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후의 이야기 #11
1.
사회인이 되었다, 라는 문장을 쓰고자 했던 건 군에 입대한 다음 해 11월부터였다. 그 해 11월 28일, 돌고래가 홈페이지 방명록에 남긴 글의 첫 문장 ‘사회인이 되었다.’를 본 순간 나는 결심했다. 몇 년 후 취업을 하게 된다면 나도 저 문장으로 내 취업을 알리겠노라고. 그때 떠올린 ‘몇 년 후’라는 시점이 그렇게나 먼 미래의 일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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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 취업준비라는 핑계로 대학 졸업 후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고 서울에서 지내다 네이버 검색창에 ‘글쓰기 직업’이라 적고 검색한 적이 있다. 어떤 직업들이 글쓰기와 관련되어 있는 건지 궁금해서 그랬다. 작가나 신문기자라는 직업 말고 과연 어떤 직업이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인지 궁금해서 말이다. 하지만 내 검색 능력이 부족한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들도 잘 몰라서인지 별반 마음에 드는 검색 결과는 찾기 힘들었다. 그러던 가운데 지식in에서 질문 글 하나를 발견했다. 중학교 1학년이라는 질문자가 올린 글이었다.
Q : 글쓰기에 어울리는 직업
안녕하세요~ 평범한 중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이제 제 진로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도 된 것 같아서요…
제가 에세이 쓰는 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특히 영어로요. 성적도 괜찮고요.
커서는 세계에 영향력 있는 글을 써보고 싶어서 저널리스트를 꿈으로 했었어요.
그래서 신문사에서 학생 기자 모집하면 지원해서 활동도 하고 그랬거든요. 지금도 하고 있구요.
근데 막상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에 대해 인터넷으로 알아보니까… 뭔가 굉장히 막연하네요…
저는 그냥 많은 사람들이 제 글을 읽고, 변하고, 사회에 눈뜨고 뭐 이런 걸 바라지 신속하게 정보를 전달하고 이런 걸 원하진 않아요. 실제로 좀 느긋한 성격이라 저한테 맞지도 않고요.
항상 목표로 두었던 게 나한테 맞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글쓰기, 영어)에 어울리는 직업 없을까요?
(아… 참고로 번역가, 선생님, 작가 이런 건 별로 선호하지 않아요 ㅜㅜㅜ)
무려 ‘평범한’ 중학교 1학년 학생이라니… 내가 중학교 1학년일 때는 진로에 대해서는 한 번도, 정말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것 같은데. 아니 그렇게 뭔가 시간을 내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 그저 바쁘게만, 신나게 노는데 바쁘게만 지냈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디가 cyj로 시작하는(아마도 이름의 이니셜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중학교 1학년 학생은 진로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그런 고민을 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또 나이차가 십 년도 더 나는 당시의 내가 그제서, 겨우 그제서야 생각하고 있던 고민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도 같아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어 답변을 달았다. 지식in에서 질문자의 질문에 답변을 단 것은 아마도 그때가 처음이었지 싶다.
Re : 글쓰기에 어울리는 직업
정말 멋진 분이네요, 중학교 1학년이라는 나이에 벌써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신다니요. 부럽습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진로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거든요. 부끄럽지만 그건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구요. 제가 진로에 대해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했던 건 겨우 군대에 있을 때였습니다.
저도 에세이를 쓰는 걸 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질문자 님처럼 중학교 때에는 그렇지 못했었어요. 그저 책만 읽었죠. 책은 읽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모르던 때였으니까요.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제가 질문자 님의 나이였을 때, 뭘 했더라면 좋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입니다. 그 생각을 바탕으로 답변해 보겠습니다.
저는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질문자 님의 꿈에 대해 정말이지 멋진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전문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게 한 가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주된 관심사’입니다. 말하자면 질문자 님이 계속 써 나갈 ‘주제’라고도 할 수 있겠죠. 질문자 님이 현재 관심 있는 분야가 있다면 그 분야에 대해서 놓지 말고 그리고 놓치지 말고 계속해서 공부하고 또 글을 쓰셔야 합니다. 저널리스트가 꿈이시라면 말입니다.
분명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혹시나 주된 관심사가 없으시다면 가만히 생각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나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 주된 관심사는 문학일 수도 있겠고 음악일 수도 있겠고 또는 자동차나 스포츠 혹은 식물, 동물 심지어는 매일같이 먹고 마시는 음식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 주된 관심사에 대해, 어린 나이에서부터 공부하고 글을 쓰신다면 어느 순간 전문가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어느 매체에서라도 글을 쓰실 수 있을 것입니다. 보통 잡지에 그런 글들이 많이 실리곤 하는데요,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을 ‘피쳐 에디터’라고 부르곤 합니다.
제 답변은 여기까지입니다. 저도 별로 아는 것도 없지만 저와 비슷한(정말 부끄럽습니다) 고민을 하시는 것 같아서 써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된 관심사’에 대해서는 서점에 가셔서 <GQ>라는 잡지를 한 번 읽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문화 현상과 주제들에 대한 잡지거든요.
그럼 응원합니다. 질문자 님께서 멋진 저널리스트, 피쳐 에디터가 되시길요.
2.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마치고 후유증에 고생하다 겨우 대학을 졸업한 다음 해, 그러니까 내 나이 스물아홉 3월에 처음으로 취업 스터디라는 걸 시작했다.
물론 전부 그런 건 아닐 테지만,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스터디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만은 않은 일인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속했던 스터디의 스터디원들은 하나같이 다시 보기 힘들 만큼 좋은 사람들이었다. 여자 둘 그리고 나까지 남자 둘로 이루어진 스터디원들 덕택에 나는 한참이나 깊숙한 곳에 넣어 두었던 미래에 대한 꿈을 다시 꺼내어 볼 수 있었다.
내가 속했던 스터디의 특징은 이렇다. 나이 많은 취준생들이 모여 서로가 살아오며 경험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들 가운데 자신은 생각지 못했던 의미 있는 경험들을 찾아내는 것. 그렇게 진행되었던 스터디 과정 속에서 내 이야기, 그러니까 내가 경험했던 병과 병 탓에 접어둔 꿈 이야기를 듣던 스터디원들은 ‘글을 쓴다’라는 내 목표를 성원해 주었다. 포기하지 말라고 할 수 있다고. 그리고 그 성원은 스터디장이었던 희영씨로부터의, 학교 경력개발센터에 올라온 잡지사 인턴 모집 알림으로 이어졌다. 나보다 한 살 어린 나이의 희영씨는, 나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던 경력개발센터 홈페이지와 거기에 올라와 있던 제이콘텐트리(지금은 콘텐트리중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라는 회사의 인턴기자 모집 공고 소식을 전해 주었던 것이다. 검색엔 젬병인 나에게는 눈물 날 만큼 커다란 선물이었다. 인턴 모집은 면접에서 탈락했지만 그 준비를 통해 나는 잡지기자라는 꿈으로의 발걸음을 다시금 한 발짝 내딛게 되었다.
스터디원들로부터 받은 두 번째 영향은 훨씬 더 직접적이었다. 인턴기자 모집에 탈락해 조금은 기운 빠져 있던 나에게 나보다 두 살 어린 스터디원 미영씨는 한 채용 사이트에 올라와 있던 ‘한국잡지교육원 취재기자 양성과정 모집’ 소식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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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 양성과정에 지원해 여의도 잡지교육원에서 기자교육을 받던 나날들 가운데 어느 날, 수업을 진행하던 최옥선 前 <주부생활> 편집장님은 반에 있던 30명가량의 교육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중에서 무슨 잡지든 잡지 한 권을 맨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 페이지도 빼놓지 않고 꼼꼼히 읽어 본 사람 있어? 있으면 손들어 봐.” 그때 손을 들었던 건 나, 그리고 누구더라? 어쨌든 또 한 명. 이렇게 둘 뿐이었다. 내가 맨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 페이지도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읽었던 잡지는 남성지 <GQ Korea>였다. 대학 신입생 무렵 나는 그렇게 <GQ>를 읽으며 중학생 시절부터 갖고 있던, 뭔가 글과 관련된 직업을 갖고 싶다는 막연하기만 했던 꿈을 구체화시켜 잡지기자라는 꿈을 키워 나갔던 것이다.
꿈이 있으면 당연히 노력이 따라야 하는 법. 꿈을 이루기 위해 소방서, 즉 군대에서의 나는 정말이지 열심히 살았다. 군대에 가기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이나.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나 열심히 살았던 까닭에 병에 걸리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나에게 찾아왔던 병 탓에 제대 후 수년에 걸친 시간 동안 나는 뭔가를 위한 ‘노력’ 이란 것 자체가 불가능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 시기의 내가 어땠는지는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 없다. 그때의 내 상태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도 병원의 의사 선생님도 심지어는 엄마, 조차도.
취업을 준비하던 어느 날, 논현동의 두산빌딩에 찾아간 적이 있다. 두산매거진에서 발행하는 <GQ>의 사무실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그저 무작정 찾아가서 1층 안내 데스크의 누나에게 지큐 편집장인 이충걸 씨와 만나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GQ>의 편집장은 이충걸 씨였다) 어떤 일로…? 하고 묻는 누나에게 지큐에서 일하고 싶어서요, 라고 말했더니 누나는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고는 어쨌든 전화를 걸어 얼마간 이야기를 나누곤(혹시 약속하시고 오신 거세요? / 아니요) 잠깐 기다리라고 말했다. 잠시 후 누군가가 내려왔고 그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휴게실에서 잠깐 앉아있으라는 말을 듣고 앉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휴게실로 왠지 익숙한 얼굴의 사람이 들어오길래 누구더라? 하고 잠깐 떠올려 봤더니 사진으로만 몇 번 봤던 이충걸 편집장이었다.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서며 안녕하세요? 라고 말을 꺼낸 나에게 이충걸 편집장은, 무척이나 여성스러운 목소리로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했다. 당연하겠지만 그의 목소리는 처음 듣는 거였다.
텅 빈 커다란 회의실로 나를 데려간 그와 30분쯤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행히도 그는 모험적인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덕분에 계속되고 있는 회의 가운데에서도 틈을 내 나를 한 번 보러 왔다고. 준비해 갔던 아홉 편의, 나름 포트폴리오 형식의 글을 보여 주었고 그는 속독으로 읽었다. 다 읽고 나서 그가 했던 말은, 대훈 씨는 작가에 더 가깝네요, 하는 말이었다. 물론 나는 오해 없이 들었다. 그의 말은 내가 작가 수준의 글쓰기 능력이나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나는 잡지사에서 필요로 하는 에디터에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면 잡지와는 별반 관계가 없는) 작가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만약 내가 몇 가지의 <GQ>에서 다룰 만한 주제를 생각해서 설정하고, 그에 대한 글을 가지고 왔더라면 (채용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내가 가지고 간 것들로는 그런 생각을 하기 어렵다고. 그리고 인사해 주었다. 다음번 볼 때는 좀 더 이름 있는 사람이 되어 봤음 좋겠다고.
꼭 <GQ>에 들어가야겠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찾아갔던 건 아니었고 cyj학생처럼 답답한 마음에 그저 미래에 대한 갈피를 잡고자 하는 마음에서, 뭔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찾아갔던 거였는데 이충걸 편집장은 내가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던 ‘당연한’ 이야기를 무척이나 당연하게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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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걸 편집장님의 말처럼 이름 있는 사람이 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 좋은 스터디원들과의 스터디와 그를 통한 잡지교육원에서의 교육을 거쳐 나는 내가 막연하나마 품고 있던 잡지기자라는 꿈을 이루게 되었다. 이후 몇 차례 이직해 회사가 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잡지기자'라는 명찰은 바뀌지 않았다.
잡지교육원 수료 후 면접을 본 잡지사로부터의 채용 소식을 듣고 만난 한 잡지교육원 동기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오빠, 지금 표정이 너무 행복한 표정이에요." 정말 그랬다. 나는 그 말 그대로 행복했다.
잡지기자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가고 있던 어느 날, 지식in에 내가 남긴 답변이 채택되었다는 메일이 와 떠올리고 다시 한 번 질문-답변 페이지를 찾아가 보았다. 거기엔 cyj학생이 나에게 남긴 인사가 있었다.
질문자 인사 : 감사합니다!! 진심으로요! 정말 제가 원하던 거였어요, 막 제 관심분야에 대해 깊이 글 쓰고 그런 거. 앞으로 피쳐 에디터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 볼게요!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응원한다. 맞춤법 하나 틀리지 않는 cyj학생이 정말로 멋진 저널리스트, 피쳐 에디터가 되기를. 진심으로. 그리고 나 역시도 앞으로 더욱 멋진 저널리스트, 잡지기자가 되어 세상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기를. 이것 역시 진심으로.