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가 되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치료 후의 이야기 #9

by 이대


나의 온전한 리더reader이자
오롯한 리더leader인 돌고래에게

- 돌고래에게 홈페이지 글의 제본 책자를 건네며 속표지에 적었던 문구


당신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나요? 가족은 아니지만 결코 잃고 싶지 않은, 관계를 절대로 깨트리기 싫은 그런 사람이. 그리고 언제나 심적 정신적 의지처가 되어주는 그런 사람이. 내게는 돌고래라는 친구가 바로 그런 존재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앞서 살짝 꺼냈던 미래에 대한 불안과 20대 소중한 시간을 잃어버렸다는 안타까움을 떨쳐낼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맨 처음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돌고래와의 첫 만남은 대학 신입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졸업한 학교에 입학했다는 사실이, 인문학부에 진학했다는 사실이,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배정받은 반(학부로 입학해 신입생 땐 반(班)으로 나뉘었다)에 속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행운이었다 싶은 이유가 있는데 그건 바로 거기서 만난 사람들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대학 입학이라는, 인생에 있어 커다란 전환점조차 별 의미 없이 그저 흘러가버렸을 것이다.


대학에 입학해 만난 이들은 무척이나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몇 개월 전, 학교를 졸업하고 진로를 틀어 의료전문대학원에 진학한 친구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은 세상의 다른 사람들도 그들(우리가 속했던 반의 사람들)같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는, 절대 아니었다는 말을 해 주었다. 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분명 행운이었다며.

돌고래 역시 그 반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신입생 시절, 그는 그렇게 내가 만난 특별한 사람들의 중심에 있었다.


그와 만난 첫 장면은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 그가 개인 대 개인으로 내게 말을 건넸던 장면만큼은 생생히 떠오른다. 학기 초의 행사 자리, 수업을 마치고 동기들과 다 같이 들어가 착석했던 한 호프집에서의 장면이다. 구석자리 테이블에 앉아 커다란 투명 비닐봉투에 들어있던 옥수수 색볼들을 한 개씩 꺼내먹고 있던 돌고래는 같은 테이블에 앉으려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대훈이구나~ 태엽에 왔었으니까 우리 대훈이지.” 그는 나보다 한 학번 위의 선배였다.


자리에서 그가 언급한 ‘태엽’은 당시 우리 반에 구성되어 있던 소모임의 이름이었다. 그가 속한 소모임의 신입멤버 모집 설명회에 내가 참석했던 것을 기억하고 나에게 그런 말을 건넸던 것이다.

당시 내가 배정받았던 학반의 대표적이고 또 특별했던 문화 가운데 하나는 ‘선후배’라는 이름의, 나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벽을 없애고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 지내는 것이었다. 이 문화는 내가 군대를 제대할 무렵까지는 남아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후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나보다 한 학번 윗 무렵에 만들어진 태엽이라는 소모임과 소모임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내 짐작으로는) 바로 그 ‘학번·나이 무관 동등한 인간관계’라는 문화의 중심이었다. 그렇게 이루어진 동등한 세계 속에서 한 학번 선배였고 한 살 많은 돌고래와 나는 선후배가 아닌 친구라는 이름으로 관계를 시작했다. 돌이켜 떠올려 보면 그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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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는 무척이나 밝고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를 주도하며 항상 반짝이는 유머 감각을 지닌 친구였다. 문장을 빌어 그를 말해보자면 ‘언제 어디서나 깨어있는 사람’이란 표현이 들어맞을 것이다. 문장처럼 그는 매 순간 어느 자리에서나 항상 깨어 있는 친구였다. 그가 참석했다는 것만으로도 자리의 분위기는 달라졌고 이야기의 흐름 역시 바뀌었다. 얼마간 더 경쾌하게. 이와 같은 성격과 능력이 일종의 카리스마로 작용했다고 생각하는데, 겉모습으로 보기엔 전혀 그럴 것처럼 생기지 않은 돌고래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들―친구들―사이에서 언제나 구심점으로 작용하곤 했다. 그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카리스마’라는 단어에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애써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본질로부터 반짝이는 특별한 빛,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 서술은 부족하다, 너무나 부족하다. 내가 아는 그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더라도 그에 대한 한 가지 기본적인 서술을 덧붙여야겠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것으로가 아닌, 매력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진 글로써 말이다. 돌고래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그런 글들을 그는 꾸준히 적어 왔다.

내가 만난 돌고래는 그처럼 빛을 발하는 존재였다. 그저 밝기만 한 게 아니라 영롱하게 반짝이는, 매력적인 리듬과 멜로디를 가진 빛을. 당연한 일이었을까? 나는 가까운 빛에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그를 좇았다. 다른 무엇보다 뭔가를 쓰는 그를. 나는 그를 좇았고 또한 그의 완벽한 이인자가 되기 위해 힘썼다.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고 그곳에 뭔가를 표현하기 시작했던 것 역시 그를 따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인간의 영혼이란 기후, 침묵, 고독 그리고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지는 것' 이라고 하던가?(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나는 돌고래라는 사람을 만났기에 뭔가를 쓰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만약 그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도, 다시 말해 나 자신의 정체성 역시도 깨닫지 못한 채 그저 현실에 급급한 채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 맨 처음 덧글을 달아준 사람, 다시 말해 내 글의 첫 독자 역시 돌고래였다. 밤 한 시에서 두 시로 이어지던 시각, 글을 올린 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각에 돌고래는 소중한 덧글을 남겨 주었다. 그렇게 돌고래는 내 글쓰기의 시작과 함께했다.


언제였더라, 음악을 꿈으로 삼아 힘써 정진하고 있는 친구와 돌고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뭔가를 쓴다는 꿈을 품게 된 건 돌고래의 영향이었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놀랍게도 그는 자기 역시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친구 또한 돌고래의 음악에 대한 취향과 관심에 영향을 받아 꿈의 방향을 설정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어쩌면 당연하게도 돌고래가 발하는 빛은 나 혼자만 느낀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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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인 줄도 모르고 한없이 휘청거리던 무렵과 치료를 마치고 후유증에 시달리던 때, 언제 돌아올지 모를 정신적 상태 탓에 나조차도 의심하던 ‘쓰는 나’를 돌고래만큼은 믿어 주었다. 병에 걸려 반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한 글자도 적지 못해 홈페이지가 텅 비어 가던 무렵에도 돌고래만큼은 방문해 주었다. 나에게 왜 글을 쓰지 않느냐며 채찍질을 해 주었던 사람, 가끔씩 올라가는 글에 덧글을 달아 나에게 힘을 주었던 사람 역시 돌고래였다. 병치레를 하던 때, 말 그대로 무미건조하게 말라붙어버린 내 곁에서 모두가 떠나 주변에 아무도 없다 느낄 때에도 돌고래만큼은 내 가까운 곳에 남아 주었다.


돌고래가 없었더라면, 만약 그랬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을 테지만 분명한 건 내 인생은 지금보다 한참이나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 갔을 거라는 점이다. 이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끝 모를 우물에 빠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막연한 불안감으로 덮쳐 오던 미래에 대한 걱정을 떨쳐낼 수 있게 해 준 사람. 돌고래는 그렇게 나의 온전한 reader이자 오롯한 leader로, 그리고 내 마음속 영원한 의지처로서 존재하고 있다.


내 소중한 스승이여, 친구여. 돌고래가 내 가까이에 남아 주었던 것처럼 나 역시도 언제까지나 그의 곁에서 멀리 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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