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가정에는 아픔이 있다

치료 후의 이야기 #8

by 이대


항상 맑으면 사막이 되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야 비옥한 땅이 된다

- 스페인 속담


안녕하세요? 이렇게 여러분께 제 이야기를 전달드릴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머릿속에 들어있는 문장들을 입으로 꺼내 풀어내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써 여러분에게 이야기드리려 합니다. 앞서 말씀드리자면 이 이야기는 재미도 없고 교훈도 없으며, 그렇다고 이렇다 할 감동이 있는 것도 아니니 혹시나 다른 할 일이 있으신 분께서는 그냥 흘려 넘기셔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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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말씀드릴 이야기의 제목은 ‘모든 가정에는 아픔이 있다’입니다. 물론 여기서 가정이란 논리학이나 수학에서 말하는 가정(假定)이 아닌, 한 가족을 의미하는 가정(家庭)입니다. 아마 아는 분도 계시고 모르는 분도 계실 테지만 제가 모자를 자주 착용하는 이유는 제 머리숱이 꽤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별 무리 없는 제 머리카락을 보고 계신 분들께는 지금의 이 머리는 가발이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 머리숱이 지금처럼 줄어들어 버린 건 20XX년 이후의 일입니다. 그 해에 저는 뇌종양 진단을 받았습니다. 주변에 암 치료를 받은 지인이 있거나 혹은 자신이 항암 치료를 경험해 본 분이 계시다면 잘 아실 테지만 항암 치료 시에는 온몸의 털이 전부 빠져버리게 됩니다. 머리카락은 물론이고 겨드랑이털, 다리털, 음모, 콧구멍 속의 코털, 심지어는 속눈썹까지 전부 말입니다. 항암 치료라는 게 그런 식으로 온몸의 세포를 한 번 다 갈아엎는 치료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렇게 완전히 빠져버렸던 제 머리카락은 치료가 끝난 뒤에도 전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예전부터 저와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면 “너는 전에도 머리숱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잖아”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맞아, 어쩌면 나는 내 머리숱이 이렇게 없는 걸 항암치료 때문이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하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 머리카락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므로 이쯤에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뇌종양을 앓을 당시 제 증상은 머리가 아픈 것도 아니고 눈앞이 뿌옇게 보인다거나 발작 증세가 나타나는 것도 아닌, 그저 잠이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올드독’으로 유명한 정우열 작가의 작품 <개를 그리다> 속 이야기에서 작가의 반려견 ‘소리’가 뇌종양 진단을 받고 죽기 전에 잠을 많이 잤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니 한참이나 잠에 시달리던 그때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잠만 잤습니다. 아무리 일찍 잠자리에 들어도 다음 날 눈뜨는 시각은 언제나 정오 이후였습니다.

요즘의 저를 알고 계신 분들 가운데에는 저에 대해 ‘기억력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맞습니다. 저는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병에 걸리기 전에도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뇌종양을 앓고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그 탓인지 머리가 상당히 나빠졌고 때문에 기억력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나마 지금은 많이 회복된 상태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참 병을 앓던 당시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우유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편의점에서 1000미리 우유를 구입해 당시 살던 원룸에 들어가 냉장고를 열었더니 바로 어제 산 1000미리 우유가 아직 뜯기지도 않은 채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너 지금 뭐 하니?”하는 듯한 표정으로요.

뇌종양인줄도 모르고 그렇게 잠만 자며 몽롱한 상태로 지내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1년 정도 입원해 치료를 받았습니다.


치료 이후 제가 느낀 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엄마의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제가 지금 드리고 있는 이야기의 주제인 ‘모든 가정에는 아픔이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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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가정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저희 집의 아픔은 저였습니다. 제가 뇌종양인 줄도 모르고 휘청대고만 있을 때 저희 집 분위기는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이전까지는 뭘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한다고 부모님께서는 저를 말하곤 하셨는데, 그때 제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잠만 자는 것뿐이었으니까요. 학교를 휴학하고 집에 내려가 온통 잠만 자는 저를 보고 부모님은 많이 싸우기도 하셨대요. 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동생 말에 따르면 그랬답니다. 아마 두 분 다 날카로워져 있었기 때문이었겠죠. 저 때문에 엄마가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제 동생은 말해 주었습니다. 저희 아빠는 미신은 일절 믿지 않는 분인데 그때 무당을 찾아가서 굿도 하셨대요. 나중에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실감이 나더라구요. 그때 저를 보는 가족의 마음이 어땠을지.


그런데 말이에요, 그렇게 저희 가정의 큰 아픔을 겪고 나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이는 거예요. 그들이 하나같이 가지고 있는 아픔들이 말이에요. 정신적인 아픔이든 신체적인 아픔이든, 자기 자신이든 혹은 가족 누군가의 아픔이든 모든 가정에는 나름의 아픔이 있었습니다.


한참이나 가까웠던 제 친구의 동생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그 친구가 캐나다로 어학연수 가 있었을 때 이야긴데, 동생이 군대에서 제대를 할 무렵이었대요. 해군으로 복무를 하고 있었는데 배에 세워 둔 채로 실려 있던 포탄 하나가 넘어지려 하는 걸 그 동생이 혼자서 막으려다가 포탄에 깔렸다고 합나다. 포탄 하나의 무게가 500킬로그램쯤 한다나요. 다리를 심하게 다치고 머리도 다쳤는데 결국 오른쪽 다리는 무릎 아래를 잘라내야 했고 다리 수술하다가 머리 수술할 시간을 놓쳐, 친구 말로는 동생이 전과는 조금 달라진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그 동생은 이후 의족을 착용하고 있대요.

그런데 제 친구가 동생의 사고 사실을 안 건 어학연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였대요. 얘네 가족은 친구가 멀리 외국에서 걱정하느라 공부에 방해될까 봐 친구에게 동생의 사고 얘기를 안 했던 거예요. 돌아와서야 그 사실을 알고 친구는 엄청 울었대요. 동생이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저 멀리서 공부만 한다고 편한 마음으로 지냈던 자신의 행동에 괜한 죄책감이 들어서요.


제 또 다른 친구의 동생은 수능시험날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대요. 친구가 갖고 있던 열쇠고리였나? 아니면 다마고치에였나? 하여튼 거기 끼워져 있던 친구 동생의 고등학생 무렵 사진을 보니까 친구와 친구 가족의 마음이 어땠을지 가만히 짐작이 가더라구요.

그리고 제 다른 친구 한 명은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서 하반신 마비가 왔어요. 그 친구는 노는 애들처럼 그렇게 함부로 오토바이를 탔던 게 아니라 정강이 보호대며 팔꿈치 보호대며 전신 보호복을 입고 또 머리에는 헬멧도 꼭 쓰고 제대로 오토바이를 타던 친구였는데, 그래서였는지 사고가 났을 때 다른 데는 다 멀쩡한데 경추를 다쳐서 하반신 마비가 온 거래요.

또 제 초등학교 때 친구 한 명은 몇 년 전, 젊은 나이에 부모님보다 먼저 세상을 떴어요. 제가 앓았던 병과 같은 뇌종양으로요. 장례식장에 가서 친구 어머니 아버지와 껴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런 친구들과 친구들의 가족을 보면서 저는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모든 가정에는 다 아픔이 있는 것 같다”고요. 하물며 제 친구들의 가족만 봐도 이런데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더 말해 뭐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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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모든 가정에는 아픔이 있다는 이야기는, 그런 아픔을 겪은 그들을 동정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 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여러분의 가정에도 다른 모든 가정들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문제 또는 아픔이 있거나 혹시 없더라도 앞으로 언젠가는 생길 거라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 지금 자신의 삶이 너무 힘들고 괴로운 분은 당신 혼자만이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시고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으시라는 말씀이며, 지금의 생활이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분이라면 당신에게도 언젠가 분명히 아픔이 다가올 거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지금부터라도 앞서 마음의 준비를 해 두시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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