짜 힘들었어. 항암치료 마치고 MRI를 더 늦게 찍을 걸 그랬나 봐. 종양이 별로 줄어든 것 같지 않다고 해서 조직검사 했던 거잖아. 김태민 교수님은 수술까진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하는데 김일한 교수님은 또 해야 한다고 하고.


나 _ 그래도 억지로 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 우리한테 수술 받을지 말지 결정하라고 했는데 내가 받겠다고 했잖아. 그때 엄마 마음은 어땠어?


엄마 _ 엄마도 확실하게는 하고 싶고 또 네 머릿속에 아직 종양이 남아있다고 하니까 해야 될 것 같다고는 생각했는데. 다른 데가 아니라 뇌수술이니까 겁났지. 그래도 머리뼈를 잘라내는 게 아니라 구멍만 뚫는 수술이라서 다행이라고는 생각했었어. 너는 수술할 때 마취해서 자느라 아픈 줄도 몰랐지?


나 _ 엄마, 뇌수술은 마취 안 하고 눈 뜬 상태에서 해요. (정말?) 그래도 뇌는 고통을 느끼는 부분이 없어서 아프진 않았어. 두개골에 나사 박을 때만 아팠지.


엄마 _ 그때만 해도 머리에 칼을 댄다, 이런 건 상상도 못 했었는데 요즘엔 기술이 많이 좋아졌나 봐. 엄마 아는 사람 가운데서도 머리 수술한 사람이 여럿이야.


나 _ 그렇게 수술하러 들어갈 때, 의사들은 별 거 아니라고 금방 끝날 거라고 했는데 수술이 길어져서 내가 늦게 나왔잖아. 그때 보니까 엄마 울고 있더라?


엄마 _ 너 수술실 들어갈 때부터 울었어. 뇌수술이라는 큰 수술을 하러 들어간 네가 너무 걱정되는 거야. 또 수술받으면서 힘들어하고 있을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안쓰러워서 눈물이 나더라. 항암치료 하면서도 MRI는 몇 번 찍었지만 그런 힘든 치료는 안 했었잖아.


나 _ 병원에서의 제일 큰 경험이었지.


엄마 _ 항암치료 다 마친 다음에 방사선치료를 시작했던 거지? 그래서 그때 너랑 재훈이랑 방 구해서 서울에서 같이 살았잖아.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때 왜 그렇게 학교 다니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나 몰라. 치료를 완전히 다 마치고 몸이 좀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휴학을 더 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나 _ 나는 그래도 그때 학교 잘 갔던 것 같은데. 몸이 다 회복될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런데 나는 엄마랑 재훈이랑 서울에서 살 때 진짜 좋았어.


엄마 _ 엄마도 좋았어. 그런데 너희들 학교 가면 엄마 혼자 심심하잖아. 맨날 개운산인가? 거기만 갔다 오고.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었는지. 엄마 요양보호사 자격증 있으니까 처음부터 너네 학교 보내고 엄마가 일 했으면 좋았을 텐데 나중에서야 그 생각을 한 거야. 그래서 센터 찾아가니까 이태원 그쪽 집 해줘가지고 거기 다녔잖아. 거기 말고도 몇 집 더 다녔어. 너는 치료 끝나고 복학해서도 친구들 잘 안 만났지?


나 _ 그랬지. 여자애들은 벌써 취업한 애들도 많았고 남자애들도 다들 취업 준비하느라 바빴으니까.


엄마 : 너 아팠을 때 모습 보고 실망해서 그랬을 수도 있어.


나 _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는 지금처럼 엄마랑 이렇게 살갑게 지내진 않았지?


엄마 _ 그때는 좀 까칠했지. 사춘기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네가 원래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그런 스타일도 아니었고. 재훈이랑도 서울에서 같이 안 산다고 그랬잖아 네가. 그러다 네 치료 마치고 서울에서 같이 살면서 너랑 영화도 보러 가고 남산도 가고 여기저기 많이 다녔지. 그때 네가 엄마 어깨도 감싸 안고 다니고 그랬었잖아, 기억 나? 병 걸리고 치료받고 나서는 네가 많이 유순해진 것 같아.


나 _ 엄마는 내가 병에 안 걸렸으면 지금 이랬을 텐데, 하고 아쉬운 거 있어?


엄마 _ 네가 병에 안 걸렸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직장에 다녔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거? 그래도 네 몸 건강하고 직장 다니면서 스트레스 받아 하진 않으니까. 그게 제일 다행인 것 같아. 또 네가 좋아하는 일 하고 있고.


나 _ 처음엔 병인 줄도 모르고 답답해하고 슬퍼하고 그러다 원인을 찾고. 또 치료받아서 지금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는 거, 잘 된 거 맞지?


엄마 _ 그럼. 정말 다행이지. 네 몸 건강하게 지금 이렇게 살고 있으니까. 네가 예전에 그랬잖아 “엄마, 나 효자지?”하고. 이렇게 살아 있고 안 아프고 그러니까. 뇌종양이든 뭐든 자식 먼저 보낸 부모들은 얼마나 마음 아플거야. 넌 그러지 않았으니까 얼마나 효자야.




가족 가운데 누군가와, 비록 짧은 시간이었긴 해도 이렇게 격식 차려 이야기한 건 엄마가 처음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가족은 항상 함께이지만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긴 조심스러운 대상이니까. 그건 아마 그만큼이나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큰 맘 먹고 나눴던 엄마와의 대화로부터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병이란 나만이 겪은 경험이 아니라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생, 우리 가족 전체의 경험이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살아가며 문득 그 시간을 떠올린다. 그리고 '힘겹게 버텼던 시간이었지만, 적어도 나는 지금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 있고, 이렇게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내고 있다'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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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의 시간을 함께 보낸 엄마가 돌아갈 열차를 기다리며 KTX역 대합실에 앉아 또 한참을 이야기했다. 아빠 얘기, 동생 얘기, 돌아가신 할머니 얘기…. 출발 시간이 다가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열차에 오른 엄마를 배웅하고 올라오는데 뜬금없이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글쎄, 엄마가 휴대폰을 역에 두고 기차에 탔더라는 전화였다. 옆자리 승객의 전화를 빌려 연락이 왔더라면서. 얼른 대합실로 올라가 엄마와 내가 앉아 있던 자리로 갔는데 다행히도 엄마의 휴대폰은 거기 그대로 있었다.


아빠가 알려준 번호로 전화해 (옆자리 아주머니 아들인데요, 죄송한데 엄마좀 바꿔주세요) 내가 휴대폰 갖고 갈 테니 대전역에서 기다리라 하고는 급하게 티켓을 끊었다. 그렇게 열차에 타고 한시간 남짓 달려 엄마와 다시 만나 이왕 이렇게 된 거, 대전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고향으로 돌아갈 엄마의 출발 시간까지 같이 있기로 했다. 터미널 앞 설렁탕집에서 점심도 먹고 커피도 한 잔 하고 그저 그렇게 일상적인 시간을 보내듯이. 휴대폰 덕에 엄마와 헤어질 시간이 네 시간쯤 늘어난 것이다.


엄마를 버스에 태워 고향으로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계획 세워 두었던 오후 일과는 어쩔 수 없이 취소됐지만 나는 엄마와 그렇게 보낸 시간이 오히려 좋았다. 예정 없이 주어진 엄마와 몇시간 더 보낸 시간이. 앞으로의 삶에서 얼마나 남았을지 모를 엄마와 함께할 수 있던 그 시간이.

어라? 그러고 보니 나, 엄마 말처럼 정말 효자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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